무우영귀(舞雩詠歸)
월요일 저녁은 아버님을 모시고 식사하는 날이다. 아버님은 십여 년 전 어머님을 먼 곳으로 보내드리고 형님댁에 계신다. 부부가 투닥거리고 싸우다가도 월요일은 휴전한다. 혹여 아버님께 불편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아버님은 “에미야, 네가 집에서 끓이는 된장도 맛이 있다.”고 하시지만, 나도 핑곗김에 아궁이에 불 지피지 않고 밥을 얻어먹으니 아버님 덕분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버님은 조실부모하셨다. 형제간도 없으시다.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를 뵙지 못했다고 한다. 당신께서는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낳아주신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서 ‘부모님의 모습을 찾으신다.’고 하셨다.
워낙 깔끔하신 터라 늘 말쑥하시다. 누구의 도움도 받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이면 건강, 자세면 자세, 옷매무시면 매무시,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관리가 철저하시다. 머리카락 한 올 눈물 콧물 따위가 품위를 손상하는 일은 결코 없으시다. 정장과 중절모 구두가 방금 패션 잡지 촬영을 마친 모델 모습이다.
어머님은 영국신사 같은 아버님을 못마땅해하셨다. 늘 그 수려한 외모로 손수 자신을 챙기시니 어머님의 관심이 들어설 틈이 없으셨다. 여자로서 많이 서운해 하셨다. 대소가 가족모임이 있는 날은 아이들이 먼저 말한다. “아~ 기대가 되는데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어떤 넥타이를 매고 나오실까?” 아버님은 우리 집 남성들의 롤모델이시다.
나는 어른들과 함께 사는 동안,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주로 식사시간에 어머님이 말씀하시고 아버님은 들으시는 편이다. 아버님은 일본 방송이나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을 주로 보셨다. 그러나 어머님이 안 계시면 아버님은 말씀이 많으시다. 우리나라 정세뿐 아니라 세계지리나 종교 인종 시사나 어려운 외래어의 지명 인명을 말씀하실 때는 전문가 수준이시다.
그중에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는 일본이다. 지금도 모국어 수준으로 술술 일본어로 말씀하신다. 말에는 정신도 담겨 있으니 생각마저 일본식이다. 일상을 말씀하시다가도 검소와 근면 정직과 질서의 마무리는 제일 국민 일본으로 끝내신다. 아들 손자며느리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버님을 뵈면서 일제강점기의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한다. 비단 우리 아버님뿐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아버님은 어느 나라 분이신가. 발 빠른 스마트폰 시대를 따를 수 없으니, 거의 1세기에 가까운 지나간 과거를 고향처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디 일본에만 머무는가. “에, 또, 소위 말해서…” ‘소위 말해서’가 들어가면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또 건설하신다. 이럴 때 잠시 자식이나 며느리 역할은 잊고, 유신이 어떻고 장기집권이 어떻고 하면서 아버님의 활기찬 모습에 찬물을 끼얹지 않아야 한다. 아버님은 결코, 청와대나 국회 근처에는 가보신 적도, 또 앞으로 진출할 계획도 전혀 없으신 분이다.
그뿐인가. 천막당사의 여인이었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 ‘그분’이라고 표현하신다. 간혹 지긋이 눈앞에 있는 듯 ‘근혜양’이라고도 하신다. 마치 당신께서 키워낸 따님같이 기특해하신다. 그분은 정령, 정치하는 한, 무조건 사랑 우리 아버님 같은 분들의 응원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매번 하고 싶은 말씀은 많고 저녁식사시간은 짧으니 사레가 걸리시거나 목소리가 쉬기 일쑤다.
우리 아버님의 특징은 자식들의 생활이나 손자들 근황을 먼저 묻지 않으신다. 명절이나 제사 생신 등 행사가 있어 모여도 인사만 받으실 뿐, 얼른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 누구도 아버님 외에 다른 사람이 둘러앉은 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일부러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면 단답형으로 “알았다.”로 간단하게 끝내신다. 때론, 서운하다. 그러나 아버님 삶의 방식이다.
예전에 공자가 제자 서넛과 둘러앉아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거북하게 생각하지 말고 어디 꿈들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니, 씩씩한 자로는 국방부 장관쯤을 하고 싶다고 한다. 공자님이 마뜩잖은 미소를 지으니, 염구는 조금 낮추는 척 복지부쯤 맡고 싶다고 하고, 공서화는 예를 갖추는 문화부 정도를 맡고 싶다고 한다. 꿈이 작은 듯 제각각 큰 뜻을 말한다. 곁에서 유유자적 거문고를 뜯고 있던 노련한 증점이 “뎅그렁!~” 거문고를 내려놓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선생님, 저는 저들과는 다릅니다.”
“늦봄에 봄옷이 마련되면 갓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莫春者 春服 旣成 冠者五六人 童者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 자한편)
공자님께서 “아~! 나도 그러고 싶다.”고 탄복을 하신다.
늦은 봄이면 두꺼운 옷은 벗어도 되는 계절에 얇은 덧옷을 입는 예가 예사롭지 않다. 격을 갖추는 삶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가 대를 이어 가문을 잇고 전승하는 유학적 삶이다. 어떤 이는 명예나 부에 큰 가치를 두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시민의 소박한 일상을 꿈꾸기도 한다.
아버님과 외식하고 둥근 달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매주 월요일은 아버님과 함께 ‘아리랑 동동♬’을 부르는 <무우영귀>의 시간이다.
* 에세이부산 2012 (11호)
* <<논어 에세이 빈빈>>2015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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