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이
갑순이 갑순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자세로 뒤뜰 수돗가에서 빨래하는 나를 바라본다. “왜? 어서, 들어가. 몸에 바람 든다.” 솔바람이 부는 날도, 벚꽃 잎 휘날리는 날도, 백일홍이 핀 날도, 고추잠자리가 바지랑대에 앉은 날도, 한결같이 턱을 괴고 바라본다. 갑순이에게는 내가 롤모델이다. 그렇게 빤히 쳐다본다고 "네가 내가 되겠니, 내가 네가 되겠니." 둘 다 산후풍으로 얼굴이 푸석하다. 너는 목줄에 묶여 있고, 나는 유가적인 인습에 매여 있다. 물설고 낯선 곳, 한데 나와 있기는 너나, 나나 매한가지. “어여, 들어가 쉬어라.” 한참 후, 빨래를 삶아 들통째 들고나오니, 갑순이가 소나무 밑의 흙을 앞발로 뒷발로 손발이 다 닳도록 파내고 있다. “애쓰지 마라, 기운 없다.” 뒷마당에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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