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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에세이, 빈빈

세시풍습

세시풍속

온고이지신 (溫故而知新)

 



어릴 적에 나의 고향은 문화 류씨 집성촌이다.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고모리, 기억 속의 고향은 문중의 법도와 명분을 지키며, 묘지기처럼 선산을 바라보며 오르내리고, 예 올리고, 관혼상제를 치르며, 큰 벼슬이나 큰 부자가 없는 동네다.

 

섣달 그믐밤에 아이들은 집집이 몰려다니며 ‘묵은세배’를 했는데, 정월 초사흗날까지는 여자아이들은 집에 오는 손님에게만 세배를 드렸지 인사 가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지나 눈이 쌓일 때까지 들에 마른 채로 서 있는 ‘다북쑥’을 모았다. 달집태우기를 하기 위해서다.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솜씨 좋게 나이 수대로 묶은 다북쑥을 태우며 소원을 빌었다.

 


공자, 가라사대. “옛것을 잊지 않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위정편)

 


고(故)는 예전에 들은 것이요, 신(新)은 오늘 새로 터득한 것이다. 배운 것을 응용하면 내 것이 될 수 있다. 모르고 하지 아니하는 것과 아는 것을 간략하게 하는 박문약례(博文約禮)와는 다르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 절기를 기준으로 한다. 지방마다 풍속이 다르고 더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국적 모를 지나친 풍속도 있으나, 할머니가 어머니께 전수하던 것을 나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으니, 여자로 태어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정월(正月)>

입춘(立春)날 보리 뿌리를 캐서 뿌리가 세 가닥 이상 자랐으면 풍년이라 했으며, 시(詩)와 사(詞) 등의 입춘 방을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등에 붙여서 농사를 준비하라는 신호로 삼았다. 간혹 길을 가다가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방을 보게 되면 공연히 설레며 그 집주인이 보고 싶어진다. 사실 빼어나게 잘 쓴 글씨보다 그 집의 어린이가 삐뚤빼뚤 뭉떵하게 쓴 정겨운 글씨를 보면, 장차 큰 인물이 날것을 예측하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설날 아침(元旦), 차례(茶禮)가 끝나면 세배(歲拜)로 들어간다. 자리를 정돈하고 부모님께 먼저 절하고, 그다음 할아버지, 할머니, 백부, 숙부, 형, 아우, 자매 순서로 절을 한다. 한 문중 혹은 한 가정의 세배가 끝나면 이웃은 물론 온 마을을 누비며 어른들을 찾아뵙는데 정월 보름까지 계속된다. 일가가 먼 곳에 있으면, 수십 리나 혹은 백여리 먼 곳까지 세배하러 갔다. 우리 집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 비록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환갑이 넘은 어른이 계신 집에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 세배를 드리러 방문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매우 당황하시며 덕담(德談)보다도 세뱃돈을 먼저 챙기는 모습에 죄송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뒤로 우리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이웃 어른들이 계셨다.

 

속담에 섣달 그믐날 밤에는 야광귀(夜光鬼)가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 신발이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고 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일찍 불을 끄고 잠을 잔다. 이에 말총으로 만든 체를 뜰에다 걸어두면 귀신이 와서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은 못 하고, 체 구멍을 세다가 첫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도 했다.

 

상원(上元) 보름날 약반(藥飯)을 만들고, 오곡밥과 갖가지 채소 나물을 먹는데, 소박한 풍속으로는 이른 새벽 ‘귀밝이 술〔明耳酒〕’을 마시고, 날밤, 호두, 은행, 콩, 엿 등을 깨물었다. 이도 튼튼해지고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며 종기와 부스럼 등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새벽에 거리에 나가 사람을 보면 급하게 부른 다음 “내 더위 사가라”하는 매서(賣暑)가 있어 백방으로 불러도 절대 대답을 안 했다. 그리고 그 해에 과일이 많이 열리기를 바라며 과일 나뭇가지에 돌멩이를 끼워 과일나무를 시집보내기도 한다. 또 보름날은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그해 여름 파리가 들끓고, 몸이 여위기 때문에 속담에 이르기를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이 있다.

 


<2월>

겨울 석 달을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버러지도 꿈틀거린다는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지만 비와 바람이 차가운 것은 겨울 못지않아 꽃 시샘〔花妬娟〕에 큰 장독이 깨지며, 중년(中年)도 얼어 죽는다고 한다.

 


<3월>

삼월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산에서 진달래꽃으로 꽃전을 만들어 먹으며 화전(花煎)놀이를 즐기고 진달래술〔杜鵑酒〕을 담기도 한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여자의 계절이다.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땅속에서 잠자던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고, 기러기가 날아가며, 초목에서 싹이 트는 봄의 시작이다.

 


<4월>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는 달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초파일 석가모니 탄생일에 연등 행사가 장관이다.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고 꾀꼬리가 운다.

 


<5월>

단오절(端午節), 중오절(重五節), 수릿날〔戌衣日〕, 천중절(天中節), 단양(端陽)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수레〔車〕로, 쑥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고 단오선(端午扇) 부채를 나누어 가졌다. 농가에서는 집 옆 도랑에 창포(菖蒲)를 심었다가, 단옷날 아침에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검고 윤기 있는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된다고 한다.

 


 

<6월>

무더운 여름 햇볕으로 만물을 무성하게 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는 까닭에 6월을 ‘썩은 달’이라고도 한다. 냉이가 죽고 보리가 익는다.

 

유두(流頭)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서 재앙을 모두 씻는다.

삼복(三伏)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뜨거운 개장국을 구슬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다.


<7월>

칠석(七夕)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다리를 건너 만나는데, 이날 저녁에 비가 오면 기쁨의 눈물이요, 새벽에 비가 내리면 헤어지는 슬픔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더운 바람이 불고 반딧불이 나온다.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


<8월> 

한가위, 추석(秋夕), 가배(嘉俳), 중추절(仲秋節) 등으로 부르며 성묘하는 날이기도 하다. 백과(百果)가 무르익어 햅쌀로 송편과 과일을 차례상에 올린다. “더 하지도 덜 하지도 말며 늘 한가윗날 같기만 하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달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며, 벼가 익는다.

 


<9월>

만물이 쇠망기에 들어 그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달로 입동(立冬)을 앞두고 추위를 재촉하는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있다.

중양절(重陽節 9월 9일)에 국화를 관상하며 국화전과 국화주(菊花酒)를 담가 먹으며 높은 산에 올라 단풍나무 아래에서 시서화(詩書畵)를 즐기는 것이 풍국(楓菊) 놀이다.

이때 남성들은 소슬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빗질해주고 따뜻한 햇볕이 바짓가랑이 안을 환기해주는 풍즐거풍(風櫛擧風)의 운치를 즐긴다. 가을은 남성들이 바람을 탄다.

 


<10월>

천지인(天地人) 3자가 화합한 상달(上月)이라, 무, 배추로 김장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를 쑤고, 갖가지 나물을 저려 담그기도 한다. 10월의 시제(時祭)는 문중의 선산에 가서, 시조들에게 제사를 올리며 전국 명산에서는 산제(山祭)가 있다.

 


<11월 동지(冬至)>

동짓날, 상순에 드는 애동지〔兒冬至〕는 아이들에게 좋고, 하순에 드는 노동지(老冬至)는 어른에게 좋다는 설이 있다. 동지에는 누구나 한 살씩 나이를 더 먹는데, 어린애는 빨리 크기를 원하고, 노인은 더 오래 살기를 원하는 바람이 있다. 팥죽을 쑤어 먹으며, 붉은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막는다.

 


<12월>

1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 하여 재어춘(在於春)이라 하였다. 아직 춥기는 하지만 정월을 봄으로 보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으뜸으로 여기는 풍토에서 12월은 스승 찾기에 분망한 달이다.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하는 그믐 밤은 새해의 세찬(歲饌)을 장만하기에 바쁘다. 서울 경기에서는 설날 아침에 떡국에 만두를 넣어 먹는 풍습이 있다. 냉장고가 따로 없었으니, 미리 해서 보관하지 못하는 까닭에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다. 새해에는 복이 찾아들라는 뜻으로, 방, 뜰, 변소, 외양간까지 구석구석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는다. 이날 밤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속담이 있어 간혹 잠든 아이들에게 쌀가루나 밀가루 등을 눈썹에 발라놓고 놀리기도 한다. 이날, 어린 사람이 어른을 찾아가서 방문하는 것을 묵은세배라 한다.

 


<윤달>

풍속에 없는 달이라 하여 꺼리는 것이 없다. 결혼이나 이사하기도 좋다. 돌아가실 분의 수의(壽衣)를 미리 만들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도 윤달에 어머님과 아버님의 수의를 마련했다.

 


공자, 가라사대.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 같이 되고,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도에 맞는 나라가 된다.”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옹야편) 

 

작은 제나라가 문물이 풍부한 노나라로 변한다는 글을 읽다가 문득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세시풍습을 기록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량 세시기(迾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誌)를 기초로 삼아 살펴보면서, 지금의 세대 차이를 생각해 본다. 한 세대가 이제는 족보를 개편하는 30년이 아니라 스마트폰 약정기간 정도로 급변한다.

 

결혼 전, 또는 그보다 어렸던 열 살 이전, 색동저고리를 입던 시절부터 세시풍속에 마음이 들떴다. 팥죽을 뿌리는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조왕신께 잘못을 비는 모습이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 재미있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집와서는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일에 참여해야 하는 며느리가 되어, 날이 춥기 시작하면 오히려 집 밖으로 나와 호박오가리를 만들어 담에 걸고, 무를 썰어 말리고, 감잎차, 김장, 강정 만들기, 메주 쑤기 등 일이 많았다. 계절 없이 일이 릴레이경주처럼 바통을 이었다. ‘힘이 들다.’는 푸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왜냐하면, 나는 <가정> 시간에 핵가족의 거실 꾸미기, 블라우스, A라인 치마, 핫케잌, 도너츠 만들기 등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의 시대는 민속의 예스럽고 촌스러운 것은 없어지리라 여겼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월 대보름날에 부럼을 깨물게도 하고, 호박 시루떡과 식혜, 김치 누름적 등을 만들어 먹여 키웠다.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한복 선이 좋아, 갖춰 입고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생활 한복 입기를 즐기기도 했다.

 

해마다 아이들 생일, 남편생일날에는 삼신상(찰밥, 미역국, 삼색 나물, 전과 조기, 탕 과일 단술)을 차리고 상 밑에 탯줄을 가르는 가위와 실까지 준비해 놓고 대소가 어른들을 초대했었다. 시어머니께서 하시는 모양으로 큰 소리로 어디에 누구 손자, 누구 아들, 아무개가 무병장수, 차조심, 길 조심, 말조심하며 공부도 잘할 것이라고 고하는 행사를 스스로 즐겼다.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생각은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케이크에 촛불 꽂고 “해피버스데이 투유” 축하노래를 부르며 선물 받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품 안에 있을 때까지는 어림없는 소리라 하면서 기득권 행사를 했었다.

 

한 나라의 세시 풍속은 그 나라 정신과 문화의 소산이다. 예로부터 ‘아름답고 선량한 풍속을 가진 나라는 흥하고, 퇴폐적이고 음란한 풍습을 가진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다. 농경시대 우리를 이끌었던 세시 풍속들이 어쩌면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미신과 낭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풍류로서, 지혜로서, 때로는 소박하고 조촐한 별미의 시절 음식도 즐기며 미풍양속으로 계승할 수 있는 것도 주부만의 특권일 것이다. 

 

어릴 때의 어렴풋한 기억과 상상만으로도 풋풋해 오는 감흥이다. 나의 아이들은 이미 둘 다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였다. 각 집에서 밥을 따로 먹으니 내 식구가 아니다. 불현듯, 세시풍습이 그리운 건, 아이들 키우던 시절이 그리워서이다. 아무래도 내가 세대교체의 시간을 맞이한 모양이다. 비로소 나는 청춘(靑春)에서 석춘(惜春)을 넘어가는 길목에 선 것이다.

 


 


<<논어 에세이, 빈빈>>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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