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多才多能)
공자의 아버지는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스무 살 즈음에 돌아가셨다. 누이 아홉에 지능이 부족하면서 다리까지 아픈 형이 하나 있었다. 생활이 오죽했을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먹고 살려고 안 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의 공자가 재상이 되어 제자들을 거느리고 다니니, 세간의 사람들이 눈꼴이 시었을 것이다.
공자를 마뜩잖게 여기는 어느 대부가 “너희 선생님은 성인(聖人)이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다재다능하냐?”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공자의 제자 자공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우리 선생님은 하늘이 내신 성인이시라, 모르는 것, 못 하는 것이 없으시다.”며 어깨에 힘을 준다. 공자가 그 말을 전해 듣고서 “그가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로구나.”
“나는 소싯적에 미천했던 까닭으로 천한 일을 많이 했다. 군자는 재주가 많아야 하는가. 많지 않아도 된다.”
(吾少也 賤故 多能鄙事 君子 多乎哉 不多也 - 자한편)
어느 집단에서 건 미천했던 사람이 번듯하게 높이 오르는 것을 보아내지 못한다. 큰 나무 밑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노래한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올라가던 사람은 적나라한 빨강 색이 부끄러워 죽을 노릇이다. 불편하다. 내려오자니 다시는 우물 안 개구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밑에서는 나무를 마구 흔든다. 물속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외톨이가 되는 것이 더 두렵다. 매달려 있는 손과 발에 더 힘을 준다.
나는 병신(丙申)년 원숭이해에 태어났다. 별나라에 얼굴이 열한 개 달린 보살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비위를 맞추다가, 하나의 신에게 지나치게 집중을 하는 바람에 그만 다른 신들의 이야기를 놓쳐버렸다. 그 벌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수만 수억 개의 얼굴들에 각각 맞는 얼굴로 기쁨을 주라는 명령을 받은 보살이 바로 원숭이 신(申)이라고 들었다. 원숭이는 재주를 부려야 사람들이 쳐다본다.
나는 힘들 때마다 좌절을 잘 이겨내는 편이다. 잔나비 띠에 태어난 팔자거니 여긴다. 끌어줄 줄이 없으니, 손톱 밑이 아리도록 더 분발한다. 어느 날, 나의 벗 미카엘라가 위로했다. 치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더 높이 올라가라.” 놀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면 손가락질 따위는 없다고. 간혹 진땀이 나는 건, 어중간한 위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집 가장이 보낸 사연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손에 기름때를 묻히는 일을 한다.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어서, 씻어요.” 찬바람을 일으키고, 아이들은 “아빠, 가까이 오지 마!”라며 따돌린다. 혼자 수돗가에 앉아 씻는데 부아가 치민다. 그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생각하기조차도 싫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콸콸 수돗물을 세게 틀어놓고 꺼이꺼이 통곡을 한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 막일꾼이었다. 부쳐 먹을 땅이 없으니 이집저집 남의 논밭에서 품팔이한다. 그것도 없는 날은 마을의 허드레 잡일을 도맡아야 한다. 그중 우물을 치는 날이 있다. 검푸른 우물 안에 양 가랑이를 벌리고 한 발 한 발 맨발로 이끼 낀 돌을 밟고 내려가, 바닥에 크고 납작한 돌을 양동이에 담아주는 일이다. 꺼낸 돌멩이를 아낙들이 수세미로 싹싹 씻어 내려주면 다시 간격을 띄워 제자리를 찾아 놓는다. 운수 좋은 날은 10환짜리 동전이나 새댁이 빠뜨린 가락지의 횡재도 있었지만, 컴컴한 우물 속에 어찌 깨끗한 샘물과 거름 돌만 있었을까. 때론, 흘려버린 아기도, 목매어 죽은 처녀도 건져 올리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그 일에 익숙한 무지(無知)의 몸이 하는 일이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빙 들러선 자리에서 기력이 쇠한 아비가 못 들어가겠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윽박지른다. “네가 아니면 누가 들어가겠느냐?” 그때 아비는 비굴한 눈빛으로 열두 살짜리 아들을 바라봤다. 같은 반 친구 꽃순이가 보는 앞에서였다.
그날, 우물에서 기어 나온 아들은 아버지를 노려보며 “아버지, 싫어!”로 시작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고는 고향을 떠나왔다. 그날 이후 아버지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부자지간의 천륜을 우물 속에 던져 버렸다는 사연이다.
내 수업을 듣던 분들이 눈이 벌게지며 훌쩍인다. 잠시 쉬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논어가 어려운가요?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서정주 선생의 시 한 편을 소리 내 읽었다.
‘애비는 종이었다 /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타오르는 어느 아침에도 /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 볕이거나 그늘이고 나 혓바닥 늘어뜨린 /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 서정주
유복했던 어린 날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 내린 하얀 눈은 오늘 내 앞길을 질척하게 할 뿐이다. 성인이신 공자도, 라디오 사연 속의 사내도, 서정주의 시 자화상 속의 아비도, 나를 전혀 돌보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도 다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했던가. 나는 이제 원숭이가 아닌 인격(人格)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논어에세이, 빈빈>>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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