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사불식자(屛氣似不息者)
숨죽이어, 숨 쉬지 않는 것처럼
대청마루를 오르려면 마당에서 섬돌을 밟아야한다.
옷자락을 잡고 당에 오를 적에 몸을 굽히시며, 숨기운을 감추시어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하셨다.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 論語 鄕黨 제4장)
그 순간의 조심성, 요즘으로 치자면 집으로 들어갈 때 섬돌대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의 예절이다.
엘리베이터는 올라서는 길이기도 하고 내려서는 길이기도 하다. 열리기도 하지만 닫히기도 한다. 열리면 공적인 공간이지만 닫히면 사적인 공간이다. 그 속에서의 광경은 각자의 사생활만큼이나 다양하다.
장난기 많은 가족이 타거나 꼬마친구들이 몰려 탔을 때는 순간 꿈동산의 놀이기구처럼 신난다. 그러다 혹 낯선 사람이 타면 점잖은 척 서로 눈만 껌뻑이거나 ‘쉿!’ 잠시 숨을 멈출 수가 있다.
은밀한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탔더라면 아마 벽 쪽에 붙어 서서 살짝 뽀뽀정도의 순발력을 나눴으리라. 지금은 어떤가. 집안에서 삐걱거리며 오가던 말들을 가장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하다.
엘리베이터를 울타리 안이라고 여기는가. 내 집 현관문만 나서면 외출이다. 분리수거를 하러 옷고름을 동여매고 열두폭 치마에 버선발로 의관 갖춰 탈 수야 없지만, 민소매도 아닌 끈 드레스로 어깨 죽지를 드러내면 그 속살이 치맛자락 속에서 아른거린다.
모름지기 군자는 홀로를 삼가라고 했던가. CCTV에 객쩍은 모습이 찍힐 수도 있다. ‘나 혼자인데 누가 볼라고.’ 무장해제는 곤란하다. 증명사진 찍듯 매무시를 다듬는 일은 봐줄 수 있지만, 입술을 벌려 립스틱을 칠한다든지, 삐져나온 코털을 뽑는 행위는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남정네가 한줄기 시원하게 오줌세례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얄궂다.
얄궂기로는 늦은 시간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빙긋이 웃는 이웃 남자 만큼일까. 아예 숨을 푸푸 내 뿜고 있다. 시선을 피해도 사방에 붙어있는 거울로 다 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취해서 미안하다는 혀 꼬부라진 말을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그 꼴이 보기 싫다고 눈을 감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기습적으로 안겨 올는지 모른다. 난 영화《겨울여자》속 주인공 ‘이화’가 아니기에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안아줄 수가 없다.
문이 열렸을 때의 해방감. 숨통이 확 트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물 속의 내시경 같은 엘리베이터보다 밖의 풍광이 훤히 보이는 누드엘리베이터 타기를 즐기는가 보다. 투명한 통유리 원통이 연인처럼 건물에 밀착되어 쾌속으로 오르락내리락 할 때의 기분은 또 다른 쾌감이다.
밀폐된 공간은 공공장소가 분명하지만 엄지족들은 이웃에게 인사는커녕 바로 옆에 있어도 엄지손가락 두개로 사람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 엘리베이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ㅋㅋ” 핸드폰 문자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또 다른 소통로다. 나도 흉내라도 내볼까 꾹꾹 눌러보는데 벌써 목적지다. 빨리 걷지 못하여 신호대기에 걸린 사람처럼 한참을 멈춰 서서 마무리한다. 어줍은 내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내집 22층까지 걸어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차피 그들과 함께 속도를 맞추며 살아야한다.
나는 오늘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외출에서 돌아오는 숨소리 헉헉거린다. 이웃집 아저씨는 남의 속도 모르고 친절하게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신다. “툭!” 하고 대책 없이 속옷 끈이 풀리지 않고서야 내 어찌 이천 오백년 전의 공자님처럼 숨 쉬지 않는 듯 숨기운을 감출 수 있겠는가.
“아~예!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우편물을 찾아가려고요.”
후~우 가뿐 숨부터 고르자.
<<매실의 초례청>>2008
<<논어에세이 비빈>>2014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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