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온독이장(韞匵而藏)
자공이 말하기를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을 경우 이것을 궤속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자이다.”(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高諸 子曰沽之哉沽之哉 我 待賈者也 論語 子罕 제 12장)
무엇을 좋은 값에 팔 것인가. 물욕인가 육신인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무소유는 신이 인간에게 준 화두인지 모른다.
어디 빈손 뿐 인가. 온 국민이 몸무게까지 가볍게 하기위한 다이어트 열풍중이다. 무공해 채소를 먹고 자연 친화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도 점점 차별화되어 보통의 삶보다 훨씬 더 사치스러워졌다. 욕심을 다 떨쳐 버리고 지인들이나 불러 소박하게 차나 마시자며 준비하는 다기들만 해도 자꾸 늘어난다.
웰다잉(well-dying) 잘 죽어 가는 것, 잘 사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덕목이 되었다.
오래 전 어머님은 마지막에 가지고 갈 물건을 준비하고 계셨다. 회갑 년 윤달에 명주 필을 장만하면서 부터다. 산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가듯 삶고 잿물내고 푸새하고 자근자근 밟아 정성스레 수의(壽衣)를 지어 상자에 담으셨다.
‘환자감시장치기’의 꼬불꼬불한 그래프 선이 삶이라면 죽음은 일직선이다. 마지막 그어질 선을 미리 준비하는 여유가 선각자의 목탁처럼 마음을 쳤다.
물건뿐 아니라, 학연 지연 친인척이나 계돈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인연도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선을 그었다. 그리곤 어제 만나 맛있는 점심 먹고 오늘 만나 차 마시며 눈물 찍고 웃어넘긴 사연들 툭툭 털어버리고, 설령 내일 아침 서로 다른 세상으로 갈지라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의 정만 주고받았다.
마음이 부자라야 진정한 부자라며 정신적인 풍요에 가치를 두셨던 어머님. 배고프고 추운 사람들부터 챙기던 따뜻한 마음씨. 이승의 마지막도 겁내지 않고 준비하시던 당신께서도 사후의 평가에 대하여는 불안하셨던가.
상례의 절차에 저승에 가서 먹을 식량으로 입안에 생쌀이나 구슬을 넣는 의식이 있다. 어머님은 양식을 마다하고 대신 물방울 모양의 흑진주를 머금고 가실 요량으로 진주알을 준비하셨다. 큰스님의 고결한 인품처럼 사리 하나쯤 나와 검증이라고 받고 싶은 마음이셨을까.
그러나 진주는 사리가 되지 못했다. 사라졌다. 재물이란 미꾸라지 같다고 하던가. 잡으려고 들면 들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간다고 한다. 재물을 믿는 것은 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찍이 다산은 말했다. 도둑에 빼앗길 염려도 없고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으며 소나 말을 이용하여 운반하는 수고도 없이 가장 안전하게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을 제시했다. 나는 솔깃하여 침을 꼴깍 삼켰다.
살아생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 바로 음덕(陰德)을 쌓는 일이라고 한다.
어느 산골 작은 절집에 ‘땡추’라는 스님은 미용 마술 중장비기사 스쿠버다이버 등의 이색적인 자격증으로 도를 닦는 틈틈이 읍내에 내려와 봉사를 한다. ‘중생을 위한 일이라면’ 낚시꾼들과 낚시도 같이 한다. “명색이 중인데 죽고 나서 사리 안 나오면 쪽 팔리잖아요. 그래서 냉면사리 엄청 먹어요.” 죽비로 한대 맞은 듯 시원하다.
남을 위해 땀 흘린 자야말로 진정한 냉면사리 맛을 알 것이다. 평생 참고 절제하며 수행자처럼 살다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한(恨)이 서려 나오는 사리는 마다한다. 살아생전 땡추중처럼 땀 흘리며 봉사하고 난 다음 시원한 사리를 많이 먹고 싶다.
그날, 우리가족은 칠순이 되던 해에 엮어드렸던 어머님의 수필집을 관에 넣어드렸다. 당신의 육신을 움직여 부지런하게 사신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를 가슴에 안고 그렇게 어머님은 떠나셨다. 보석은 흑진주 사리가 아닌 바로 살아생전의 ‘사람살이’일 것이다.
<<매실의 초례청 >> 2008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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