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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련 瑚璉 <구름카페 문학상 수상>

욕파불능

욕파불능欲罷不能

- 나는 글을 이렇게 쓴다

 

  저녁 무렵 초가지붕 위로 올라가는 연기가 아름다웠다. 마을은 평화로웠지만 내 마음속의 그림은 고요하지 않았다. 그림에는 항상 빈터가 많았다. 여백은 늘 눅눅하게 젖어 물이라도 한 방울 떨어지면 금세라도 물웅덩이가 될 것만 같았다.

 

  ‘만물은 평형을 얻지 못하면 소리가 나게 되는데, 초목은 본래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그것을 흔들어 소리가 나고, 물은 본래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그것을 움직여 소리가 난다.’고 한유韓愈불평즉명不平則鳴을 말했다.

 

  편안하지 않으면 울게 되어 있다는데, 나의 유년은 한유처럼 배고프거나 춥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타고 왔던 파란색 코로나 택시의 뒤꽁무니가 동구 밖을 빠져나가는 날이면 눈물이 나곤 했었다.

 

  엄마의 이불장 속에는 늘 꿈 보따리가 숨겨져 있었다. 매화 파랑새 구름이 그려져 있는 <그리운 당신께>라는 제목의 일기장이다. 나는 자라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습관적인 그리움을 배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ㅇㅇ께라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움의 대상은 꼭 누가 아니어도 좋다. 어떤 물상일지도, 아니면 내 안에 있는 나일지도, 어쩌면 배냇적 이전의 설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그리움을 만나는 일이다. 그리움은 나에게 어떤 한 같은 정서를 남겨주었다. 울컥울컥 그리움을 행간에 써 내려가다 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내 스스로 비위를 맞추면서 나를 어루만진다.

 

  엄마는 날마다 화투 점으로 하루를 열었다. 그때 가령, 육목단이 떨어졌더라면 나는 매일 함박꽃처럼 웃으며, 줄무늬 주름치마와 리본 달린 핑크빛 블라우스를 입고 도화지에 열두 가지 빛깔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엄마와 딸이 굽실거리는 불 파마를 하고 아버지와 동생도 다 같이 읍내에 나가 가족사진 한 장쯤 박았더라면, 아마 그랬더라면, 나는 문학 같은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른다.

 

  늘 허기진 마음으로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글 속의 남의 생각과 남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올곧은 생활만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작정하고 일부러 시늉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도리로서 해야 할 일과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늠하느라 자신을 단속했다. 자신의 마음 밭이 엉망이라며 매일 호미를 들고 김매느라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고달프게만 여겼던 잡풀들이 알고 보니, 나를 지켜주는 힘인 것을, 문학의 거름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강인한 생명의 뿌리를 껴안고 이젠 더불어 풀숲이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누군가는 평생을 잘 다듬어진 글 한 편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하루하루를 글 한 편처럼 살고 싶다. 그러나 사는 것이 매양 수채화처럼 뼛속까지 맑고 투명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필 쓰기는 늘 나를 응원하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다.

 

  나의 정서는 달빛에 박꽃이 피는 초가삼간이다. 잘 꾸며진 문보다 소박한 질에 바탕을 두는 촌스러운 감성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솔직하기까지 하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만이 진정한 내 글이라고 생각한다.

 

  보잘것없는 삶이라고 위축될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글을 쓰는 것이다. 결코, 막 쓰자는 말은 아니다. 뼈와 살 사이에 있는 틈을 젖히는 칼 다루는 법을 익히고 연마하여, 글이 예리하기는 하지만 부드러워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며, 복잡하기는 하지만 재미있어 읽어볼 만한 포정해우庖丁解牛같은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청복이다. 그냥 쓰고 싶어 쓰는 것이다. 글쓰기 자체가 미덕이다.

 

  작가 나탈리는 글쓰기는 섹스와 같다.’고 했다. 오르가슴을 향하여 극한의 순간까지 함께 치닫는 맛, 오로지 다른 생각 없이 발 앞에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글을 쓰라고 권한다. 이제 마른 표고버섯처럼 에스트로겐이 쩍쩍 갈라지는 여인, 폭탄테러를 피할까? 아니면 당할까!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오늘의 작가이고 싶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이 글이 발표되면, 언제나 이 글이 끝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또, 무엇을 할 것인가. 날마다 골목에선 낯선 나그네가 서성인다. 나그네를 나만의 방, 원고지 안으로 불러들인다.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고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는 욕파불능欲罷不能의 경지. 내 안에 그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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