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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련 瑚璉 <구름카페 문학상 수상>

풀꽃 꽃병

풀꽃 꽃병

 

 

  발 두 개에 의지해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있다. 내 검지손가락 길이만 하다. 엎드려 있는 꼴이 마치 애벌레 같다. 그렇다고 꿈틀대지는 않는다. 얇고 투명한 유리병으로 언뜻 보면 작은 비커 같다.

 

  강아지풀처럼 휘어지는 줄기라야 꽂을 수 있다. 제비꽃 세 송이 정도는 넉넉하고 민들레는 꽃송이가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한다. 여뀌나 타래 난이 제격이지만 어쩌다 네 잎 클로버를 찾은 날, 잎과 토끼풀꽃을 함께 꽂으면 가장 잘 어울린다.

처음에 꽃을 꽂으면 꽃줄기가 병 모양대로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한나절이 지나면 어느새 기지개를 켜고 까치발로 아기처럼 일어서있다.

 

  평소에는 늘 장식장 한 귀퉁이에 들어 있다가, 외출 나오는 날은 동그란 주둥이가 먼저 벙싯거린다.

 

  이 꽃병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실 때, 찻상에 자주 오른다. 차 한 잔을 핑계 삼아 정담을 나눌 때 귀 기울여 듣는 자세로 한몫한다. 찻물을 몇 번이나 우려 마셔도 풀꽃을 예사로 보는 이와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이 꽃병과 닮았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제 빛깔 제 향을 낼 수 있도록 담아주는 쓰임새로 살았다. 사치라고 해봐야 기껏 손가락이나 팔목에 풀꽃을 묶어 풀꽃공주가 되는 일이었다. 누구와 눈만 마주쳐도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조금 더 오래 쳐다보기라도 하면 이내 울음을 터뜨리던 수줍은 소녀였다.

 

  이 꽃병처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를 잘 보아내지 못한다. 왜소하고 볼품이 없어 남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부추기는 부채질이라도 해줘야 그 바람에 목소리를 냈었다.

 

  시어머님은 나를 처음 보던 날을 이야기하셨다. 아들에게 오는 편지를 보며 외모가 세련된 도시 아가씨일 것이라 상상하셨다고 한다. “우에, 그리 촌스런 딸애가 서울에서 왔겠노.”로 그해 여름을 회상하셨다.

 

  화장기 없는 민얼굴에 단발머리, 모양도 색도 없는 무명 쌀자루 같은 원피스를 입고 발바닥이 땅에 닿을 정도의 낮은 가죽 샌들을 신었었다. 장신구 하나 걸고 차지도 않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 본바탕이 그렇게 생겼다. “그래! 그때 정말 촌스러웠다.”라고 누군가 옆에서 거들면 어머님은 정색하시며 걔는 촌스러운 것하고는 다르지. 소박한 거지.” 후한 점수를 주셨다.

 

  촌스러움은 바탕색이라 치더라도 대범하지도 못하다. 소인의 성정을 닮아 그런지 나는 작은 것을 좋아한다. 과일을 살 때도 큰 것보다 작고 예쁜 것을 고른다. 큰 것을 다 잃어도 작은 것 지키는 소중함에 자존심을 건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신 듯, 어머님은 꽃의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작은 유리꽃병을 사다 주셨다. 그 후 나는 풀꽃 여인이 되었다.

이 꽃병에 한 줄기 풀꽃을 꽂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 버려도 좋을 성싶게 편안해진다. 욕심이 꽃병 크기만 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병통이 생겼다. 우쭐댄다. 허세를 부리며 나서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관심이 있는 일에는 목소리를 내며 덤벼든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차마 대놓고 당돌하다고 하지 않고, 민망한 목소리로 당차다고들 한다.

 

  도심에서 넓은 아파트, 큰 냉장고, TV, 큰 식탁을 추구하며 네모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둥근 선이 그리워진다. 고향의 초가지붕처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이다.

 

  작은 산골 마을. 그곳에서 봐 주는 이 알아주는 이 없이도, 별을 바라보던 풀꽃 닮은 한 소녀가 꽃병 안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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