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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데자뷔 déjà vu*

데자뷔 déjà vu*

 

 

어려서부터 공부만 했다. 강사 생활 석 삼 년 만에 부모님께서 그렇게도 바라던 꿈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의 꿈이 정령, 대학교수였을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임과 함께 한평생 살고 싶은, 그의 꿈은 병풍처럼 둘러선 산과 강물이 흐르는 양지바른 곳에 별장을 마련하는 거다. 평일에는 그의 부모님께서 노후를 보내시고, 주말에는 자신의 식구가 휴식할 것이며, 훗날, 잔디밭에서 자손들의 재롱을 보는 꿈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힘들게 앞만 보고 도전하던 시절에, 오가며 봐 두었던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과 해 질 녘이 아름다운 강가에 드디어 아지트를 마련했다. 산기슭이라 인적도 드물다. 그가 그곳에 있든 없든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활이 바쁘다. 겨우 짬을 내어 별장에 간다. 그날도 낮에 발표논문 작업을 컴퓨터로 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향한다.

 

아차차, 정신머리하고는!” USB를 놓고 왔다. 급히 차를 돌려 별장으로.

 

꿈이런가.

해 질 녘 정경이 명화다. 장작을 패던 아저씨와 식사를 준비해주던 아주머니가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밀레의 그림처럼 고즈넉하다. 그의 꿈은 정작 다른 사람이 누리고 있다. 부모님은 요양원에 계시며, 아내는 아이들 조기교육을 위해 다른 나라에 가 있다. 원룸에서 혼자 자고 혼자 먹고 세탁소에서 혼자 드레스 셔츠를 찾아 입는 기러기아빠다.

 

한 줄기 푸른 산에 경치가 그윽하더니, 앞사람이 가꾸던 밭과 토지를 뒷사람이 거두는구나. 뒷사람이 거두어 얻는 것을 기뻐하지 말라. 다시 거둘 사람이 뒷머리에 또 있느니라.’ 땅은 본래 주인이 없다. 자연은 변함이 없고 사람만 자꾸 바뀐다. 그에게 청산경색*靑山景色은 덧없는 아침이슬이다.

 

세계의 하늘길, 바닷길, 땅길을 물리적으로 봉쇄했다. 다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누릴 수 있을까. 요즘, 자녀유학도 별장도 요양병원 방문마저도 차단이다.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마저 그리운 펜데믹 시절이다.

 

 

 

 

 

* 데자뷔 : 旣示感,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프랑스어 이미 보았다.’

* 一派靑山景色幽 前人田土後人收 後人收得莫歡喜 更有收人在後頭 - 明心寶鑑

 

 

2020 현대수필 여름호

등단지 : 에세이문학

저서 : 타타타 메타』 『빈빈』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매실의 초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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