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클리닉
뭐하나 제자리를 잡은 것이 없다. 어수선하다. 슬리퍼가 먼저 보였다. 구겨지고 헐렁한 바지와 흰 가운 안에 보이는 꼬질꼬질한 티셔츠…, 도대체 환자를 맞이하는 단정한 성의가 없다. 의사만 그러한가. 어금버금하기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무표정에 뼈가 앙상하여 환자보다 먼저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젊은 선생은 입술이 부르터 터졌고 이마는 M자 어르신이다. 병원의 구성원이 내 눈에는 급조한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보였다.
신장개업한 동네 분식 가게 분위기다. 화분이 서너 개 있다. 꽃은 비록 시들어있어도 ‘ㅇㅇ고등학교 ㅇㅇㅇ이 보냄’ 리본에 적힌 실명은 선명하다. 진료실 안에는 조악한 플라스틱 꽃이 ‘나도 꽃’ 얼굴을 내밀고 환자를 구경한다.
두 번째 간 날, 간호사가 “오늘은 진료비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처음 날 다 계산이 되었단다. 그래도 진료하고 주사 놓고 운동요법이라며 몇 명이 달라붙어 이리저리 비틀어 당기고 밀고했는데…. “원장님 경제 사정이….” 의료보험 처리를 못 해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환자들한테도 첫날 한꺼번에 받고 재활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다음 주 마취 후 씻어내는 치료를 다시 하게 되면 이만 원 정도 추가 비용은 나올 수 있다며, 보살님처럼 빙그레 웃는다.
희한한 일이다. 시트콤을 보다가 생뚱맞게 눈물이 나오는 감동이다. ‘말이 되나?’ 본래 병원이라는 곳은 사람만 보면 일단 붙잡아 각종 검사부터 시작한다. 대부분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기계가 하는 고비용 검사다. 여기서는 그 흔한 엑스레이조차도 찍지 않았다.
이 병원에 오기까지 몇 달 동안 용하다는 개인 정형외과, 한의원, 종합병원을 헤맸다. 내가 심하게 아파하니 남편이 ‘오십견’ 인터넷검색을 하여 전국에서 가장 많이 시술한 곳을 찾아온 중이다. 그것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르내린다. 오죽하면 지금도 ‘무슨 꼼수가 있겠지.’ 신뢰 3, 의혹 7 중이다. 마취과 통증클리닉이 맞나? 혹시, 마약(?)인가 살피는 중이다.
첫날, 내 순서가 되니 “양쪽 팔 한 번 올려 보세요.”가 검사 끝이다. 서운함을 넘어 내가 다 불안하다. 아무 검사 없이 팔을 올려봐라. 내려 봐라. 단 두 마디로 진단하고, 그리고 한마디로 병명을 말한다. 예약하고 서너 달 기다리다 가면, 검사 몇 개 한 다음 진료날짜 잡고, 진료날짜에 가면 몇 마디 물어보고 또 육 개월 뒤 경과 보자하고, 일 년이나 일 년 반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차 나게 긴장감은 줘야 진정 명의답지 않은가. 팔만 올려보면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죠?” 라며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환자 자격이 없다는 말투다.
그 의사는 도무지 친절하지 않다. 그의 태도와 의료행위는 사찰 일주문 입구의 사천왕 모습처럼 고약하다. 금방이라도 마구 칼질하고 맷돌에 갈고 불에 지질태세다. 내 팔뿐 아니라 말투도 집어던지듯 함부로 한다. 나는 폭언의 틈새를 비집고 “참 고단한 직업을 택하셨어요.”라고 했더니, 자신은 “참 착한 직업이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적어도 말 잘하는 정치인들보다는 거짓말도 공갈도 협박도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에게는 마치 ‘청렴과 숭고함으로… 나의 의술을 펼치겠노라’고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들렸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웠다. 커다란 장침으로 내 목 급소부문에 침을 꽂는다. 마취하는 것이라 했다. 겁에 질려 남편을 불러달라고 했다. 꼭 밥을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간호사에게 혼자라도 나가 점심을 챙겨 먹으라는 말 좀 전해 달라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나왔다. 나의 눈물을 보던 간호사는 “아줌마, 이건 그런 시술 아녜요.” 서너 시간이면 깨어난다며 내 남편을 자기 집의 골칫덩어리 남편 나무라듯 나무란다. 적어도 의사와 간호사의 호흡이 척척 잘 맞는 것 같아 그나마 안심은 된다.
시술하면서 주절주절 상황을 설명한다. 내 주위에 몇 명이 둘러서서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차가운 물이 팔 안으로 들어오는데 몹시 시리다. 시술 후, 식염수를 주입하여 염증과 혈액으로 얼룩진 관절을 씻어내는 중이다. 꿀쩍 꿀쩍 흡입하여 빼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중간에 기구를 떨어뜨린 직원을 나무라는 소리에 점심 메뉴로 뭘 시켰느냐는 잡담이 오간다. 내가 다 듣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나 당최 입도 눈도 몸도 정지되었다. 한 시간 남짓, 내가 살아있음은 오로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환하고 따뜻하다는 느낌뿐이다.
회복실로 간다며 일어나라는데 내 팔이 힘없이 ‘툭!’ 떨어진다. 마치 변신 로봇 팔이 한 짝 늘어진 모양새다. 작은 간호사만 환자 팔을 잘 받쳐 들지 않았다고 야단맞는다. 그 순간, ‘영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프랑스에서 죽어 영국으로 돌아올 때, 화물칸에 실려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고귀한 누구라도 영혼이 없으면 짐짝이 된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데…, 서글픔이 밀려온다.
회복실에 오니 칸막이 안마다 허리가 뒤틀린 사람, 뻗정다리의 사람, 팔이 돌아간 사람, 목이 뻣뻣한 사람…. 하루에 수천 번씩 죽고 되살아나는 고통을 받으며 잠시도 평온을 누릴 수 없다는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에 온 것 같다. 모두 ‘신의 은총’을 기대하며 전국에서 모인 환자들이다. 마른 장작개비 내팽개치듯, 쓸모없는 물건 내다 버리듯,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마구 당기고 패대기친다. 내 몸이 이렇게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처음이다. 껄렁껄렁한 뒷골목 똘마니처럼 툭툭 던져버리는 의사의 말투도 몇 주 동안 익숙해지니 정겹게 들린다. 그 와중에 자기의 의과대학 2년 선배가 대선에 나오니, 꼭 그 사람을 택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세속에 대한 관심은 있는 모양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분이 나에게 그 전에 팔이 아파 고생하더니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그동안 팔이 아팠던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엇! 뭐지!’ 진정 그곳은 명 클리닉이었을까?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류창희 / 선우미디어
《창작산맥》 2016. 가을호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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