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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아씨의 프로방스

아버님의 안경

아버님의 안경

 

 

 

 

아버님이 걸어 나오신다. 내가 처음 아버님을 뵙던 그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늘 말쑥하신 차림이라 변한 건 예전의 장년이던 아버님이 지금 구순의 노년으로 물리적인 숫자일 뿐, 걸음걸이 또한 언제나 반듯하시다. 아무리 자식 앞이라도 슬리퍼이거나 운동복 차림으로는 나오지 않으신다.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신사의 품격이다.

 

그런데 요즘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아하! 이를 안 넣고 나왔구나.” 하실 때가 있다. 남편은 잽싸게 차를 돌려 다시 돌아간다. 틀니가 없으면 음식을 씹어 넘기기가 힘드니 메뉴를 죽으로 바꾸거나 후루룩 넘어가는 가락국수를 잡수셔야 한다. 아버님은 특유의 고유음식을 고집하시지 않으신다. 일본식 돈가스나 스테이크 또는 햄버거 피자의 퓨전 음식도 즐겨 드신다. 아침 식사도 샐러드와 빵 우유 주스 등이다

 

그날도 막 식사를 하려는 찰나, “아차차! 내가 안경을 안 쓰고 왔다.”시며 깊은 한숨을 쉬신다. 남편은 얼른 , 아버님 잘 안 보이시죠?” 금방이라도 집으로 모시고 갈 태세다. 아버님은 괜찮다고 하신다. 얼마 전에는 안경테가 헐거워 바꿔야겠다고 하시기에 안경점으로 가려니 극구 사양하셨다. 그 안경테는 일본에 있기에 일본에 한번 다녀오시겠다고 하셨다. 남편이 요즘은 국산이 훨씬 더 좋다며 해외 제품도 우리나라에 다 들어와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반찬을 집으시며 내가, 얼굴이 조금 길어서아버님 안경은 도수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처음 알았다. 아버님의 안경이 패션이라는 것을. “어머머, 그러셔요.” 그 얼마나 멋지신가.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며 남편은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나는 60년 만에 처음 알았다며 대단히 억울한 양 혀를 내두른다. “?” 난 당신이 아버님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정신과 건강과 처세는 물론 당신의 외모 즉 멋까지 철저하게 관리하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신나서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내 남편뿐 아니라 내 아들과 내 손자도 이다음 우리아버님을 닮았으면 좋겠다. 아버님은 조실부모하셔서 부모님의 얼굴을 모른다고 하셨다. 그 당시 사진도 한 장 없었으니 거울을 보면서 내 안에 부모님의 모색이 있으려니 여긴다고 하셨다. 어쩜 안경은 아버님께서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창호窓戶 일지도 모른다.

 

천경자 화백의 수필 눈썹을 읽은 적이 있다.

 

서로 만나고도 10여 년 사이에 두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세수하고 난 얼굴을 남편에게다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버젓이 눈썹을 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눈썹이 약하면 형제 선이 없다고 눈썹을 그리는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자신의 캐릭터를 지키고 싶은 거다. 어느 날 천경자는 함께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이 자신의 얼굴을 닦아줄 때, ‘사랑이란 미태美態나 미태媚態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부단한 생명력을 저축하며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나의 친정엄마는 열일곱에 시집와 평생 민얼굴을 하지 않으신다. 예전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수군거렸다고 한다. 남편이 타지에 나가 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때는 오히려 흉이 되었다. 그러나 팔순이 가까운 지금도 날마다 아침부터 곱게 단장하신다. 나보고도 여자는 세수를 자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수해야 거울을 보게 되고, 거울을 자주 봐야 예뻐진다며 여성의 정체성을 심어주신다. 엄마에게 화장은 돌아오지 않았던 남편을 그리는 그리움이다.

 

사실, 나는 얼굴 꾸미기에 게으르다. 색조화장은 거의 없다. 세수하고 스킨로션도 제대로 바르지 않으니 구석구석 뽀득뽀득 성심성의껏 닦지도 않는다. 핑크빛 사춘기와 청운의 꿈을 꾸던 시절도 그러했다. 그러니 새삼스레 영양 크림으로 마사지하겠는가. 피부 당기는 것이 싫어 물로 거푸거푸 시늉만 하고 자는 날이 더 많다. 그런데 나는 집에만 있는 전업주부가 아니다. 매일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일을 한다. 어느 때는 성의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비비크림이라도 발라야지 싶다가도 일주일을 못 넘기고 도로 민얼굴로 나간다. 예쁘지도 않으면서 뭘 믿고 그러느냐.” 대 놓고 나무라는 친구들도 있다. 글쎄, 나는 뭘 믿고 그럴까.

 

그렇다고 내가 맹탕 뻗대고 게으른 것만은 아니다. 을 당했거나 크게 아프지 않는 한 세 개의 손가락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은 자주 들인다. 꽃물들인 손톱에 예의를 차리느라 손톱을 길게 기르거나 반짝이는 반지도 끼지 못한다. 사시사철 옷차림이 매양 비슷한 디자인과 무채색으로 밋밋하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철칙이 있다. 야외나 등산이 아니라면 먼 나라 여행일지라도 샤넬라인 정도 찰랑거리는 원피스로 여성의 곡선은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멋을 낼까. 아버님의 안경과도 같은 멋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설렌다. 나는 남자친구와 연애하던 시절, 칠 년 동안 편지글과 몸과 마음을 다 주었다. 그때 나는 붉은 립스틱이나 꼬불거리는 파마머리로 목소리 크게 함부로 말하는 와락 여사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 무조건 그를 나긋나긋하게 좋아했다. 비록 그 청년에게 순결純潔을 잃었을지언정, 순수純粹했던 마음만은 절대 잃을 수 없다. 그가 나에게 범(?)했던 사랑을 해로偕老하는 그 날까지 지켜주고 싶다.

 

나의 멋, 순수라는 무기로.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류창희 / 선우미디어

『한국 동서문학』 2016 겨울





류창희 프로필

2001년 《에세이문학》 으로 등단 

수필집 『논어에세이 빈빈』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매실의 초례청』 현대수필문학상





류창희 

rch56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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