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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아씨의 프로방스

자는 아이가 예쁘다

 

자는 아이가 예쁘다

 

 

 

아들이 이사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왔다. 내가 잘 볼 테니 맡기고 가라 했다. 거실에서 놀던 손자가 외투 입는 어미 아비를 쳐다본다. 그 눈빛이 안테나다. 어떤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는 감지 촉이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소리에 내 품에 안긴 아이 몸에서 예감의 기운이 싸하게 번진다. ‘딸각닫히는 문소리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드디어 정적을 깨고 울기 시작한다.

 

후두둑 시작한 비가 소낙비로 변하듯이 세차고 맹렬하게 운다. 울기만 하는가. 사설을 늘어놓는다. 나는 깍지 끼워 안고 아이의 우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도 민망한지 얼른 눈길을 피한다. 아직 엄마, 아빠, 맘마라는 말도 못하는 아이가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이유를 붙이는 듯 판소리 음률을 타며 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너와 나 우리는 같은 공간 안에 맡겨진 신세이니, 적당한 시간 안에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그래, 너도 서럽지?” 네 맘 나도 안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다. 측은한 눈빛으로 우두커니 바라보니 차츰 울음이 잦아든다. 그러면서도 몇 분 간격으로 울분의 한숨을 토해 내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서러운지 가쁜 숨을 몰아 내쉰다.

 

아기는 예쁘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도 예쁘지만, 지금처럼 쌔근쌔근 잠자는 모습이 더 예쁘다. 전에 시어머니는 아들이 잠을 자면, 마치 대비마마가 새로운 등극 날을 맞이한 것처럼 서슬 퍼런 카리스마를 보이셨다. 잠자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인양 자게 놔둬라!” 집의 아이들이 찬장 유리를 깨고 피를 흘리며 놀아도 나의 남편은 우는 아이는 보지 않고 곁에서 잠만 잤다.

 

왜 그랬을까?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쁘다. 자는 아이는 떼쓰지 않는다. 자는 아이는 엄마에게 내 처에게 왜 그러느냐고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잠자는 아이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 보지 않는다.

 

잠시 남편이 일본으로 연수가면 집으로 전화했다. 어머님이 받아 꾀꼬리처럼 높은 음으로 통화하고 딸각 끊으신다. 이제나저제나 바꿔주시려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니가 일본어를 아냐? 일본 지리를 아냐?” 야속하다. 어머님은 일본에서 성장하셨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무려면 아들이 일본어와 일본지리를 알려고 집에 전화했었을까.

 

일주일 만에 일본에서 돌아오면 보름정도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면서 낮과 밤을 또 잔다. 내가 아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면 , 잔다.” “, 깬다” “실컷 자게 내버려둬라며 자장가를 대신하셨다. 나도 으레 일본과 한국의 시차이려니 여겼다. 눈을 뜨면 무엇이 편안하겠는가. 이 꼴 저 꼴 안 보고 고부간의 시차를 피하는 잠은 아들의 처세술이다.

자는 아이가 왜 이다지도 예쁜지 이제야 알겠다. 나도 자는 손자가 더 예쁘다.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류창희 / 선우미디어

 

인간과 문학2016년 여름호


 


柳昌熙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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