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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촌평> 류창희의 「체크 인, 체크 아웃」

인도는 여행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면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관점에 따라 아주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본체는 하나인데 느끼는 인도는 찾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여기, 글 솜씨 좋은 수필가가 또 다른 인도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홍미진진하다. 그는 인도를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궁금해 쭐렁쭐렁 따라나선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라고 입을 뗀다. 호기심을 부추기는 별난 시작이다. 바로 몇 단락 따라가 본다. 도입부분에서부터 입꼬리가 치올라간다. 이런 경우를 두고 ‘빨려든다.’라고 하는 것인지.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글발이 묵은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글 판은 가볍게 읽고 반짝 즐기도록 분위기를 아우른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부담없이 읽고 즐기면 그것이 전부 아니던가. ‘주제가 어떻고, 형식이 어떻고’는 마음 편하고 시간 날 때 따질 일이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작품을 다 꿰뚫어 보아도 정작 인도의 풍광이나 역사, 문화같이 흔한 여행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고작, 숙소에 들고 나는 이야기로 인도 방문기를 마치다니, 이럴 수가….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도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종업원은 서양방식에 적응된 큰 도시의 고급호텔 직원과는 다르다. 잡물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도 사람이다.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도 방법도 모두 인도식이니, 때 묻지 않은 인도를 만난 셈이다.

 

숙소에 도착한 화자 부부, 숙박서류 작성부터가 심기를 거스른다. 여기는 모든 절차를 사람과 사람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소통만이 통용되는- 곳이다. 컴퓨터에 담아온 정보나 서류는 무용지물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제도에 길들여진 사람들, 그래서 이들과의 소통은 느낌과 감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화자다. 언어? 서로 통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겁날 게 없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가 “또박또박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그 뜻을 알아차리는 인도사람들, 그들이 전하려는 뜻을 미루어 이해하는 화자. 그래서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모든 건 사람에게 물으면 다 된다.”라며 자신을 보였나 보다.

 

화자는 소통에 불편을 겪으면서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 기계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이다. 스마트폰이 대화를 단절시키는 우리 동네 풍경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화자는 이 엉뚱한 즐거움을 발설하지 않는다. “나는 아예 퍼질러 앉아서 구경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말 못하고 글 모르는 천지 바보 멍청한 여편네”는 혼자 느끼는 해방 감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심산일 것이다.

 

화자가 지극히 제한된 사람과 제한된 장소에서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인도를 느낀다는 추론이 너무 비약은 아닐까?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묘사 속에 살짝 감추어진 메시지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인도인의 사람을 중히 여기는 인본주의, 정(情)도 있고 칭찬할 줄도 알지만, 속내를 감추려는 미덕, 남의 부부를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는 신사도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전문 보고서보다 사실전달 효과가 뛰어나다. 피부에 느껴지는 현장 묘사가 긴 설명을 대신한다.

 

화자는 이미 풍부한 경력을 가진 여행 베테랑이다. 그간에 얻는 노하우만으로도 현지인과 소통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나의 고향 포천사람들의 말씨와 눈빛”을 닮았다. 가식이나 과대포장 없이 고향 사람들 대하듯 하면 만사가 통한다. 엉뚱한 곳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방식대로 상황을 즐기고 있으니, 이미 본전은 뽑은 셈이다. 이제부터의 여행을 그냥 보고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지도에서만 인도를 알아보는 우리네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땅 뜀도 못할 “자이살메르”, “카주라호”, “아그라”, “바라나시”를 두루 돌아보았다니 인도의 참모습을 접하였을 터. 곳곳에서 한국인의 꼿꼿한 콧대도 내보이면서 질 좋은 여행을 만끽하였을 이들 부부 여행객에게 박수를 보낸다. 

 

 


윤성근 skyun0058@hanmail.net


《에세이스트》2013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