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수필 월평
《수필과 비평》- 10월호
이달의《수필과 비평》 에서는 류창희의 <오키나와에서 삿보르까지>를 주목했다. 작가는 먹는데 관한 한 실력이 없는 인물이다. 많이 먹지도 못하고 즐겨 먹지도 않는다. 새댁시절 수수깡처럼 깡마른 그녀의 몸매를 두고 시어머니가 ‘대문이 부끄럽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시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귀국했던 분으로서 식탁이 한일절충형이다. 자신이 먹지 못하는 외래음식을 가족을 위해 요리해내야 하는 삶도 새댁으로서는 시집살이가 아니었을까.
시댁 어른들은 아침을 빵으로 드셨다. 밥이면 있는 반찬에 국 하나 더 끓이면 아침 식사가 될 것을, 빵을 굽고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 주스를 만들고 매일 바뀌는 감자 마카로니 양상추 마요네즈 집에서 손수 만든 무화과 잼 등 샐러드 종류에 두세 시간을 꼬박 서서 식구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나는 지쳐 혼자 구석에 앉아 저녁에 먹다 남은 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우리 서울 며느리, 촌스러워서 우짜노.” 나를 가엾다고 하셨다.
-류창희 <오키나와에서 삿보르까지> 부분
시집에서는 일본에서 개발된 일본식 양식, 특히 돈가스를 즐겨 먹었다. ‘햇볕냄새가 배도록 잘 말린 황금색 빵가루를 입혀 튀긴 바삭한 돈가스를 한입 가득 먹고,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낸다. 혀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 없이 고기와 함께 부서지는 일체감. 돈가스를 한입 먹고 입안에 남는 느끼함을 없애주는 양배추의 산뜻한 느낌이 더 맞았다.’라는 일본사람들의 말을 새기면서….
시어머니는 그 맛에 양배추 채에 마음을 두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식사 도중에 이불 꿰매는 돗바늘을 가져오라 하신 다음, 채 썬 양배추 잎줄기를 무명실처럼 바늘귀에 꿰어보라 하셨다. 작가는 어머니의 서슬에 베이지 않으려고 왼손이 오그라지는 것을 오른손으로 무던하게 덮으며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그녀는 양배추 채를 가늘게 써는 일에는 달인이 되었다.
일본사람들은 7세기 무렵 덴무천황의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로 육식을 먹지 못하다가, 메이지 유신으로 돈가스를 만들어내는 ‘요리 유신’을 하여 식탁을 풍부하게 했다. 그러나 현대는 영양 과잉으로 ‘나르는 돈가스’시대는 가고 웰빙 시대가 도래하여 일본도 문화 유신을 해야 할 때다.
한편, 작가는 새댁시절이나 지금이나 기름진 음식보다 우리 전통 음식의 따뜻함에 집착하고 있다. 그렇지만, 맛보다는 빈속을 때우는 끼니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대문이 부끄러운’ 여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류창희의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으로 작가의 문학적 경륜이 드러나는 수필이었다. 돈가스를 중심으로 한 일본식 양 음식과 작가 자신의 식생활을 날줄로 깔았다. 씨줄로 채식에서 육식을 거쳐 영양 과잉으로 이르는 일본 음식의 흐름에, 새댁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음식 역정을 역사적으로 번갈아 배치하여 형상화하였다. 자신의 체험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면서 거기에 유용한 정보까지 들어 있으니 성공한 수필이다.
이종렬 rjy48@naver.com
《한국산문》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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