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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의 초례청

김상병과 이이병

세일러(sailor)복이 삼박하다. 어미가 먼저 거수경례를 하면 겸연쩍게 웃는다. 군기가 빠진 모습이다. 집에만 오면 헐렁해지는 아들 김상병이 후임 이이병과 함께 들어섰다.

 

해말간 피부에 조각해놓은 듯한 이이병. 허겁지겁 빠른 속도로 뚝배기 속 알밥을 뜨거워 쩔쩔매면서도 누가 쫓아오는 듯 퍼먹는다. 천천히 먹으라고 말하면 더 반듯한 자세로 각을 잡으며 속도를 낸다. 김상병에게 이이병좀 말리라고 했더니, 이병 때는 본래 그러는 거라며 빨리 먹고 다음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나.

 

말끝마다 몇 번씩 “예! 이이병 잘 먹겠습니다. 예! 이이병 잘 먹었습니다.” 구호까지는 습관으로 여기지만, 거수경례도 아닌 매번 다시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절도 그 자체다. 엉겁결에 나도 따라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받았다.

 

이이병은 한국말이 서투르다. 일본에서 성장했다는 그는 한국남자들의 씩씩하고 박력이 있는 모습을 선망하여 한국에 체험입대를 했다. 군복을 입은 겉모양새는 똑 같은 해군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퓨전(fusion)식 군인이다. 우리 가족은 그 꼴이 재미있어 자꾸 말을 시키는데 군기가 잡힌 이이병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김상병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한 자리에서 느긋하게 앉아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돈보다 시간을 아까워한다. 낮잠이나 TV 컴퓨터게임 등으로 하루를 빈둥대는 소일은 일상에 없다. 그렇다고 모범생은 아니다. 객기에 열정을 다하는 마니아(癖)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니 키에 비해 가슴둘레가 모자라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떨어졌었다. 몇 개월 동안 몸무게를 늘리는 노력으로 어렵사리 입대했다. 상병이 된 요즈음, 조금은 느긋해도 될 계급이 되었건만 하필이면 군대에서 뒤늦게 지적욕구가 솟구쳐 하루 3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책읽기를 한다고 말한다. 진작 고등학교 때나 재수할 때 그랬더라면 좀 좋았을까.

 

두 수병(水兵)은 서둘러 사복으로 갈아입고 털모자로 짧은 머리는 가리더니 모자 위에 선그라스를 얹는다. 이이병은 한술 더 떠 금속성귀고리까지 반짝이게 달았다. 누가 이들을 무적해군으로 보겠는가. 마치 랩송의 가수들 같다.

 

김상병의 이병시절은 이이병의 곱상한 인상과는 달리 얼굴은 붉은 사과처럼 상기되었고, 손은 살픗 부었으며, 목소리는 늘 쉬어있었다. 온 몸에 군기가 들어 금방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신바람이 나서 군대이야기를 하면 동생은 “형님아 형님은 군대체질이다. 군대에 말뚝 박아라” 놀려대곤 했다. 적극적인 자세는 구보 축구 포스터그리기 구호 외치기에서 국방일보에 <짧지만 긴 시간> 이라는 글이 실리기까지 치열하게 이병생활을 즐겼다.

 

군대체질인줄만 알았던 김상병, 어느 날 3대가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데, 대한민국 군인 중에 해군군기가 가장 빡시다며 엄살을 떤다. 그래 네가 고생이 많구나 위로를 해야 할 어미. 요즘 군대는 보이스카웃이나 우주소년단이라고 해군은 해양소년단이 캠프 간 것과 마찬가지라며 분위기를 눌렀다. 아들은 전생까지 들먹이며 ‘무슨 죄가 많아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눈자위까지 젖더니 급기야는 팔자타령으로 넘어간다. 듣고 있던 외할머니 “얘야 그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아직 네 나이는 팔자…” 말하던 자신도 무안한지 글썽이던 눈물을 거두며 킬킬댄다. 사내자식이 그 정도는 참아야지. 앞으로 살아가려면… 훈계조로 들어가니 “울 엄마 같은 사람 몽땅 군대 보내야한다”며 약발을 받는다.

 

여자가 아이 낳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맞수로 들고 나서본다. 넌 군대 한번이지, 난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큰소리치지만 사실 나는 아이 낳는 일이 그 중 쉬었다. 지금도 아이가졌다고 헛구역질하는 새댁을 보면 부럽다. 오죽하면 아이 머리가 반쯤 나온 상태로 아이를 낳으러갔다가 간호사한테 야단을 맞았을까.

 

아들을 최전방에 보내놓고 새벽마다 찬물을 떠놓고 손을 넣어보며 추위를 같이 한다는 모정이 신문독자란에 실렸다. 최전방에 대하여는 나도 할 말이 있다. 북쪽에서 남쪽 끝으로 시집와 군대생활 하듯 살았다. 군에 간 아들을 핑계 삼아 최북단으로 면회를 가고 싶다. 그 날 그 곳에는 눈이 펑펑 내려야한다.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어 얼마간 산간지방에 갇혀 오도가도 못해야한다. 장작불로 군불 때며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에서 산후조리인양 며칠 푹 쉬고 싶은데, 남쪽은 눈도 안 온다.

 

부산이 처음이라는 이이병과 형제 같은 선임이 되겠다는 김상병. 두 수병을 태우고 진해로 복귀하는 차안이다. 꿈속에서도 해안선을 바라보며 보초를 서는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이이병이 졸고 있다. 이이병에게 오늘 외출이 즐거웠느냐고 물으니 화들짝 다시 구호를 외친다. “예! 이이병 즐거운 주말이었습니다.” 목소리에서는 힘찬 파도가 출렁인다. 2년 2개월의 ‘우선멈춤’ 시간 속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창출시키는 한류(韓流)의 주역들. 그들의 병영생활에 “필승!”

 

 

 

<<매실의 초례청>>


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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