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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의 초례청

회색과 갈색의 눈길


노인환자들은 수발하는 이가 누구인지 항상 궁금한가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며느리라고 하면 부러워하고, 딸이라고 하면, ‘그럼 그렇겠지.’ 하지만 멀리 있는 딸은 이웃만도 못하다. 어머님은 딸이 없어 며느리들만 드나든다.   

 

평소의 어머님은 늘 건강하셨다. 뒤란 수돗가에서 김장을 하거나 큰 이불 빨래를 할 때 늘 힘이 장사였다. 며느리 셋이 도우면서 힘에 부쳐 절절 매도 이래라 저래라 무거운 것을 번쩍번쩍 들며 지휘하셨다. 군대사열 받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어머님의 성에 차지 못해 매번 불호령을 들어야했다.

 

몇 년 전, 어머님은 살짝 뇌경색이 지나갔다.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살짝’이라고 표현을 하지 당신께서는 살다가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어장애를 극복하느라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아 야 어 여” 라고 또박또박 외웠다. 한쪽의 수족 장애를 회복시키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백팔배도 올렸다. 매일 발음연습과 운동을 한 덕분인지, 다시 5센티 굽의 구두를 신고, 붓 글로 금강경을 쓰고, 체육센타에 다니셨다.

 

당신의 강인한 의지로 움직이는 어머님을 보지 못하고, 어머님은 본래부터 건강한 체질이라고 믿었다. 조금 피로하다 싶으면 영양주사를 맞는 자기관리도 오히려 건강을 누리는 객기쯤으로 여겼다.

 

절규하듯 외마디 “아!” 소리는 자식들의 방심한 마음을 찔렀다. 안타까워 곁에서 부축이라도 하려고하면 단호한 표정으로 손 사레를 친다. 망연히 바라 볼 수밖에,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손 사레 앞에서 며느리들은 괜히 죄인인양 기가 죽었다. 

 

어머니는 큰 체구는 아니지만 다부지고 탄력이 있었다. 그 탄력 중 통통한 젖가슴은 세 며느리를 다 갖다 합쳐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늘 우스갯소리로 문자를 잘 만드셨는데,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자두하수’(紫頭下垂)라며 아들들에게 아내 사랑할 것을 당부하셨다. 붉은 젖꼭지가 위로 붙은 처녀들보다 자식 낳고 모유를 먹여 아래로 쳐진 조강지처만한 여자는 없다며 며느리들 편이 되어주셨다.

 

입원한지 열흘이 넘었다. 오늘에야 겨우 가볍게 샤워를 해도 좋다는 의사의 허락을 받았다. 샤워실 의자에 앉아있는 어머님의 젖가슴은 마치 멍석 위에 팥알처럼 젖꼭지가 건조해 보인다. 가느다란 다리에 의지해 떼어놓는 발걸음이 아슬아슬하다. 엉거주춤 선 다리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넣으니 “느그 남편들 빠져 나온 자리니 매매 잘 닦아라” 허세를 부리신다.

 

참깨 밭에 물을 주다 허리가 삐끗한 걸로 가볍게 여겼는데, 오래 전부터 진행된 골다공증이란다.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뼈대만 겨우 세워져있다고 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며느리들과 거실에서 스포츠댄스를 추셨는데 삽시간에 무너져 환자가 되셨다.

 

몸이 의지대로 안 되니 허허롭게 눈길만 자꾸 응시한다. 예전에 어머님 눈은 잘 익은 까마종이 열매처럼 반짝 반짝 빛났다. 그에 비해 난 어릴 때부터 힘없는 갈색 눈이다. 어머님과 같이 있으면 “딸이냐?” 는 물음을 자주 듣는다. 눈이 큰 것 외에는 별로 비슷한 데도 없다. 생활을 같이한 세월동안 표정이 서로 닮아 진 모양이다. 사람은 눈빛에서부터 기가 쇠락해 가는지, 회색으로 변한 어머님 눈동자와 갈색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서로 한참을 바라본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나 어리어 젖는다. 애써 피하니 눈물이 흐른다.

 

뼈에 칼슘이 빠져나가 구멍이 생기듯 눈물도 흘리면 마음이 숭숭 뚫려 자꾸 약해진다.

 

어렸을 때, 나의 할머니는 내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과도 같았다. 자그마하고 가냘팠던 할머니는 눈이 방죽만큼 크고 깊었다. 속눈썹이 길어 그늘이 더 드리어져 있었다. 마냥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늘처럼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윽하고 힘없는 눈빛이 괜히 슬퍼 보였다. 할머니의 쪽찐 머리를 풀어 갈래머리로 땋았다가 틀어 올렸다가 미장원 놀이를 내 맘대로 했다. 마른 고추 자르는 가위로 손톱과 발톱을 자르고 버선을 신겨드렸다. 새끼손톱에 봉숭아꽃잎도 으깨어 얹었다. 말로는 싫다면서 가만히 계셨었다. 할머니는 노상 동무처럼 손잡고 노래하고 소꿉놀이를 해도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어린 손녀딸에게 육신을 맡긴 마음은 아마도 저 허허로운 눈길이었을 것이다.

 

비누질을 몇 번하고 ‘꽃을 든 남자’로 거품을 내면서, 봄 하늘의 종달새 마냥 쉬지 않고 재잘댔다. “어머님! 오늘 저녁에 아버님 오시라고 할까요?” 라는 말로 마무리 향을 더했다. 흘겨보는 눈빛이 싫지 않으신 듯하다. 새로 옷을 갈아 입혀 침대에 뉘어 드리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게 느껴진다. 저 퀭한 눈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침대 발치에 앉아 발톱부터 깎아드리며 명랑한척 너스레를 떠니 장단이라도 맞추듯 “똑 똑” 깎인 발톱이 하나씩 퉁겨 떨어진다. 순간, 어머님 발에서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감전이라도 된 듯,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짠〜한가 싶었는데 울꺽 울음이 토해진다. 뒤돌아 앉아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손톱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애꿎은 발가락사이 굳은살만 잡아 뜯고 있다. 앞 침대에 한쪽 팔을 못 쓰는 할머니와 입이 삐뚤어져 침이 흐르는 할머니 둘이서 또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치도 없이 “딸이요? 며느리요?” 묻는다.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가늘게 흐느낌만 전해져온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우리 할머니예요’

손녀딸의 마음이 된다.  

 

 

 

<<매실의 초례청>>2008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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