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 대박
먼지처럼 소멸하고 싶다. 그날을 위하여 그녀는 하루 시간을 안배한다. 티브이 보기다. 인문학 지식향연, 작가들의 사생활,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 휴먼 다큐, 요리人류 등 꿈과 미덕의 시선으로 예약버튼을 누른다. 예술도 고흐나 모네의 순수회화에 채널을 맞춘다.
빠른 성공의 정석, 그는 ‘꾼’을 꿈꾼다. 그날을 위하여 그도 티브이를 본다. 서민갑부, 장사의 정석, 추적60분, 사건25시, 4차 혁명 등 숫자나 처세가 들어가야 한다. 한동안 알래스카에서 16세 손자가 91세 할아버지와 금맥을 찾는 Discovery채널에 심취해있더니, 요즘은 목숨을 담보로 암초에 걸린 난파선을 뒤지는 프로를 본다. 앤디워홀의 브랜드디자인처럼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라는 신단을 세운다.
그는 좀 더 구체적이다. 월요일마다 아버님을 모시고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닷가 앞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개구리 주차를 한다.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비켜 빠져나갈 자리다. 그녀는 소심하다. 조수석에서 매번 불안하다. 뒤차가 차 빼라고 경적을 울리면 어쩌나. 마주 오는 차가 비키라고 삿대질하면 어쩌나. 빠른 걸음으로 엎어질 듯 그곳으로 뛰어들어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두 손을 모은다.
그곳에서는 복권을 판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당첨금이 많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당신에게도 저 불빛만큼 찬란한 여생이 기다린다는 듯 광안대교 야경까지 파도의 팡파르에 맞춰 퍼레이드를 펼친다. 청춘을 겨냥하는 카페와 비어, 레스토랑 호텔 모텔 등. 우리의 비상깜빡이까지 보태지 않아도 불빛이 광란하다. 흡족한 얼굴로 차 안으로 돌아와 안전띠를 맨다. 나는 다시 두 손을 모으고 ‘제발, 제발…’ 십수 년을 일주일마다 치루는 기도의식이다.
“안연은 거의 도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궁핍하여 자주 쌀독이 비워졌고, 자공은 천명이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물을 증식하였으나, 억측하면 자주 적중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하는 안연은 대소쿠리에 주먹밥 한 덩이와 물 한 바가지의 끼니조차도 배를 채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一簞食一瓢飮〕.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빈대인들 있었을까. 성정이 지나치게 맑고 깨끗하였으니, 빈대도 이도 벼룩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자공은 일부러 작정하고 투자하지 않아도, 억측億測하면 난세에도 슬기롭게 돈벌이를 잘했다. 그러나 상거래에 어긋난 농단壟斷의 기록은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위장전입을 하거나 담합하지 않아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주식도 부동산도 쑥쑥 올라갔다. 두 인물 중에 누가 내 배우자라면 좋을까. 투자의 달인 자공을 마다하는 것도 용기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밥 한 공기와 물 한 병 정도는 늘 있다. 하루 두 끼를 먹는 날도 없으며, 네 끼를 먹는 날도 없다. 때 되어 배를 채우면 만사가 형통이다. 어떻게 하면 더 감성적으로 낭만자락을 펼치고 오늘의 화평을 누릴까. 이 책 저 책, 이 일 저 일, 소소한 소일거리가 그때, 그때 떠오른다. 혼자 바스락거리며 하루, 이틀…, 한해, 두해 잘도 노닌다.
그래도 로망은 있다. 일상을 소요逍遙하는 다락방이 ‘꿈에 그린’이다. 계단이 좀 삐거덕거려도 괜찮다. 훗날 어쩌면 깃털처럼 가벼워 바람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 그 사다리로 오르기 위해 꼼수투자로 ‘떴다, 방’ 근처에 가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맹탕 경제에 멍텅구리는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위해 매일 강의안을 검토하며 비상을 꿈꾼다.
로또를 꿈꾸는가. 로또가 당첨되면 여자들은 단칼을 뺀다고 한다. 남편하고 반반씩 삼박하게 나눠 갖고 헤어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어떨까. 이순신의 후예가 되어 “나의 행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쥐도 새도, 아내도 모르게 잠적한다고 들었다.
매주 복권을 사는 남편도 어쩌면 나와 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뉴월 긴긴해에 다섯 달이나 먼저 태어났으며 더구나 미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내 밥을 먹는 것으로 보아 아마 내 간절한 기도는 신통력이 있는듯하다.
그는 요즘 로또의 근처에 다다른 듯하다. 아내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 직장의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근무하던 시절보다 퇴직 후의 일상이 더 바쁘다. 요즘 그의 카카오톡 메인 사진 옆에 문구가 있다. ‘휴대전화 바다 속에 있어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인지, 같이 잠수를 타자는 말인지. 본격적으로 따져 보려 해도 꼭 내가 잠든 시간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그가 찾는 금괴가 바닷속에 있는 모양이다. 과한 행복은 다 먹을 수 없는 제과점과 같다는데, 진열하여 보이기만 할 뿐 하루의 한계는 세 끼 식사다. 이 시대에 어디 안연은 쉽고 자공은 쉬운가.
미래를 꿈꾼다, 작은 새 둥지 같은 거처에서 병아리 모이처럼 적게 먹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날아가는 소요의 경지를. 부부는 오래전 초례청에서 표주박 술잔으로 합근례合巹禮를 마시고 한배를 탔다. 대박의 수장水葬이냐, 쪽박의 조장鳥葬이냐? 그녀와 그는 요즘 뜨고 있는 장례문화 해양-장과 드론-장 갈림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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