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련 瑚璉 <구름카페 문학상 수상>

돈의 무게

돈의 무게

 

  누군가 현수교 위에서 돈을 뿌렸다. 꽃잎처럼 가볍게 날렸다. 돈은 벌거벗은 맨몸으로 시퍼런 바다를 배경 삼아 적나라하게 춤췄다. 불꽃놀이로 유명한 광안대교는 4차선 도로로 속도제한을 하는 곳이다. 뉴스로 보니 다리 위가 온통 주차장인 듯, 차와 차 사이로 사람들이 북새통이다.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는 행동이 CCTV로 다 찍혔다. 1달러짜리 지폐 24장이었다고 한다. 나도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차에서 내렸을까.

 

  어느 날 도서관 계단에서 어느 분이 수줍게 인사한다. 반가워하는 눈빛을 보니 안면이 있는 사이일 텐데.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 수업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교재 대를 내니 선비는 손으로 돈을 잡지 않는다.”며 책을 내밀어 위에 올려놓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 제가 그렇게 겸손하지 못했었군요.” 지금 돈 줘보세요. 냉큼 잘 받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는 그 민망한 순간을 피하려고 언제나 봉투 하나를 미리 준비하여 알아서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어찌하였든 별난 사람이 되었을 터,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돈을 만질 기회가 없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설날이나 추석, 입학이나 졸업, 생일날에 아이들 손에 돈을 직접 쥐여주지 않았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돈은 가당치 않았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게 돈은 점잖지 못한 물건이라고 여겼다.

 

  직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월급봉투를 받았다. 우리 세대는 자신이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하고도 월급봉투를 엄마께 꼬박꼬박 갖다 드렸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라면 그 상황을 상상이나 할까. 당장 ?” 빚졌느냐고 물을 것이다.

 

  돈의 옷은 봉투다. 아담과 이브가 나뭇잎으로 중요부위를 가리듯, 부끄러움을 가리는 염치다. 축하하는 일에 맨 돈만 봉투에 넣지 않았었다. 그건 속적삼과 속곳을 갖춰 입지 않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규방 아씨의 품행과 같다. 축원을 담은 문구에 연월일시와 주는 사람의 이름을 손수 붓으로 써서, 속지로 돈을 감싸 넣어야 한다. 사람만 인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도 견격이 있듯, 돈도 격을 갖춰야 귀하다. 돈에 대한 예의다.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속지가 사라졌다. 은근하게 펼쳐보는 운치가 없다. 세종대왕 다섯 장의 부피면 좀 괜찮을 텐데. 아무래도 신사임당 여사가 주범인 것 같다. 한 장만 넣으면서 속지를 넣으면 실속 없는 사람으로 비칠 염려일까. 아니면 온라인으로 축의금이 오고 가는 세상이라, 통장에 찍힌 액수가 더 중요해서일까.

 

  어느 분이 아이 혼사에 실용적인 제안을 했다. 참석할 수 없으니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달란다. 차마 듣기도 민망하여 귓가에 흘려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상대방이나 나나 융통성이 없기는 바늘구멍이다. 예전에 축의祝儀는 촌지봉투로 하지 않았다. 잔치국수 한 다발이나 초상에는 죽을 쑤어 동이에 담았다. 가세가 조금 낫다고 하여 죽은 동이에 꾹꾹 눌러 담거나 수복하게 올려 담을 수가 없다. 축의는 저울에 단다는 말은 과례過禮를 삼가는 배려였을 것이다.

 

  내가 처음 돈을 본 것은 분실초등학교 시절이다. 여름방학이 임박한 어느 날, 키다리 여름꽃 한 가장이 밀짚모자에 꽂은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서 아이스케키~~~” 길게 외쳤다. 창밖을 내다보시던 선생님이 아이스케키!” 큰 소리로 부르셨다. 그리고 셔츠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그때 처음 봤다. 먹는 것을 돈 주고 사는 모습을. 뚫어진 세숫대야, 구멍 난 고무신, 과수원 철조망 끊은 것으로 엿을 바꿔먹는 것을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으나, 실제 돈이라니. 막대기에 얼음을 꽂은 아이스케키도 처음 보았다. 그때 아이스케키 맛이 달콤했는지 시원했는지, 정말 먹기나 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오로지 내가 본 것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돈의 가치를 본 것이다.

 

  지난해 아버지 산소에 갔다. 고향 선산 밑에 작은어머니가 계신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딸에게 밥도 차려주고 고구마와 참기름, 늙은 호박까지 넝쿨째 바리바리 차에 실어주신다. 나는 차에 오르면서 슬며시 작은어머니 허리춤에 초록색 봉투 하나를 챙겨 넣었다. 작은어머니는 얘는, 같이 늙어가면서.” 한사코 도로 내 손에 쥐여주고, 나는 나대로 작은어머니께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다.”라며 다시 찔러 넣고 봉투를 들고 옥신각신했다. 사촌 동생이 쳐다보고 있으니 봉투가 더 민망하다. 작은어머니도 나도 있는 힘껏 봉투를 떠밀었다. 서로 감당할 수 없는 정의 무게다.

 

  그리고 고속도로 이천 휴게소에서 가방을 열다가. 어찌, 이런 일이! 돈 봉투가 내 가방 안에 그대로 들어있다. 몇 장 더 챙겨 넣는다고 다시 보태는 과정에서 봉투가 바뀌었다. 그리하여 작은어머니께는 빈 봉투를 드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돈은 정만 담은 빈 봉투다.

 

'호련 瑚璉 <구름카페 문학상 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꽃 꽃병  (0) 2020.11.04
체크인 체크아웃  (0) 2020.11.04
솔직하게  (0) 2020.11.04
뜰에서 가르치다  (0) 2020.11.04
지지  (0) 202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