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다
-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형식이 내용보다 클 때가 있다.
라면 한 개 끓이는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지피는 격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무엇을 끓이려면 물과 불과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 바로 기본을 아는 것이다.
공자가 무성에 가서, 현악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이에 자유가 대답했다. “전에 저는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자가 도를 배우면 백성들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애들아! 언(자유의 이름)의 말이 옳다. 조금 전의 내가 한 말은 농담 삼아 한 말이다.”
子之武城ᄒᆞ샤 聞弦歌之聲ᄒᆞ시다 夫子莞爾而笑曰 割鷄예焉用牛刀리오 子游對曰 昔者애 偃也聞諸夫子ᄒᆞ니 曰君子學道則愛人이오 小人이 學道則易使也라ᄒᆞ더시다 子曰 二三子아 偃之言이 是也니 前言ᄋᆞᆫ 戱之耳니라 - 陽貨
공자의 제자 자유가 작은 고을의 읍장으로 갔다.
공자께서는 제자가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살피러 가셨다. 제자가 징을 치면 마을 사람들이 옹배기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릴 줄 알았다. 그런데 격식 차리고 앉아 거문고와 가야금의 현악기로 아악雅樂을 연주한다. 기특하여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한편 스승이 변변치 못해 제자들을 고생시키는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인들 왜 없었겠는가.
그리하여 “너는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큰 칼을 사용하느냐?”
나무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핀잔이 아니다. 논둑길이나 밭둑길을 지나 개울 하나 건너는 작은 마을에서 어찌 국가적인 차원의 예악을 연주하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고지식한 자유가 정색하며 “저는 선생님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모습에서 실천하는 제자의 올곧음을 본다. 어긋남이 없다. 그래,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구나. 내가 실언을 했다고 멋쩍어하신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라도 그 안에 예악禮樂의 질서가 있다. 국가에만 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 너와 나 두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 ‘인격’이 있다.
공자님은 덕치德治를 소중하게 여긴다.
무력이나 형벌로 국민을 억압하는 통치는 패도의 악덕 정치라고 했다. 요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특정지역을 폭격하고, IS 무장 세력이 불특정 다수에게 테러를 일삼고, 노동자의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이 그렇다.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면 소인이요, 예와 악, 즉 인정으로 조화롭게 화합하는 ‘하모니’가 군자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잘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고 함께 응원가를 부를 때, 저절로 손뼉과 발장단이 흥겹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젓가락이면 어떤가. 악기는 사람의 흥을 돕는 도구일 뿐이다.
앞집 꽃잎이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귀국연주회를 한다.
나와 남편도 초대를 받았다. ‘하우스콘서트’다. 초대장에는 연주곡목이 적혀있다. 꽃잎이 가족과 애완견 폴까지 카펫 위에 턱을 괴고 감상했다. 플루트 연주자인 꽃잎은 댕기 머리에 한복을 곱게 입고 사회자는 나비넥타이를 맸다. 10명 안팎이 45평 아파트 안의 적정인원이라 한다. 나는 그때까지 연주회란, 수백 명이 모여 문화회관 대강당쯤 빌려야 성공한 공연인줄 알았다. 뒤풀이 담소로 눈 마주치며 와인 건배까지 관객들과의 선율이 곱다.
연주회보다 훨씬 전, 아파트 집들이를 할 때다. 집안의 대소가 가족을 초대했다.
새집 부엌에서 국과 밥 몇 가지의 요리를 준비했다. 이제 거실에 상을 펴고 둘러앉아 먹기만 하면 된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부엌에서 거실로 나오기 직전, 나는 어머님과 아버님 어린조카들을 거실과 부엌 사이로 모셨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서너 사람만 서도 몸이 부딪힌다. 좁은 게 문제인가. 그래서 더 따뜻하다. 네모난 쟁반에 흰 장갑과 가위를 준비했다. 양쪽 끝에서 오색 테이프를 붙잡고 “이렇게 저희 집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 테이프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자르시라고 하니 생뚱맞은 제안에 모두 어색해하셨다.
그날 휠체어에 앉은 어머님은 ‘아이고, 우리 며느리 별난 짓도 다 하지.’라는 눈빛이 촉촉하셨다.
말씀은 할 수 없었지만, 그날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그 눈빛이 무얼 말하는지 나는 안다. 이사하던 그 이듬해 장맛비 내리는 여름날, 어머님은 저승 꽃밭으로 떠나셨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집들이할 날이 몇 번이나 될까.
어디 커다란 빌딩의 주춧돌만 대단한가. 어느 사찰의 상량식만 근사한가. 세상 내놓으라 하는 유명한 기업인의 준공식보다 내 자식의 초가삼간이 자랑스럽다. 나의 아이들도 집들이로 어미 아비를 초대할 날을 기다려본다. 그날,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고 내빈으로 가고 싶다. 아직 병아리 살림인데 벌써 나는 소 잡는 칼을 꿈꾼다.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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