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전 삼일, 후 삼일

전 삼일, 후 삼일

- 오불여제, 여부제吾不與祭, 如不祭

 

 

 

 

제사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나는 맏며느리는 아니다. 내가 혼자 제상에 올릴 음식 한 가지를 번듯하게 다한 적은 없다. 제사 사흘 전, 장보기, 다듬기, 탕국 거리 방정하게 썰기, 동그랗게 문어 데치기 등 재료를 준비한다. 그중 주 업무는 제사 당일, 전이 몇 가지가 되던 프라이팬에서 구워내고, 도미 조기 민어 가자미 등의 생선을 익힌다. 말하자면 지지고 볶고 차리는 역할이다. 음식만 지지고 볶겠는가. 전 뒤집다 동서들 관계도 탄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아도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해로 격을 갖춰 제사상을 차려내기 위한 나는 소품 담당이다.

 

 

제사 때는 조상이 앞에 계시는 듯이 정중하고, 산천의 신을 모실 때는 신이 앞에 있는 듯 경건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같다.”

祭如在ᄒᆞ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子曰 吾不與祭如不祭니라 - 八佾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음과 같다.’는 문구에서 자유를 잃는다.

어머님은 재계齋戒의 달인이셨다. 4대 봉제사에 설 추석 성묘 시사까지 한 해에 열두 번도 넘는 제사에 늘 전 삼일, 후 삼일을 주장하셨다. 어머님 생전에는 내가 참으로 괜찮은 며느리인 줄 알았다. 시집올 때, 제사상 뒤에 둘러칠 8폭짜리 반야심경 병풍도 손수 붓글씨로 써왔다. 그 당시 며느리 셋 중에 나만 어른과 함께 사는 전업주부였으니, 모든 행사에 온전히 투입되었다. 어머님의 위상은 공자가어孔子家語처럼 우리 집안의 법도였다. 속설에 집 나가 화냥질한 며느리보다 제사에 팔다리 부순 며느리가 더 불경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지금도 명절증후군으로 병원 입원이 쇄도하며, 인터넷에서 명절용 깁스가 품절이 나겠는가. 우리나라 어느 직장에서 여자들이 제사에 일주일 정도를 근신하도록 배려해 줄까. 학교에 근무하던 두 동서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제사는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예절이 다르다.

그 댁 어른의 마음이 편힌 대로 가풍이 이어진다. 앞마당이 있던 주택에서 이사했다. 지금은 아파트 21층에서 제사를 모신다. 강철로 된 현관에 들어서면 센서 등이 먼저 기척한다. 긴 복도에 액자를 잠시 떼어내거나 한지로 가리기도 한다. 조상님들이 제삿밥 잡수러 오다가 혹시 얼비치는 그림자에 놀라 되돌아가실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버님, 큰 아주버님, 장조카는 대를 이어 캐스팅 없는 주연이시다.

그분들은 제삿날, 지방 쓰는데 정성을 다하신다. 지방은 되도록 가늘게 삐뚤빼뚤 써야 한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려 손이 떨리고 오열이 나는 듯이 한 글자 정도는 약간 물에 번져도 괜찮다. 조금 서툴러야 사무치게 사랑하는 후손의 마음이 진하게 전해진다. 초상화나 사진, 비디오 동영상이 없던 시절에는 신주를 깎아 모시고 지방을 썼다. 어머님은 생전의 고운 사진이 많은데도 아주버님께서는 한문지방을 고수하신다.

 

제사음식을 진설한 다음, 굴건제복하고 신을 맞이하는 영신迎神으로 제1막이 올라간다.

분향焚香 강신降神으로 혼백魂魄을 모신다. 초헌初獻관인 아주버님이 참신參神독축讀祝을 하시면 막내 조카 재환이가 한글로 풀이하여 참사자는 모두 신위를 향하여 두 번 절한다.” 제상 앞에 시동尸童처럼 긴장하여 또박또박 읽는다. 카메오출현이다. 이제 몇 년 후, 증손자 준우, 바하, 민건이가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차례로 축문을 읽을 것이다.

 

공자께서는 큰제사에 관주灌酒를 부은 후로는 제사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경건함이 형식에만 지나쳐서 마음은 벌써 뜬구름이다. 발도 저리고, 집에 빨리 가고 싶고, 내일 출근이 걱정이다. 늦은 시간, 도무지 성에 차지 아니한다. 춘추전국시대 성인聖人께서도 예에 어긋나 차마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니, 요즘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 아헌亞獻은 본래 종부宗婦가 올리기도 하지만, 형제 중에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이 올리기도 한다. 내 식구가 종헌終獻의 잔이라도 올리면 마음이 뿌듯하다. 유식侑食 첨작添酌 삽시揷匙 정저正箸 합문闔門 계문啓門 헌다獻茶 철시복반撤匙復飯하여 보내드리는 사신辭神과 철상撤床까지 절차의 막이 내려지면 드디어 거실 불을 환하게 밝힌다. 제사에 커튼콜은 없다. 제관들이 둘러앉아 음복飮福으로 밤이 깊다.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조상님의 혼백이 본래의 제자리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아들 손자, 며느리는 또 사흘 동안도 근신하라셨다.

 

신종추원愼終追遠만이 효는 아닐 것이다.

제사는 시적詩的 의미로 보자면 한 조상의 뿌리를 둔 사람들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일체감을 갖는 축제祝祭. 한 식구, 한 가족, 한울타리, 한 일가를 이룬 한 민족의 한류韓流. 지금은 농경시대가 아니다. 현대사회에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며 다 같이 한마음으로 감당하기에는 제사가 번거롭다. 나는 솔직하게 전 삼일, 후 삼일이 힘겹다. 사후에 서열 지켜 대소가 납골 묘에 안치되는 것도 마다하고 싶다.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산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가 있겠느냐?” 다시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고 답하신다. 이처럼 공자의 철학은 살아 있는 사람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와 바른 행실에 중점을 둔다. 공자의 사상은 지극히 현실적 실천적 지성적이다.

 

나는 남편과 한날한시에 갔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아이들 혼사를 하면서 <가족의례>를 만들었다. 그중 이런 문구를 넣었다. ‘각자 어디에 살든 현충일 날 아침, 사이렌이 울리면 호국선열에게 묵념하고 난 다음, 마음속으로 부모를 추모하기 바란다.’ 엄마 아빠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현충일 묵념에 어긋나지 않게 잘살겠노라고 제삿날을 미리 정했다. 이왕이면 열심히 일하다 현장에서 순직하면 좋겠다. 그날 아침, 아이들의 식탁에 망초忘草꽃 몇 송이 꽂혀있었으면 더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세금은 가장 먼저 낸다. 캄캄한 밤, 아무도 없는 건널목 앞에서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 푸른 신호등이다.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산요수  (0) 2019.12.27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다  (0) 2019.12.27
삼 년은 너무 길다  (0) 2019.12.27
밤나무를 심는 까닭  (0) 2019.12.27
오캄  (0) 201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