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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악, 예에 깃들다

, 예에 깃들다

 

프롤로그

 

 

공자는 음악을 사랑했다.

마음을 고요하게 수양하는 것이 음악연주다.

 

논어한권이 예라면 실천하는 행위가 악이다.

예와 악의 균형이 알맞을 때, 문질빈빈文質彬彬 문화다. 형식이 지나치면 지극이 어려워지고, 화락이 지나치면 광란이다. 여기 문장들은 논어에서 음악에 관한 문장만 가져왔다.

 

 

 

* 공자가 계씨를 평하여 말했다. “팔일을 뜰에서 춤추게 하다니, 이런 짓을 감히 할 수 있다면, 장차 그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할까?”

孔子 謂季氏하시되 八佾로 舞於庭하니 是可忍也면 孰不可忍也리오- 八佾

 

팔일무八佾舞.

가로 세로 여덟 줄, 8명씩 8줄로 64명이 춤을 춘다. 천자인 황제만 행하는 예식이다. 제후諸侯는 육일무, 대부大夫는 사일무, 는 이일무를 출수 있는 예를 대부인 계씨가 자신의 마당에서 추었으니 법도에 어긋난다. 분수를 지키는 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우리나라 종묘제례도 고종황제 때부터 팔일무를 추고 만세를 불렀다. 성균관 문묘에서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시호를 받은 공자의 석전대제釋奠大祭때에 팔일무를 춘다.

 

 

 

* 공자가 노나라의 태사에게 음악에 대해서 말했다. “음악을 알 만합니다. 처음 음악을 연주할 때는 오음을 합해서 성대하게 시작하고, 이어 저마다의 소리를 힘껏 내게 하되 전체가 잘 조화되게 하고, 아울러 각각의 소리가 분명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연주를 완성합니다.”

子語魯大師樂曰 樂은 其可知也니 始作에 翕如也하야 從之에 純如也하며 皦如也하며 繹如也 以成이니라 - 八佾

 

공자는 전문적인 음악 평론가다.

공자의 음악은 여가선용이 아니다. 음악이 곧 수신이다. 어느 정도로 정교하게 음악을 공부했는지 짚어본다. 문자를 모를 때, 종으로 소리를 전했다. 인간의 존엄성 즉,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도구다. 서민에서 궁중에 이르기까지 궁중 음악 아악雅樂이나 향악 수제천壽齊天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서민들의 사물놀이도 있다.

 

공자가 태사에게 거문고를 배울 때 연주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태사가 진도를 나가려고 하면 저는 이미 곡을 익혔으나 수는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곡의 멜로디 황종 대려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남려 무역 응종의 12율을 익혔으나 아직 곡의 뜻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진도 좀 나가자 아직 그 곡을 만든 사람의 삶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감정으로 이 곡을 만들었을까? 음악을 만든 사람이 표현하고자 한 철학을 이해하려고 했다.

 

수필을 쓰는 나도 이렇게 공부하고 싶다.

더불어 한마디 보탠다면 요즘 새로 평론가로 등단하는 수필평론가들도 공자처럼 공부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마음을 읽지 않고, 자신의 고명高名만 드날리는 모양새가 내 눈에도 보인다.

 

 

 

* 공자가 순임금의 소韶음악을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좋다.”고 평했으나, 무왕의 무武음악에 대해서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지극하게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子謂韶하사대 盡美矣오 又盡善也라하시고 謂武하사대 盡美矣오 未盡善也라하시다 - 八佾

 

황제에게는 함지咸池라는 음악이 있고, 에게는 대장大章이란 음악이 있으며, 에게는 대소大昭라는 음악이 있었고, 에게는 대하大夏가 있었으며, 탕에게는 대호大濩호가 있었고, 문왕은 벽옹辟雍이라는 음악이 있었으며, 무왕과 주공은 무라는 음악을 지었다.’고 한다.

 

음악은

요순시대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현악기와 관악기의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하는 음악이고, 음악은 타악기 금속 관악기로 은나라를 징벌하는 전쟁음악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중의례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길례, 혼인이나 세자책봉 등의 기쁜 행사와 관련된 가례, 외국에서 사신이 오거나 사신을 보낼 때의 빈례, 군사훈련과 관련된 군례, 죽음과 관련된 흉례로 나누어 지냈다.

 

나에게는 현악기의 문턱이 높다.

들을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무음악이 친숙하다. 고등학교 교련시간에 제식훈련을 했다. 고적대의 북소리에 맞춰 행진했다. 상무적이다. 고무줄놀이를 하면서도 전우를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어린이에게 무시무시한 노랫말인데, 뜻도 모르고 운동장에서 겅중겅중 뛰었다.

 

무음악은 문물을 파괴하고 정서를 말살시킨다.

아름다운 휘파람소리로 시작하는 콰이강의 다리를 들으면 발걸음 경쾌하게 행진하고 싶다. OST곡이 아름답다. 서너 번은 족히 봤던 1957년에 제작한 영화다. 영화 속의 일장기를 보며 가슴이 미어진다. 영국군 포로 니콜슨 대령이 일본군 포로수용소장에게 무장도 안한 군인을 죽이는 것이 무사도인가따져 묻는다. 포로인 영국군의 기술과 사기로 콰이강의 다리를 건설하고, 아군의 손으로 다리를 폭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대령은 절규한다. 전쟁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군대를 모르는 군의관인 클립소령 또한 미쳤어, 모두 미쳤다!”고 부르짖는다. 6.25전쟁처럼 전투적인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요즘 한일 한미 한중 남북의 관계도 다 미쳤다.

 

오늘은 임정 100주년 광복절이다.

일본 아베신조가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문제를 사과보상은커녕, 우리나라에게 선포하는 하얀 전쟁이다. 1세기가 지나도 도저히 아물 수 없는 상처를 후벼 파고 할퀴고 물어뜯어 자폭하는 수준이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 음식을 드실 경우, 배부르게 드시는 일이 없으셨다. 공자는 그날 곡哭을 하셨으면 종일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子 食於有喪者之側에 未嘗飽也러시다 子 於是日에 哭則不歌러시다 - 述而

 

합창대회가 끝나자, 음악선생님께서 너희들은 이다음에도 날마다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날마다 노래하는 삶이 어렵다는 것을. 그당시, 공자께서는 날마다 집에서 노래를 하셨나보다. 직업이 가수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가 매일 소리 내어 노래할까. 내가 날마다 내는 소리는 잔소리뿐이다.

 

공자는 상례의 달인이다.

상례에는 고분지통이 있다. 상여를 메고 가며 상두꾼의 첫소리에 맞춰 이제 가면 언제 오나~북망산천으로 가는 길, 두 걸음 앞으로 한 걸음 뒤로. 서둘러 떠나지 못하는 이승이 있고, 차마 보내지 못하는 저승길이 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나오는 소리가 바로 즉흥곡 재즈다.

 

옛날의 상례에는 귀천에 따라 각각 상하 등급이 있었다.

묵자墨子는 노래하지 않고 죽어도 복을 입지 않았다고 장자莊子가 지적한다. “노래 부를 때 노래하지 않고, 곡해야 할 때 곡하지 않으며, 즐거워해야 할 때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며 비난했다. 내 감정을 내가 다스리는데 무슨 상관이야 생각할 수도 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이 있다. 공자는 상을 치를 적에는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라셨다. 예전에 상가에 가면 아이고, 아이고소리 내어 곡을 했다. 지금은 그마저 없어지고 그저 번갈아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다.

 

 

 

*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석 달 동안, 소韶음악을 들으시고, 고기 맛까지 잊으셨다. 그리고 말했다. “음악이 이렇게까지 훌륭한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子 在齊聞韶하시고 三月을 不知肉味하사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호라 - 述而

 

고기 맛? 그 정도쯤이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공자가 소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석 달이라는 기간이 국악인에게 각별하다. 국악인들은 산공부라는 것을 한다.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서 잠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음악공부만 하는데, 그 기간이 보통 석 달 열흘간이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의 말씀이다.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능구 能久의 시간이다. 문화 센터 강좌들이 삼 개월씩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겨냥한 기간일 것이다.

 

우리나라 영부인이셨던 분이 백담사시절 가장 어려웠던 점이 고기 맛이라는 인터뷰를 육성으로 들었다.

한심하다고 비난하다가 문득 친밀감마저 들었다. 오이소박이김치를 먹어도 새우젓이 들었고, 시래기 된장국물도 멸치로 우려낸다. 우유한잔을 마시는 것도 계란 한 알도 또 부부간의 운우지정을 나누는 행위 또한 육의 맛이다. 그러나 음악은 선의 경지다. 나의 글도 선의 경지로 고기 맛을 잊힐 날이 왔으면 좋겠다.

 

 

 

* 공자님은 남과 같이 노래를 부를 때, 남이 잘 부르면, 반드시 그로 하여금 다시 부르게 하고, 그 다음에 함께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子與人歌而善이어든 必使反之하시고 而後和之러시다 - 述而

 

마음이 소리로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시경을 외는 것도 시조가락을 읊는 것도 어린 시절 새야, 새야 파랑새야창가도, 교과서 안의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동요도 다 마음의 소리다. 어린이들의 정서다. 억지로 탄압하면 풍선처럼 터진다. 우리는 토요일 밤, 토요일 밤에~” 누군가 선창하면 조개껍질 묶어메들리로 이어지는 싱어롱sing-along세대다. 유행은 민중을 선도한다. 중독성이 있다. 노래방 기계가 나오면서 노래의 풍속도가 바뀌었다. 자신의 노래만 부른다. 독선이다.

 

얼마 전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던 봄 학기,

수업시간에 어느 분이 내 수업에 들어와 생뚱맞은 내용으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나는 졸지에 블랙리스트가 되어 불려갔었다.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논어를 읽는 것이다. 어느 남자 선생님보고 고향의 봄을 선창하시라 했더니 나의 살던 고향은~” 어느새 꽃동네 새 동네~” 2절까지 4,50명이 모두 함께 합창한다. ‘고전의 향기반 분위기가 봄꽃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그즈음 <& > 수필 한편을 쓰며 마음을 다독였다.

 

 

 

* 공자가 말했다. “시로써 감흥을 돋아 올리고, 예로써 행동거지를 바르게 세우고, 음악으로써 성정을 완성시킨다.”

子曰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 泰伯

 

시를 소리로 내면 노래다.

노래는 혼자 흥얼거릴 수 있지만 악으로 완성시키려면 관현악기가 모두 어우러져 연주한다. 어린시기에는 동요로 아름다운 정서를 심어주고, 청소년 청년시절에는 삼강오륜질서로 예절의 기초를 세우고, 장년 노년에는 젊은이들을 보듬어 울타리역할로 인생을 완성한다. 세대 간의 화합이다.

 

공자는 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고 하였다.

201821일 국립국악원에 갔다.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종묘제례악> 나눔을 인터넷으로만 신청을 받았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나는 서울에 가서 사흘 동안 국악원에 갔다. 그즈음(2018.1.31.) 황병기 선생이 선종에 드셨다. 국악박물관안에 따로 마련된 선생의 기념관에 만장輓章 한 꼭지 적어 걸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람이 발분하면 오히려 더 뛰어난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다. 3월에 수술 후유증으로 기저귀를 차고 연주, 5월에 독일 하노버의 현대음악제에 참가하여 가야금 독주를 했다.” “음악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연주되는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람은 태어나기 이전 태아 때부터 심장이 맥박 즉 리듬을 지니고 살다가 이 맥박이 그칠 때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시더니, 선생은 분명 음악으로 완성하셨으리라.

 

~! 나의 정성, 삼고초려는 통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종묘제례악을 관람했다. 전폐희문 - 진찬 - 보태평 - 정대업으로 한마음이 되었다. 그리하여 성공적인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공자가 말했다. 노魯의 악사 지摯가 초기에 연주한 관저의 종장은 아름답게 귀에 가득 차 넘실거린다.

子曰 師摯之始에 關雎之亂이 洋洋乎盈耳哉라 - 泰伯

 

나라가 쇠퇴해지면 소리도 늘어지고 잦아든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반 울음으로 타령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몇 년 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 갔다. 그곳이 어딘가. 프랑스의 군인 제1통령 황제 나폴레옹이 안치된 곳이다. 광장에 젊은 다국적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하며 춤춘다. 나와 남편도 그 음률에 맞춰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몸을 흔들었다. 모두 똑 같은 자세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한 나폴레옹처럼 말을 탄다. “오빤, 강남스타일미국에 LA 초콜릿 회사에서도 1층 매장 입구에서 직원들이 춤을 추며 호객행위를 한다. “오빤, 강남스타일힘들던 시절의 타령이 아니다. 이즈음은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향해 방탄의 어록을 쏜다. 동방의 빛, 작은 나라 대한민국. 불가능이란 없다. “아기상어 뚜루루뚜루워싱턴에서 메이저리그는 각 팀의 득점이 있을 때마다 상어가족을 열창하고, 군인들이 행군하며 떼창하고, 레바논 시민들까지 시위하면서도 우리의 구전동요를 부른다. ‘승리와 행운으로 이끄는 아이콘이라니, 문화가 국력이다.

 

 

 

* 공자가 말했다.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음악이 바로 잡혔고 아訝와 송頌도 제자리를 얻었다.”

子曰 吾自衛反魯然後에 樂正하여 雅頌이 各得其所하니라 - 子罕

 

쉽게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팔도 아리랑이다.

: 서민들의 민요. 남녀 간의 사랑타령 대중가요다. : 대아는 장중하고 소아는 민요적이다. : 국가행사 때 쓰던 송가. 종묘제례악,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국악원연주 등이다. 방방곡곡 지리와 풍속과 사투리가 다 다르다. 아리고 쓰린 만큼 삶의 애환 또한 다양하다. 공자께서 중국대륙의 노랫말을 산술하여 시경을 엮었다. 결국 사랑하는 임과 짝짓기노래다. 훗날 문왕과 문왕비의 사랑이라 칭했으니 시의 효용성이다. 순수한 문학이나 음악이 시험에 나올 때 음악하기 싫고 문학하기 싫다. 공부 못한 핑계도 여러 가지다.

 

지난 봄, TV에서 14부작 슈퍼밴드를 시청했다.

10~30대 청년들이었다. 드럼과 첼로, 베이스 기타와 피아노, 큰북과 레이저 빛, rock과 래퍼rapper 댄스dance 트롯trot 클래식classic 힙합hiphop 난타亂打 재즈jazz F=ma, 과학까지 나와 춤추고 노래했다. 어느 팀은 이름이 얘네봐라. 각자의 팀 이름에 걸맞게 장르의 법칙을 깨고 도전하는 서바이벌로 밴드를 결성하는 소리의 총망라였다.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얼마나 큰 음악인으로 국위를 선양하거나 개인의 성공을 거둘지는 모르겠다. 나는 매 시간 몰입하여 마음을 졸였으니 이왕이면 <호피폴라>, <루시>, <모네>, <퍼플레인>의 우승한 최강팀 말고도 도전했던 모든 친구들이 음악밴드로 문화를 흥기시키는 역할을 기대한다. 음악을 모르는 나 같은 얼치기도 본방사수는 물론 재방송까지 몇 번이고 가사와 음률을 귀담아 들었다. 청년들의 표정 손짓 발 구름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친정어머니의 간병으로 날마다 힘든 시간이었다. ‘음악의 제자리그곳은 어디인가. 교과서 안의 악보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억장이 무너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들리는 소리가 음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악가 박인수 선생이 향수를 부르고, 가수 인순이가 국가 행사에 애국가를 불렀다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는 시중時中이라 했다. 그 시대에 맞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전통은 전통대로 보존하여 지키면서 새로운 시도, ‘예술은 동사다. 언제까지 수필이 피천득 류의 고상을 고집할 것인가. 고전은 고전대로 평가하고 나는 나대로 나다운 글을 쓰자. 고루와 참신은 세대차이일 뿐, 날마다 새롭게 일일신 우일신이다.

 

 

 

* 공자가 말했다. “자로 정도의 거문고로 어찌 우리 문중에서 연주를 하는고?” 이에 제자들이 자로를 존경하지 않게 되자, 공자가 다시 말했다. “자로는 그만하면 당에는 올라왔으나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다.”

子曰 由之鼓瑟을 奚爲於丘之門고 門人이 不敬子路한대 子曰 由也는 升堂矣오 未入於室也니라 - 先進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마루까지는 올라왔으나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다. 아무리 남녀가 연애를 멋지게 한들 합방을 해야 부부 금슬琴瑟을 볼 수 있다. 금은 둔탁한 7현금이지만, 슬은 섬세하고 다양한 232527현처럼 다양한 음을 낼 수가 있다. 그런데 무를 숭상하는 씩씩한 자로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옆의 학우들이 놀린다. 저 뚱땅대는 주제에 깡통이나 두들기며 참새나 쫓을 일이지, 감히 클래식의 오묘한 소리를 흉내 내다니. 어떤가. 내 자식을 내가 나무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나무라는 소리는 절대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이 된다. 더구나 누구의 제자인가. 소리가 둔탁하기는 해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가상한 마음씨가 보인다. 제자사랑의 지극함이다. 제자의 마음을 스승이 알아주는 모습. ~, 부럽다. 단어선택과 문장이 서툴기는 해도 울타리까지는 왔다고, 곧 마당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무조건 역성들어주는 나의 스승은 어디에 계실까.

 

 

 

*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공자께서 “내가 자네들보다 조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워말고 그대들이 평소에 ‘나를 남이 몰라준다.’고 말하던데, 만약 자네들을 알아서 써준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 (중략~) 점아 너는 어떠하냐? 증석은 조용히 거문고를 타고 있다가, 크게 한바탕 소리를 튕기고 거문고를 놓고 일어서서 대답했다. 공자께서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가? 각자 자기 뜻을 말했을 뿐이니라.” “저는 저 사람들하고는 다릅니다. 늦은 봄에 봄옷을 갖춰 입고 갓을 쓴 대여섯 명의 청년들과 어린아이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오겠습니다.”

子路曾晳冉有公西華 侍坐러니 子曰 以吾一日長乎爾나 毋吾以也라라 居則曰 不吾知也라하나니 如或知爾면 則何以哉오 (중략〜) 點아 爾는何如오 鼓瑟希러니 鏗爾舍瑟而作하여 對曰 異乎三子者之撰오이다 子曰 何傷乎리오 亦各言其志也니라 (중략〜) 曰 莫春者에 春服이 旣成이어든 冠者五六人과 童子六七人으로 浴乎沂하여 風乎舞雩하여 詠而歸하리이다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하노라 - 先進

 

증자의 유유자적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평온하다.

그런데 동문들이 작은 듯 큰 뜻을 서슴없이 말하는 욕망에 부아가 난다. 순간 ~~~” 짜증석인 음으로 마무리한다. 뜻밖의 행동에 각자 자기 뜻을 말해보는데 무엇 때문에 심기가 뒤틀려 역정을 내느냐. 그럼, 네 뜻을 말해보려무나. 저는 늦은 봄, 더운 기운이 앞서거니 들어설 때, 새로 마련한 봄옷을 갖춰 입고 아들 손자를 거느리고 해운대 온천수에 몸 담그고, 기우제를 지내는 달맞이 고개 해월정에서 바람 쐬며 시대를 아우르는 동료들과 다함께 노래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럼, 그럼! 바로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보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피세하여 나 홀로 산에 산다. ‘의 노장老莊이 아니다. 내 나라 내 고장 내 가족에게 돌아가는 가 유학儒學의 정서다. 논어에세이 빈빈<아리랑 동동>으로 실렸다.

 

 

 

*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역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고,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고, 음악은 소무韶舞를 따르되, 정나라의 음악은 추방하고, 말재주 좋은 사람을 멀리하라.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다.”

顔淵 問爲邦한대 子曰 行夏之時하며 乘殷之輅하며 服周之冕하며 樂則韶舞오 放鄭聲하며 遠佞人이니 鄭聲은 淫하고 佞人은 殆니라 - 衛靈公

 

궁중에서는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기 위해 하늘과 땅, 그리고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 조선왕조의 선조를 모신 종묘, 공자와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문묘 등의 제례를 지냈으며, 음악과 춤 그리고 악기의 색깔과 문양을 달리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70년대 아침이슬, 작은 연못, 그건 너, 너 때문이라고 탓하는 음악을 금지시켰다.

음반에도 강제로 건전가요 한 곡씩을 넣도록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음악은 민중이 내는 소리다.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은 언론탄압이다. 염세적이거나 지나치게 에로틱하여 국민정서에 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가수는 노랫말대로 간다는 설이 있다. 낙엽 따라 요지경속으로 가기도 한다. 말을 붙이기 따라 우연이 필연이 된 경우다. 노래뿐일까.

 

내게 한학漢學을 전수하시던 의당義堂선생께서는 경서經書만 읽으라셨다.

소학을 읽고 나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사서와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악기까지만 말씀하셨다. 배우는 순서까지 엄격하게 관리했다. 먼저 사람 되는 공부를 하라셨다. 노자》 《장자더구나 그중 역경인 주역은 현혹되는 글이라며 절대 읽지 못하게 했다. 고문진보도 한량놀이라고 나무랐다. 공부하는 자세를 바로 세워라. 사람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심오한 학문을 읽으면 여러 사람 잡는다.”며 관심조차 끊으라고 못 박았다. 중용도 소주역이라며 중용 17장을 읽다가 귀신의 조화 음양을 질문하면, 기다란 막대기로 탁자를 내리쳤다. 사람의 도리도 알기 전에 노장의 언저리를 배회하거나, 지적인 허세로 세상을 아는 체 하며 평생 귀신 씨 나락을 까먹을까 염려하심이다. 행실은 부족하면서 말만 잘하는 위태로움을 걱정하신 것이다. 간혹 나는 현혹眩惑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나는 배움의 순서대로 더듬더듬 어렵사리 시경까지 읽었다. 나의 배움 폭이 좁은 것은 스승의 철벽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유학서 안의 청개구리가 되어 첨벙거리는 꼴이 오늘의 청복이 되었으니.

 

 

 

*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의 명령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의 명령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략 10대로 망하지 않음이 없다.”

孔子曰 天下 有道則禮樂征伐이 自天子出하고 天下 無道則禮樂征伐이 自諸侯出하나니 自諸侯出이면 蓋十世에 希不失矣오 - 季氏

 

왈가왈부曰可曰否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여러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러나 집단의 이기利己때문에 상대방에게 무조건 딴지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정책이 결정되었을 때는 법과 질서로 한 마음이 되어 실행함은 마땅하다. 결정권은 제1통치권자에게서 나와야 바르다. 국가 위기에 명령이나 담화문이 비선실세에서 나오거나 무속인의 점괘에서 나온다면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나라를 믿고 세금 내는 국민도 방향을 잃는다. 우왕좌왕 한동안 힘들었지만, 우리가 누군가. 격변의 대한민국에서 국민노릇 하는 내공도 우리국민만의 저력이다.

 

 

 

* 공자께서 제자가 근무하는 무성에 갔다. 현악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이에 자유가 대답했다. “전에 저는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자는 도를 배우면 백성들을 사랑하고, 소인들은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애들아! 언(자유의 이름)의 말이 옳다.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농담 삼아 한 말이다.”

子之武城하사 聞弦歌之聲하시다 夫子 莞爾而笑曰 割鷄에 焉用牛刀리오 子游對曰 昔者에 偃也 聞諸夫子하니 曰君子學道則愛人이오 小人學道則易使也라호이다 子曰 二三子아 偃之言이 是也니 前言은 戱之耳니라 - 陽貨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다>의 글에서 상세하게 썼다.

다시 정리하자면 형식이 내용보다 클 때가 있다. 라면 한 개 끓이는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지피는 격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무엇을 끓이려면 물과 불과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 바로 기본을 아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가 작은 고을의 읍장으로 갔다.

그에 공자님은 제자가 잘하고 있는지 순방을 나간 것이다. 국가 원수의 순방도 아닌데, 궁중음악으로 아악雅樂을 연주하고 리틀엔젤스가 나와 방긋방긋 웃으며 식순에 의해 노래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리하여 너는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큰 칼을 사용하느냐?” 나무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핀잔이 아니다.

일반 백성들은 음악과 춤을 통해 고된 노동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연과 신에게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휴식과 즐거움을 얻는다.

 

논둑길이나 밭둑길을 지나 개울 하나 건너는 작은 마을에서 어찌 격조 있는 예악을 연주하는가.

그런데 고지식한 자유가 정색하며 저는 선생님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모습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제자의 올곧음을 본다. 어긋남이 없다. 그래,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구나. 내가 실언을 했다고 겸연쩍어한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그 안에 예악禮樂의 질서가 있다.

 

 

 

* 공자가 말했다. “예를 지켜야한다, 예를 지켜야한다 말하지만, 어찌 귀한 옥구슬이나 비단의 예물을 말하는 것인가? 악을 연주한다, 악을 연주한다 하지만, 어찌 종과 북을 소리 나게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子曰 禮云禮云이나 玉帛云乎哉아 樂云樂云이나 鍾鼓云乎哉아 - 陽貨

 

본질이 중요하다. 근사하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치레가 어우러질 때, 문질빈빈文質彬彬 예와 악의 균형이 알맞다. 문화다. 그럴듯한 예식과 그럴듯한 비단보자기에 포장한 예물이 30년 키운 자식을 30분 만에 세대교체다. 결혼 풍속도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풀벌레 울음소리에 개망초 화관을 쓰고 합방을 했더라도 딸 아들 순풍순풍 잘 낳고 잘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내 집이나 남의 집이나 그게 어렵다. 전광판 레이저 불빛으로 자막을 띄운다. ‘예운예운, 악운악운현대인은 궁금한 건 못 참아.’ 반짝이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공자가 말했다. “자주색이 붉은 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 정나라의 음탕한 음악이 우아한 아악을 문란케 하는 것을 미워하며, 입빠른 자의 말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

子曰, 惡紫之奪朱也하며 惡鄭聲之亂雅樂也하며 惡利口之覆邦家者하노라 - 陽貨

 

간색은 중간색이다. 빨강과 파랑을 섞어 자주가 된다.

기연其然미연未然으로 긴가민가상황을 만들면 의혹이 깃든다. 비슷하면 가짜다. 사이비似而非. 궁정동 안가의 노래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처럼,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타령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을 들으며 시바스 리갈로 원샷하는 국가 원수의 낭만을 경계하는 것이다. 빵빵빵! 권총으로 다 끝난 대통령관저에서 발표하는 대변인의 말솜씨에 또 속는다. 어찌 은나라 말의 주왕에게만 경국지색傾國之色 주지육림酒池肉林 포락지형炮烙之刑이 있었을까. 나라를 세운 무왕이 주를 친 것은, 왕권찬탈이 아니라 죄인 한사람을 친 것이라는 말과,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나는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증언이나 같다. 25백 년 전이나 40년 전이나 역사는 돌고 돌아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공회전이다. 정치가에게 현재 자신의 정권유지가 목숨보다 가족보다 중하다.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서 돌고 있을까.

 

 

 

* 노나라 유비라는 사람이 공자를 뵈려고 했으나, 공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사절했다. 그러나 유비의 명을 전하려고 온 사자가 문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그 사자에게 들려주었다.

孺悲欲見孔子어늘 孔子辭以疾하시고 將命者出戶어늘 取瑟而歌하사 使之聞之하시다 - 陽貨

 

이 보시게, “나 안 아프다.” 가서 네 상전에게 전하라.

나는 너를 만나기 싫다고. 얼마나 짓궂은가. 내가 논어를 흥미진진하게 읽는 이유다. 공자는 부처나 예수처럼 신이 아니다. 감정을 가진 보통 사람, 인간이다. 논어를 읽는 맛은 바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공자의 모습이다.

 

 

 

* 재아가 물었다. “3년의 복상은 기한이 너무 오래입니다. 군자가 3년이나 예禮를 지키지 못하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이나 음악音樂을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시들 것입니다. 이미 묵은 곡식이 없어지고 새 곡식이 상에 올라오고, 또 불씨를 일으키는 수나무를 바꾸어 새로 뚫어 새 불씨를 피우는 것처럼, 복상도 1년으로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중략~) 공자가 “1년 거상이 네 마음에 편하거든 그렇게 해라. 원래 군자는 상중에 있을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편안하게 있어도 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宰我 問三年之喪이 期已久矣로소이다 君子三年을 不爲禮면 禮必壞하고 三年을 不爲樂이면 樂必崩하리니 舊穀旣沒하고 新穀旣升하며 鑽燧改火하니 期可已矣로서이다 (중략〜) 女安則爲之하라 夫君子之居喪에 食旨不甘하며 聞樂不樂하며 居處不安故로 不爲也하나니 今女安則爲之하라 - 陽貨

 

<삼년은 너무 길다> 는 제목으로 이미 글을 썼다.

학생들의 정기연주회 때, 학생들이 기성인처럼 아름다움을 다한 연주는 못 하더라도 있는 정성을 다한 음악회, 즉 선함을 다한 음악회가 되도록 하자고 강조한다. 연주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는 그 선함이 청중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 황병기 논어 백가락

 

<우주와 사계절>의 소리, 사물놀이에 대한 글이다.

사물놀이는 천지 오행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악기 구성이라고 한다. 꽹과리는 번개로 하늘에 문을 여는 소리이고, 북은 바람이며, 장구는 비, 징은 구름으로 천지를 평정하는 소리라고 한다. 사물놀이를 듣는 사람들은 뺑이 질을 하는 것처럼 회전 순환하고 상승 하강한다. 강렬한 리듬을 타고 현기증 같은 어지러움 속에서 신들린 경지로 빨려든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돈다. 네 개의 심장이 뛰는 소리다. 원초의 생명력이 흡인하는 블랙홀이다.” - 이어령 우리문화박물지

 

무엇이든 삼년을 하루같이 연마하면 기초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3년씩 마디 짓는 우리 교육학제가 있다. 초등저학년, 초등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그뿐인가.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3년씩으로 석삼년 시집살이도 있다. 세 살 버릇을 바로 잡는 육아기간이 삼년이며, 상례도 3년이다. 춘추전국시대나 초스피드시대나 별반 변함이 없다. 그 시절 1년으로 하자는 재아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스마트 폰으로 세상을 다 지배하는 스마트한 시대에도 변하지 않음은 사람의 심성과 도리뿐이다.

 

 

 

* 제나라 사람이 미녀와 풍악놀이패를 보내왔다. 노나라 계환자가 이를 받아들이고 즐겼으며, 사흘 동안이나 조례를 보지 않았다. 이에 공자는 벼슬을 버리고 노나라로 떠났다.

齊人이 歸女樂이어늘 季桓子受之하고 三日不朝한대 孔子行하시다 - 微子

 

국가 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사신을 보낼 때 폐백幣帛도 같이 보낸다.

비단이나 예물뿐만 아니라 사절단도 보낸다. 북한에서 평양예술단이 남한으로 오기도 하고 남한에서 가기도 한다. 오래전 양국 정상이 도라지 위스키를 들고 건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2부 행사로 조용필 공연이 평양에서 있었다. 국가의 행사는 의전대로 행한다. 그러나 한 순간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묘지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평화라는 명분으로 이라크에 파병도 했었다. 이토록 국제 외교는 냉철한 이성의 영역이다. 측은지심이나 배려는 절대 배제다. 정을 지닌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는 국가의 일이다.

 

티브이 화면으로 조용필이 공연하는 것을 지켜봤다.

훗날 이야기하는 것도 시청했다. 평양시민들의 연출된 열렬한 물개박수는 그들 정권의 캐릭터다. 그런데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펑펑 울고 있다. 그 눈물은 공연장 안에 최루탄을 쏘지 않은 한, 각본의 연출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남북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따라 부르지 못하고 나도 울었다. 심금을 울리는 외교언어, 음악의 역할이다. 때론 예술이 교란시키는 계책이 되기도 하니, 슬프고 또 슬프다.

 

 

 

* (노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여러 악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태사 지는 제나라도 갔고, 아반 간은 초나라로 갔고, 삼반 요는 제나라로 갔고, 사반 결은 진나라로 갔으며, 북을 치는 방숙은 하내로 들어갔고, 소사 양과 경쇠를 치는 양은 섬으로 갔다.

大師摯는 適齊하고 亞飯干은 適楚하고 三飯繚는 適蔡하고 四飯缺은 適秦하고 鼓方叔은 入於河하고 播鼗武는 入於漢하고 少師陽과 擊磬襄는 入於海하니라 - 微子

 

영화 타이타닉이 떠오른다. 호화유람선이 가라앉고 있다.

아비규환이다. 수장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 숨인들 쉴 수 있을까. 그런데 악사들은 동요 없이 연주한다. 음악이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켜주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귀한 존재로 존중받는 모습, 타이타닉의 명장면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의 연기보다 여운이 길다. 사랑의 연주다. 연주자들은 아수라장인 타이타닉 호에서 승객과 생사를 함께 했다. 영화 속의 악사들과 세월호 참사 때 사방으로 흩어져 잠수타고, 숨어있던 어른들의 모습이 교차해 보인다. 아름다워도 슬퍼도 통곡은 같은 소리다.

 

 

 

에필로그

논어를 읽으면서 와 악을 중시하며 조화로움을 삶을 살았던 공자의 음악을 정리해봤다.

공자(BC551~479)는 음악을 즐기는 수준을 뛰어넘어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연구하며, 고대중국의 음악을 정리하기도 했던 전문음악인이었습니다. 유교정치철학가로 알려진 그는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연주가들의 연주를 평하기도 했습니다.’

남이섬 소리박물관에 가니, 그곳에 음악을 사랑한 공자 자료관이 있어 반가웠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곳곳에서 붙임새와 엇붙임 잉아걸이가 엇박자로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오래된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수필로 메타논어를 쓰고, 음악으로 마무리 한다. 예에 악이 깃들기를 바란다.

 

子曰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