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이달의 수필읽기
《에세이문학》 - 여름호
주기영
noranbada99@daum.net
여행이 일상으로 느껴질 만큼 흔한 세상이다. 클릭 한 번에 일반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사진까지 넘쳐나니 참 친절한 세상이다 싶으면서도 일방통행이라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행’이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순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독자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게 된다.
류창희의 <내비 아씨의 프로방스>는 부부가 유럽 여행 중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면서 겪은 이야기다. “휘발유와 경유의 기름을 바꿔 넣은 것처럼 부부 사이 또한 코드가 안 맞은 날”에 운전자인 남편의 타박과 아내의 잔소리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그러던 중, 하필 길 도우미인 내비마저 “한마디 귀띔도 없이 죽어”버리고, “내비는 나의 ‘눈’이다. 내비는 나의 ‘귀’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한 동네도 한 블록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아내의 마음 속 탄식을 들으며, 독자도 한 번쯤은 겪었을 길 위에 마음이 머물게 된다. 새로 산 톰톰 내비를 설치하고 달리다보니 사근사근한 여자 내비가 살아났다는 반전에 독자는 안도하고, 그 둘을 ‘함께’ 켜고 달리는 모습은 또 다른 반전으로 웃음을 준다. 고집불통 톰톰과 첫사랑의 목소리를 닮은 여자 내비의 ‘함께’가, 오랜 세월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살아온 두 사람의 아름다운 내공을 보여주듯 부부의 동행과 교묘하게 겹쳐진다.
목소리 큰 게 이기나, 말 많은 것이 이기나, 이것들을 ‘연놈’으로 싸잡으니 더 말을 안 듣는 것 같아 호칭을 바꿨다. 내비 ‘아씨’는 상냥하게 소상하고, 톰톰 ‘도령’은 과묵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한 꼭 우리 부부의 모습 같다. 두 선남선녀 중 어느 임을 더 예뻐할 수 있을까. 둘 다 켜고 달린다. 남편은 과학 선생답게 두 기계의 성능을 시험하고, 나는 어느 목소리가 더 다정하고 친절한지 감성을 본다. 톰톰도령은 고속도로로 쌩쌩 달려가라 하고, 종알 아씨는 라벤더와 해바라기 꽃을 보며 낭만을 즐기라고 시골길로만 안내한다.
- 류창희 <내비 아씨의 프로방스> 부분
남편의 ‘버럭’과 아내의 ‘탄식’은 사라지고, 작가는 이제야 밖의 풍경이 “그럼 엽서처럼 펼쳐진다.”고 고백한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여행 중의 사건을 작가 특유의 발랄함으로 무겁지 않고, 밝고 경쾌하게 풀어냈다. 자기 이야기에 끝까지 집중하는 작가의 여유로움으로 독자와의 동행에도 성공한 것 같아 유쾌하게 읽힌 작품이다.
~중략~
《한국산문》 201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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