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꽃 본 듯이
진달래와 벚꽃이 속도위반에 걸렸다고 한다. ‘사람 유죄’로 판결이 나왔다.
그해 겨울 하얀 눈이 평펑 내리던 날, 선산으로 꽃상여가 올라갔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평생 잘 살다 가신 분이기에 상두꾼 소리도 상여를 맨 장정들도 뒤따르는 상제의 행렬도 푸근하다. 산 위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뱃속이 뜨끈뜨끈한 국밥 한 그릇씩을 축제처럼 떠들썩하게 먹고 있었다.
“창희, 어딨어?” “창희, 어딨어?” “창희가 왔다고 하는데………”
이런 민망함이라니, 내 나이 어느덧 중년인데…. 어느 남정네가 맨 이름만 달랑 부르는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열댓 살에도 무병 바지 한쪽이 흘러내려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만 같았었다. 늘 지게에 작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는 아직도 막대기를 짚고 있다. 헤벌린 입안에 성한 이 몇 개가 보인다. 두 귀 쫑긋 세우고 허공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린다. 집안 아주머니들이 빙글빙글 웃으며 “창희 아가씨 찾는데요.” 라며 놀린다.
나는 그의 곁에 다가가 “여깄어요. 제가 창희에요” 동산이 *대부大父가 나의 손을 잡더니 얼굴을 더듬는다. ‘대부’라는 말은 먼 일가로 의지할 곳은 없으면서 항렬이 높으면 대접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나에게 동산이 대부는 할아버지 벌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얀 수염만 쓰다듬던 할아버지, 외지에 나가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 청년 시절에도 몸이 쇠약했던 작은아버지, 어느 한 사람도 여느 집처럼 참나무를 베어다 장작을 팰 장정이 없었으니, 아궁이 꼴이나 집안 꼴이나 꼴 베는 아이 꼴이나 궁색하기는 북서풍에 내치는 연기 같았다. 먹는 것 또한 시원치 않았으니 식솔들마저 마른 삭정이 꼴이다.
그나마 촐랑대고 들락거리는 사람은 집성촌 동네에 여남은 살의 대부들이었다. 그 작은 아이들이 해오는 나무 짐이 오죽했을까. 산 어귀 잡목이나 주워서 지고 내려오니 허술하기 이룰 데 없다. 그때 동산이 대부는 어린 나에게 쌀알만 한 진달래꽃봉오리가 달린 나뭇가지를 건네주고는 했었다. 딴에는 ‘애기씨’에게 주는 선물이다. 아기 진달래 나뭇가지를 칠성사이다 빈 병에 꽂아 뒤주 위에 올려놓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린 마음에도 그 시간은 동토의 땅에 유배된 듯했다.
나의 고향 포천 고모리는 춘삼월이라도 봄이 멀었다. 초가지붕만 볼록볼록 8리나 된다는 ‘초가 팔리’를 지나서 더 산골짝으로 들어가야 했으니, 동짓달부터 내린 눈은 사방을 가둬놓았다. 큰댁 솟을대문에 붙은 ‘입춘 방’이 누렇게 변해도, 집 떠난 대주들이 첩실을 끼고 과수원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겨우내 고요하다. 누렁이가 꼬리 치며 반길 사람도, 사납게 짖으며 쫓아낼 사람도 없었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꽃이 그리웠다. 할머니가 바가지에 옥수수를 튀긴 강냉이를 주시면, 나는 강냉이 깍지를 떼어내고 마른 진달래 가지에 하나하나 꽂았다. 쌀뒤주 안에 쌀은 없어도 강냉이 꽃은 피었다.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집안 아주머니들이 사립문 사이로 들여다보며 “아유~, 셋째 댁에는 벌써 꽃이 피었네!” 환호하면, 고드름 치기 놀이를 하던 동산이 대부와 마주 보며 웃었다. 그 강냉이 꽃도 며칠 지나면 개구쟁이 동생이 홀라당 다 빼 먹는다. 그럼 나는 또 강냉이를 꽂는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네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동지섣달 긴긴 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낮에 읽던 경서經書를 덮어두고 ‘숙영낭자전’을 소리 내 읽으셨다. 할아버지도 봄을 기다리시는지 화롯가에서 촛농으로 꽃을 만드셨다. ‘아무리 궁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꽃을 피우는 솜씨는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닮았다. 마루에 서너 차례 강냉이 꽃이 피고 지면, 마른 가지에서 명주처럼 얇은 진짜 진달래가 힘없이 핀다. 그 꽃빛깔은 양지바른 산에서 피는 진분홍빛과는 사뭇 다르다. 어려서 몸이 약해 다섯 살에 겨우 걸었다는 셋째 할아버지 댁 손녀딸 빛깔이다. 가느다란 꽃대에서 하얀 냉이 꽃처럼 엉성하게 핀다.
산과 들에 종달새 울면, 냇가에 버들강아지 송사리 모두 동면에서 깨어난다. “이랴! 이랴!” 쟁기질 가래질하는 일꾼들, 소치는 아이들 모두 손발이 바쁘다. 엄마들은 산나물, 언니들은 보리밭 고랑에 달래 냉이 꽃다지 나물 캐러나간다. 나는 볕 바른 툇마루에 앉아 꽃을 기다린다.
하루해가 점점 길어지면, 쪼그리고 앉아 나무꼬챙이로 다식판 문양의 꽃을 그린다. 아직 글을 모르니 만날 하고 노는 짓이다. 멀리서 제 키만 한 지게 위에 연분홍빛 진달래가 벙싯벙싯 먼저 웃는다. 나는 까치발로 뛰어 진달래꽃만 쏙 빼 들고 화동처럼 사뿐사뿐 앞서 걸었다.
그 후, 우리 집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를 싸들고 서울로 이사했다. 그날, 작은아버지가 가시는 장지에서 동산이 대부가 예니 곱살 꼬맹이 창희를 만난 것이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눈을 활짝 뜨고 봐야 하는데…. 정작, 볼 수가 없다. 동산이 대부는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이제 고향 마을에는 일가친척보다 선산에 누워계신 조상의 묘가 더 많다. 무덤가에 진달래 생강나무 조팝꽃이 꽃 대궐을 이뤄 사시사철 문중을 지키고 있다.
산간지방에 난데없이 폭설이 내렸다는 일기예보에 친정엄마에게 동산이 대부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겨울, 동짓달에 선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서둘러 핀, 꽃 사태에 공연스레 나는 시름시름 꽃 멀미, 꽃 몸살을 앓고 있다. 봄꽃은 무죄다.
* 할아버지와 항렬行列이 같은, 유복지친有服之親 이외의 남자친척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선우미디어
<<좋은수필>> 2015 - 4
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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