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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님에 대한 변

님에 대한 변

 

 

어느 날, 누구 씨 하니 엄마는 글을 쓰는 사람이”, 한문 투의 말을 쓴다며 아이가 나무란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대화할 때 이라는 호칭을 자주 쓴다. ‘이라는 단어에서는 그리움이 수묵처럼 번진다.

 

오늘 만남을 주선하며 상큼님, 이쁨님, 사랑님, 명랑님으로 불렀다. 님자를 붙이니 어색하다며 어느 분이 가 낫겠다는 볼멘소리다. 버님 머님 드님 느님, 아직 자를 붙인다는 것도 내 기준으로는 그만큼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말이다.

 

오래된 만남이라고 해서 저절로 정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주 군불을 지펴야 한다. 다시, 상큼 이쁨 사랑 명랑이라고 고쳐 부르니 금세 자유롭다. 자유의 경지, ‘소요逍遙. 소요는 마음대로 막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문득, 보고 싶은 날, 달려갈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얽매임이 없는 문화카페에서 노니는 조촐함이다.

 

클라우디아 수녀님도 늘 약속 없이 번개팅으로 만난다. 이유는 오로지 보고 싶다. 오직사랑, 르코, 오드리, 빙호, 우아미, 취하는 건 바다, 화양연화도 그렇다. “선생님이 뭐냐? 정없게스리!” 그날 모인 벗의 특징으로 컨셉을 정한다. 여기서 사회의 사모관대는 잠시 벗어둔다. 오롯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다.

 

마치, 베네치아의 가면극과도 같다. 결코, 호칭이 오언절구 칠언절구로 무게 잡거나 어줍은 도로 현학적이지 않다. “화양연화, 지금 출발!” 한마디에 인사동, 광안리바닷가, 홍천 언덕에서 양산 쓰고 만난다. 어디 고대 로마시대의 포럼이 따로 있나. 너와 나 우리는 오늘의 낭만 논객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관계를 저울질하느라, 평생 따로 만날 일은 없는 벗들이다. 그만큼 서로 지킬 것이 많다. 언제 밥 한번 다음에 차 한 잔, ‘언제다음이라는 말은 약속이 아니다. 그대와 나의 거리를 측정하는 단위다.

 

나의 느닷없는 호칭에 겁내지 마시라. 제자리에 가면 회장님, 선생님, 선배님, 후배님, 아버님 어머님 아드님 며느님 님님님님, 님타령의 예의범절도 깍듯하다.

 

님은, 아이들 말은 그렇게 잘 들으세요?” “그럼요.” 부모가 해라하면 잔소리지만, 자식이 어미에게 이렇게 해보세요.’ 권하는 말을 다 영양가 있는 교양언어, 세대 간의 소통이다.

 

 

<<내비아씨의 프르방스>>

2014년 9월 <수필과 비평> 촌감단상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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