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재시재 (時哉時哉)
스승 공자와 제자 자로가 산책을 한다. 처음에는 청년과 소년으로 만났지만 이미 같이 늙어가는 노년이 되었다. 산골짜기 교량에서 새가 노닌다. 새들의 지저귐이 정겹다. 입춘도 지났으니 곧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고 연분홍 꽃잎이 휘날릴 것이다.
아내 안(顔)씨와 아들 리(鯉)를 고향에 두고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제자들과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았다. 주유열국(周遊列國)을 하던 공자가 고희(古稀)가 다 되어 제자들과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질풍노도와도 같은 세월 속에 정의(正義)실현을 위해 달렸다. 당시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 행색을 보고 ‘상갓집 개’와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동안 고단했던 여정, 그 무엇을 위하여 긴 시간을 에둘러 왔는지. 지나간 세월은 오래고 남은 시간은 짧다. 순간마다 온 힘을 다했기에 딱히 통탄할 일이야 없지만, 뒤돌아보면 아쉬움인들 왜 없겠는가. 훗날, 공자가 인류의 스승이 되어 성인(聖人)의 목탁(木鐸)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세월이 이미 빗겨나간 화살촉 같기만 하다. 공자는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을 실어 청년 시절로 돌아가 본다. 물가에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물오른 모습을 보니, 저절로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던 소녀가 떠오른다. 호젓하게 개울가를 걷던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휘파람소리만 애잔하게 들려온다. 누가 이리도 내 마음을 대신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고. 바람결에 마음이 일렁인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새 한 쌍이 날아와 도화 빛 놀음에 해 기우는 줄 모른다. 감흥만 번다하지 이미 마른 눈가에서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좋은 시절이로고, 좋은 시절이로다!” 절로 춘흥에 도취하여 꽃 신음이 나온다.
늙은 제자는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좋은 시절이라고? 뭐가 좋은 때란 말인가?’ 아직 바람이 차고 들판은 황량한데, 우리 선생님은 뭘 그리 좋다 하시는고? 퍼뜩 졸음을 쫓으며 눈을 뜨니, 눈앞에 오동통한 까투리 한 쌍이 있다. 동작 빠른 자로는 순간을 놓칠세라 주살을 힘껏 당겼다.
‘새는 죽을 때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더니 사랑의 세레나데가 마지막 곡이 되고 말았다. 커튼콜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새는 사람의 기색을 살피고 날아 올라가 빙빙 돌다가 다시 내려와 앉는다. 공자, 가라사대. “산골짜기의 암꿩이여, 좋은 때로구나, 좋은 때로구나!” 하셨다. 자로가 그 꿩을 잡아 올리자, 공자께서 세 번 냄새를 맡고 일어나셨다.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 향당편)
아군과 적군을 분간하지 못하여 나라를 쓰러뜨린다더니, 연정을 품어 본 적이 없는 투박한 사나이 자로가 청춘을 쓰러뜨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이 생사로 갈라놓은 것이 아니다. 새에게 혹여라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인간 앞에서 사랑을 한 죄밖에 없다.
탓해 무엇하랴. 자로의 병통이라면 지나치게 단순 명료한 것이다. 평생 의리 하나로 올곧게 스승의 안위만 걱정했을 뿐이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꾸벅꾸벅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오던 참이었다. ‘그래, 바로 이때가 좋기는 좋지, 새싹이 움트기 직전이 몸보신 시기로는 딱 알 맞는구먼.’ 인정(仁政)이고 덕치(德治)고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람. 건강이 최고라는 걸 우리 선생님은 이제야 깨달으신다며, 과감한 자로답게 단번에 새를 명중시켰다.
느닷없는 화살에 단말마의 비창(悲愴)이 천지를 뒤엎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던 새의 혼령은 재빠르게 하늘로 올라갔다. 겨울잠에 들었던 풀벌레와 다람쥐 토끼들이 깜짝 놀라 깨어나고, 개울가의 나무들 봄물을 머금는다. 이 긴급한 비상상황을 일러 사람들은 ‘꽃샘바람’이라고 했다. 더러는 기절하고 더러는 떨어지고 치솟아 오르며, 삽시간에 봄의 전령사들이 봄소식 전하기에 바쁘다.
새 울음소리 골짜기마다 비보를 메아리로 전하니, 먼 산 진달래꽃 앞다투어 붉은 조등(弔燈)을 켰다. 산에 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 꽃을 보며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환호한다. 가수 박인희는 골목마다 다니며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 온다고~♬” 로이킴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향기 그대로" 봄 봄 봄 봄이 왔다고 봄 노래를 부른다.
공자님이 얼른 새에게 다가가 코를 대 보았다. “에구~” 이미 숨소리 잦아들었다. 동(冬)장군도 임무교대를 마치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노 스승은 죽은 새 앞에 옷깃을 여미며 “가자! 자로야, 아직 바람이 차구나!” 공자와 자로는 동네 어귀를 돌아 서둘러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돌아갔다.
세상은 온통 봄, 봄봄, 봄이다.
2015 <<논어, 에세이, 빈빈>>
2015-4 <<부산 퇴계학연구원 소식지>>
* 독자들과 상관없이 글을 쓴 사람이 아끼는 글이 있다
<호시절 : 좋은 시절이로고, 좋은 시절이로다>가 바로 그런 글이다
내 글을 내 책에 내면서도 몇번을 뺐다 넣었다 했다
그냥, 49편 책 한권에 끼어 넣는 한편의 글로는 무척 아까웠던 글이다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어 <<논어에세이>>를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ㅋㅋ 사족이다
내 글을 내 사이트에 올리면서 사족을 붙이는 것도 처음이다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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