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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입춘방

 

입춘방

 

 

입춘방, 누가 써야 할까?

 

내가 썼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니, 봄을 기다리는 의식이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를 정겨운 민체로 써서 사방의 지인들에게 보냈다. 감성이 가장 헤펐던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입춘방의 기본인 立春大吉 建陽多慶은 너무 뻔하다고 여겼다. 간결하게 吉祥如意길상여의’ ‘吉祥雲集길상운집’ ‘등을 예서隸書로 썼다. 서당을 개원하던 해부터는 허세를 보탰다. 산과 들에 봄이 오면, 사람은 뜻을 세운다는 天道立春’ ‘人道立志를 즐겨 썼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50가구가 한 통로다. 매달 돌아가며 반상회를 하는데, 사생활 침해라고 거부하는 세대가 많아지자 벌금이 컸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중고등학교 때, 미화부장의 솜씨를 발휘하여 에밀리 디킨슨의 <3>을 입춘방으로 붙였다. 반장 임기 6개월 동안, ‘담뱃불 애완견 층간소음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오로지 단디!라고만 썼다. 층층이 엘리베이터 안에 훈풍이 오르락내리락 봄이 왔다.

 

몇 해 전부터 은행이나 구청 청사에서 입춘방 써주는 홍보 행사가 유행했다. 곧잘 하던 짓도 남이 하면 담박 끊는 성미인지라, 그 후로는 한 번도 먹을 갈지 않았다. 그 삼박한 객기에 인생의 봄날이 빠져나가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논어에는 이라는 글자가 100번도 넘게 나온다. 어질 자는 사람 변에 두. 사람과 사람의 관계, 배려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다움이 그만큼 귀하다. 그 귀한 것을 누구에게 줄까.

 

인을 행함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못한다.” - 논어 -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군사부일체다. 서로 손익을 따질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스승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인이라 한다. 과연, 요즘 스승과 제자 사이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줄 수 있을까. , 자식에게 남모르게 마련해주는 표창장 위조라면 모를까. 제자는 스승에게서 나왔으나 스승보다 낫다는 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의 칭찬조차 무색하다. 스승이 직업이 된 지 오래다.

 

도대체 그 귀하다는 인은 어디에서 구할까. 어미 뱃속에서 품고 나온다. 인의예지仁義禮智 본성本性인 사단四端이다. 측은해하는 마음씨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씨羞惡, 사양하는 마음씨辭讓,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마음씨是非이니, 벼리의 씨앗이 되는 심성이다.

 

씨앗은 발아한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이니,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 새싹 꽃 열매이니 생명을 품은 천도다. 동서남북東西南北 방향을 인의예지로 나누면,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다. 씨앗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숙정문 앞에서, 임종정념臨終正念이 바라야 한다. 본성을 지키는 일은 평생 업이다.

 

군자는 곧고 바르지만, 작은 신의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 논어 -

 

어느덧, 나는 의 계절에 들었다. 이제 빛바랜 입춘방은 뗄 시간이다.

경기 북부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그곳은 뼛속까지 추웠다. 동짓달부터 내린 눈은 사방을 가둬놓았다. 큰댁 솟을대문에 붙은 입춘방이 누렇게 변해도, 집 떠난 대주들이 첩실을 끼고 과수원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니, “대한大寒이 소한小寒네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나에게 봄이 멀던 시절이었다.

 

지학의 열다섯 살에 중학교 교목이 배우는 난초 학란이었다. 나는 늘 노심초사 <초사란>을 치며 주어진 환경을 갈고 닦았다. 스무 살 무렵, 서예가 죽봉 선생을 만나 행서로 난정서 성교서 반야심경을 사사 받았다. 봄기운이 담긴 봄들 춘야春野라는 호를 받아 여덟 폭 병풍에 낙관을 찍었다. 주경야독의 혹독한 시절에 독한 약을 한 움큼씩 삼키며 연애라는 백신으로 불운을 막았다. 이립의 서른은 시집의 울타리 안에서 봄뜰를 가꿨다. 나무마다 매화 송이 봉긋하여 <매실의 초례청>으로 청매실 닮은 아들 둘을 낳고, 불혹의 나이에 인지서당人智書堂을 개원했다. 한학을 전수하신 의당 선생님에게 인의예지를 담은 仁智라는 호를 받았다. 예서체로 예스럽게 휘호 한 <仁義禮智> 편액을 서당 안에 걸었다.

 

인을 빌린다는 것은 본래 인한 마음이 없으면서, 그 인을 빌려 공으로 삼은 자이다.’ 졸저 타타타 메타에 썼던 서문이다. 돌아보니 그런대로 어지간히 살았다. 스승님들께 인을 돌려드릴 차례다. 그분들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입춘방, 누가 써야 할까?

누구에게 양보할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소학 동자에게 넘겨야 한다. 글을 알기 시작하는 8살 무렵의 아이들이 제 팔뚝만큼 굵고 뭉뚝하게 획을 그어야 한다. 입춘방을 날렵하게 잘 쓰면, 맹춘의 결기決起가 날아간다. 대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허, 이 집에 학운이 치솟는구나!’ 미래는 희망이다. 어느 누가, 감히 겁먹지 아니하랴. 동장군도 북망산으로 도망간다.

천하에 봄 봄, 봄기운이 힘차다.

 

 

 

* 좋은수필》 2021-3

수필집 : 메타논어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선집 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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