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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난민촌

난민촌

 

 

네팔, 그곳은 그가 살고 싶어 하던 곳이다. 그곳에 가려고 남편은 명예퇴직을 하고 어학연수까지 떠났었다. 그해에 네팔 카트만두에 지진이 났다. 그 현장은 허망하게 건물과 사원이 다 내려앉았다.

 

아이들을 결혼으로 분리 독립시키고 눈앞에 펼쳐진 노후가 온통 꽃밭일거라고 여겼다. 웬걸, 복병이 나타나 부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았다. 자진해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손자 녀석이다.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낸 꿈돌이다. 꿈에 그리던 2의 인생은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현재 뾰족탑 옥탑 방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그동안 부부는 그런대로 잘살아왔다. 인생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하는 나이다. 나는 여행을 가자했으며, 남편은 이제 더 는 나다니지 말자고 했다. “당신, 네팔가고 싶어 했잖아요.” 네팔은 내가 그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론 네팔에 살려고 가는 것은 아니고, 잠시 휴정시간이다.

 

새벽에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어디를 가느냐?” 네팔이라고 하니 네팔은 별이 아름답다고 들었다, 어느 부부가 네팔로 이별여행을 갔다가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 돌아와 잘 살고 있다고 기사가 말한다. 포카라의 별빛은 그럴 만했다.

 

남편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코스로 셰르파 한 명과 등반을 떠났다. 나는 날마다 페와 호숫가에서 동서남북을 몇 키로 씩 더 멀리 걸어 다녔다. 티베트난민들이 살고 있는 난민촌은 아주 낙후된 곳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안내소 놀이터청년이 나는 잘 사는 나라 코리아에서 왔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스쿠터 타고 다니는데, 그들은 난민이라며 왜, 외제 차 끌고 다니느냐? 난민촌에 볼 것도 없으니,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렸다. 그는 네팔 온 지 6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한다.

 

난민은 선택한 삶이다. 배가 고파 빵을 구하러 올 수도 있지만, 자유를 선택해서 올수도 있다. 외제치 타는 것은 당연하다. 네팔 자체에서 생산하는 차가 없으니 다 수입 차다. 일단, 물질이든 정신이든 잘 살려면 꼬인 마음부터 풀어야 한다. 나부터 그러고 싶다. 외국여자가 혼자 다니는 것은 소매치기의 타깃이 되며 목숨도 위험하다고 겁을 준다. 나는 그들의 눈을 쳐다보며 웃는다. 그들이 내게 해코지할 이유가 없다.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가 평화로워 보인다. 마을 노인이 다가 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하니, 대뜸 노우스코리아?” 냐고 . 사우스코리아라고 하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free free freedom, 사우스코리아!” 그는 자유를 찾아 온 사람이다. 이 거리 저 거리 한나절을 돌아도 아무도 제재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나도 자유다.

 

큰 트럭들이 돌을 실어 올라간다. 논과 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으로 나도 올라갔다. 언덕 위에 학교가 있다. 담장 위에서 보니 운동장에서 공놀이 하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핼로우~ 마담!예뻐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니 운동장에서 공놀이 수업을 하던 남자선생님이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가. 냉큼 들어가 이산가족 만난 듯 아이들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네팔 아이들의 미소는 순박하다. 무엇을 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 별빛을 닮은 맑은 눈과 눈자위가 깊어 마음까지 빨려 들어간다. 선생님이 교실과 도서관 교무실을 보여준단다. 말이 그럴싸하지 TV에서 봤던 장면들처럼 책 몇 권 칠판하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이 졸졸졸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다닌다. 어느 지점쯤에서 서로 밀치며 내 옆에 붙는다. 한 마디씩 영어로 말을 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용어가 외국인에게 정말 통하는지 실험해 보는 중이다. 내 영어가 턱없이 짧다. 내 손과 내 다리 내 옷자락을 만지며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교무실이라는 방에 들어가니 아낙네 서너 명이 꽃을 만지고 있다. 속닥속닥 꽃송이를 실에 꿰어 꽃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준다. 와우~! 예정에 없던 횡재다. 순간, ‘! 차차이런 몰염치라니. 그 흔한 사탕이나 초콜릿 한 봉지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곳에 아낙들은 다 선생님들이다.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남편이 돌아오면 주라며 큰 꽃 몇 송이로 꽃다발을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박수치고 여선생들이 마구, 마구 나를 껴안고 뽀뽀세례다. 말보다 격한 직설화법이다. 정말로 미안하고 민망했다. 일천 루피 짜리 지폐 2장을 멋쩍게 건넸다. 주황빛 메리골드 꽃은 환영과 남은 여행의 안녕을 빈다.”는 그야말로 나마스테이를 상징하는 꽃이다. 수북하게 쌓인 꽃 더미 위에 돈을 올려놓더니, 꽃 고명 장식을 한다. 돈이 순식간에 천수국 만수국으로 성스럽다.

 

엄마 카톡 : 오늘, 난민촌 학교 가서 한나절 잘 놀다왔다.

아들 카톡 : 엄마, 그런데 가서 괜히 돈 주고 그러지 마세요.

엄마 : 아들, 걱정 마시오.

아들 : 그런데서 돈 주고 그러면, 그쪽 애들 인생을 꼬이게 하는 거예요. 거지근성으로 비굴하게 돈 벌려고 한다고요. 지들 팔자대로 노력하며 살게 내버려둬야 해요.

 

세상에서 공짜가 가장 비싸고, 무상복지가 게으름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안다. 마트에서 1+1도 마다하고, 정치인이 퍼주는 과잉 포퓔리슴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디에 가서 단돈 2만원에 그만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설령, 어긋난 행위였더라도 비싼 점심 한 끼 먹었다고 여기니, 배가 든든해지며 기쁨이 차오른다. 이런 행복 누리려고, 오전 오후 때론 점심밥도 굶어가며 도서관마다 강의하러 다녔던 것이 아닌가. 집 떠나 길 위에 서면 나 또한 표류하는 난민이다.

 

아직, 아들에게는 돈 줬단 말은 하지 못했다. 남편이 준돈도 자식이 준돈도 아니다. 2만원의 행복! 거지근성? 아니, 나에게는 길 위의 인문학이다.

 

 

수필과 비평2020-5

 

* 류창희 :

《호련.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빈빈. 매실의 초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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