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

 

 

오우~ 동서, 앉아있는 모습이 명화네

 

새벽부터 전을 부처 오느라 지친 모습이다. 거기다 책 한권만 들면 독서하는 소녀인데. 그러나 사실 르누아르풍의 금발이나 복숭아 빛 붉은 볼이 아니다. 오늘 동서의 모습은 무채색에 표정이 없다. 느닷없는 나의 아부발언에 저는 목이 긴 모딜리아니죠맞다. 얼굴도 목도 허리도, 무엇보다 말의 여운이 길다.

 

~ 모딜리아니나는 스마트 폰을 열어 저장해 놓은 모딜리아니 그림 32장을 보여줬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야모딜리아니 그림 옆의 수첩을 든 여인의 사진을 한 장 더 보여줬다. 인증샷이다. 제사시간이 닥아 오는 막간의 기억스케치다.

 

파리 근대 미술관, 그 방에 들어서자! 이게 뭐야?’ ‘모딜리아니(1884~1920) <푸른 눈의 여인>’이 그곳에 있다. 텅 빈 푸른 눈이다. 모딜리아니는 선만으로도 이미지가 충분하다.

 

모딜리아니, 부르주아 청년으로 최후의 진정한 보헤미안이었지만, 그의 삶은 고요한 수면을 견디지 못하고 항상 끓어 넘쳤다. 그런데 작품은 외려 고요하다.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 슬픔이 배인 듯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처럼 푸른 눈의 여인들을 그렸다. 관능과 차가움과 비장함, 긴 목 긴 얼굴, 공허함을 꿈꾸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을 어찌 마다한단 말인가.

 

큐레이터가 나를 자꾸 쳐다본다. 순간, 그녀와 감정 마찰이다. 나를 향해 경고의 눈총을 쏜다. 한 바퀴 돌아 그 방으로 또 갔다. 그러고도 서너 번은 더 갔다. 무엇을 따지러 간 것은 아니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설명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다. 나는 다만 푸른 눈빛과 교감하고 싶었을 뿐.

 

일부러 약을 올린다고 생각했는지 씩씩거린다. 그녀를 무시했다. 지금 나는 행복 중이다. 파리에 온 보람이다. 내가 언제 다시 그 작품 앞에 설까. 그저 감개무량하다. 더구나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처럼 인파에 떠밀려 줄을 서서 보지 않아도 된다.

 

그녀 큐레이터 머리모양을 감상할 겨를이 없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거리를 다니면서 진작 크로키를 배웠으면 좀 좋았을까. 천천히 음미하며 그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태 무엇을 했을까. 여행을 누릴 준비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도 겉멋은 들어, 눈에 비친 정경을 간직하고 싶으니 염치가 없다. 애꿎은 내 손만 꾹꾹 눌러본다.

 

미술교과서에서 목이 긴 푸른 눈의 여인을 만났었다. 바로 미술반에 들어갔다. 미술반 아이들은 나와 다르다. 단발머리 귀밑 2cm. 양 갈래 묶음머리 5cm. 두 번 땋고 묶은 3cm의 규정도 없다. 등 뒤로 땋은 머리가 허리춤까지 찰랑거려도 교칙에 걸리지 않는다. 긴 머리의 사립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이 부러워서 미술반에 든 것은 정말 아니다. 오로지 모딜리아니의 그림 한 컷이 나를 불렀다.

 

일주일에 한 번, 석고상을 앞에 놓고 4B연필로 비율을 맞춰가며 스케치를 하였을까. 밑그림이 말갛게 보이도록 연둣빛 나뭇잎을 물감으로 칠하였을까. 어림없다. 그림물감도 없이 미술반에 들어온 멍청이친구가 또 있었는지, 그 아이와 나는 양동이를 들고 다녔다. 아이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팔레트와 붓 씻을 물을 공수하는 미술반 도우미역할이다. 그 양동이를 든 소녀시절의 꿈이 미술관 안에 걸려있는데, 어찌 건성으로 지나칠 수 있을까. 멈춰 서서 오랫동안 올려다보던 화실 불빛보다 끌림이 강하다. 한번 보고 지나갔는데 또 뒤에서 잡아당기고, 옆방으로 갔는데 나만 놔두고 갈 거야?” 라며 따라 나온다.

 

팔레트에 물감을 짜 놓은 듯, 공작새의 뒷날개 같은 오색찬란한 레게스타일의 그녀. 그녀가 다가온다. 어라! 험한 표정까지 짓는다. “?” 아니 내가 저에게 춘풍을 보냈나, 추파를 던졌나. 머리 빛깔이 예술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평소 내 옷차림처럼 흑백의 선만으로도 충만하다. 그녀의 빛깔을 닮은 헤르메스 총천연색의 화려한 스카프는 관심 없다. 나도 같이 맞섰다. 여기는 프랑스 파리, “!” 너 아니고,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라고 외쳤다.

 

큐레이터가 오해할만하다. 내가 언짢을 이유가 없다. 그녀의 스타일은 그녀의 취향이다. ‘미안! 큐레이터’ ‘아듀~, 모딜리아니’ ‘안녕? 안녕아우리 오늘처럼, 영혼이 궁핍한 날이더라도 초록은 동색, 동색으로 힘내자!” 제삿날만 되면, 서슬 퍼런 큐레이터가 지키는 부엌분위기. 동서시집살이는 오뉴월에도 상강발친다고 했던가. 훗날 목이 길어 슬픈 기다림일지라도 서로 공허한 시선을 알아주던 동서의 인연이기를. ‘색즉시공, 공즉시색모딜리아니의 눈빛을 터치한다.

 

 

 

2019-06 <좋은수필>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샐의 초례청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0) 2020.03.18
미투  (0) 2020.03.01
사인sign  (0) 2020.01.06
카톡방  (0) 2020.01.05
김씨네 편의점  (0) 201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