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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의 초례청

여행을 떠나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먹고 살 일이 아닌데도 틈만 나면 붙잡고 있다. 그 짓을 왜 하느냐고 말려도 포기하지 않는다. 가히 벗 삼을만하지 아니한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싸인지’라는 것이 유행했다. 설문지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름 나이 성별 취미 감명 깊게 읽은 책, 존경하는 사람, 꽃 등의 종류가 인쇄되어있었다.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망초(勿忘草)를 좋아하는 꽃이라고 적었다. 꽃말처럼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연습한 싸인(sign)으로 마무리를 해 친구들과 교환했다.

 

그때부터 고민이 있었다. ‘취미를 뭐라고 적을까’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을 너나없이 청기와로 바꾸던 5공화국 시절이었으니, 어른들은 목련을 닮았다는 영부인이 모델인양 획일적인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다지 활동적이지도 못하면서 ‘여행’이라고 적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여정이 길었건만, 아직까지 딱히 “이거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취미가 없다. 세태를 따라 이미 몇 가지가 지나갔을지 모른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취미는 좀 근사하고 싶다.

 

“제 취미예요”라고 최근까지 자주 말하던 것이 있다. 사람을 챙겨주는 일이다. 친척 친지들의 특별한 날을 기억했다가 축하엽서라도 보내준다. 살면서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늦둥이 바람이 일어나자 더러 한 명씩 아이를 빠뜨리거나 태어난 것조차 아예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 중 어떤 이가 “아니? 우리 아이가 중학교를 갔는데, 요즘 그 사람 정신이 있나 없나.” 하며 섭섭해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일도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

 

고맙다며 교양 운운하는 사람도 있다. 순전히 저 좋아서 제 멋에 겨워하는 짓이다. 나는 취미활동중이라고 말하나 주고받음이 깔끔한 이들에겐 부담이다. 개인의 취미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이 불편해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옳다. 

 

어느 집 가장이 난(蘭)을 재배했다. 늘 통풍과 채광을 신경 쓰느라 외출도 제대로 못했다. 난은 성품이 인색한지 주인이 신경 쓰는 만큼만 향을 풍겨준다고 한다. 잎이라도 조금 마를라치면 온 식구들이 숨을 죽여야 했다. 난 때문에 빨래도 제대로 못 말렸으며 담배 피우는 사위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손자손녀들이 오는 날은 난 화분을 건드릴세라 베란다에 보초서기를 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쯤 되면 아무리 고아한 난이라도 식구들의 애물단지다. 애지중지하며 정성스럽게 난을 기르던 영감님이 저 세상으로 가자마자 그 집 마나님, 문상객들에게 난을 다 분양해 버리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는 후일담이다.

 

어떤 이는 취미로 골동품을 모은다. 한두 개야 운치와 안목에 품격을 더하기도 한다지만, 그러나 투자의 목적으로 상당한 고가품들도 있다. 청자니 백자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식견도 가격만큼이나 높다. 당연히 깊은 내실 머리맡에 두고 추사병풍으로 둘러친 방안에서 노심초사 지키며 자야한다. 그 물건들은 주인이 어려웠을 때 일등공신들이다. 옛 주인에게 버림받은 한(恨)을 새 주인에게 토해내기도 한다는데. 한이 맺힌 물건들이라 빨리빨리 순환시키는 게 상책이란다. 아취(雅趣)로 잠시만 맡아 완상할 일이다.

 

올 정초, 산마루에 붉은 해가 떠오르는 수묵화 연하장을 받았다. 어떤 이는 소인처럼 늘 종종거리는 내가 안 되어 보였든지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을 그려 보내주었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묵향을 맡아본다. 가까이 하기엔 *‘익청(益淸)’이다. 다리미로 다려 책상유리 속에 끼어 넣었다. 유리 속에서도 묵향이 번지는 것 같다.

 

향기가 소중하고 기쁜 만큼 낭패감도 크다. 그 심원함에 기가 꺾인다. 무슨 재주가 있어 버금가는 답신을 해줄 수 있겠는가. ‘진작 익혀 놓았으면 좀 좋아.’ 지나간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그런 날은 꼭 먹을 간다. 붓을 들어 서법에 맞지도 않는 글들을 화선지에 써본다. 보낼 수 없는 날이 더 많다.

 

취미도 나이를 먹는가보다.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바뀐다. 몸에서 마음으로 자리를 옮긴다. 차 한 잔 우려내고 독서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꿈꾼다.

 

난 지금, 꿈을 작업하고 있다. 발을 겨우 떼어놓는 걸음마부터 시작하여 뒤뚱거리며 서성인다. 때론 들길을 걷다가 어느 날은 기차나 비행기를 탄 듯 속도를 내어본다. 환호성을 지르며 처음 밟던 광활한 몽고 초원 같은 신선함도 괜찮을 텐데…. 겨우겨우 쓴 글들을 모아 ‘oo님께. 드립니다.’ 조촐한 헌사와 함께 여행 떠날 날을 그려본다.

 

 

  


*香遠益淸(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 중국 북송 때 周茂叔의 <愛蓮說> 중에서 

 

 

 

<<매실의 초례청 >> 2008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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