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모르쇠
무엇을 밉게 보였을까.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공연히 눈치가 보인다. 나의 남편은 “주인님 가시는 길에 말고삐를 붙잡고” 따라오는 돈키호테의 하인처럼 내 곁을 지킨다. 본래 집에서 잘하지 못하는 남정네는 밖에 나가면 허세를 부린다.
몽생미셸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날이다. 영국해협으로 흘러나가는 센강 하구의 항구도시 옹 플뢰르 노르망디, 빛의 화가 르누아르 세잔 모네 쇠라 쿠르베와 인상파 화가들의 대부인 브댕이 머물던 곳이다. 전날 저녁에 인터넷으로 급조한 여행코스다. 안내자는 준수한 한국청년이다. 신혼부부 한 쌍, 우리 부부, 그리고 나를 견제하는 그녀다. 그녀를 태우러 파리 16구 샹젤리제로 갔다. 정원이 훤히 들여다뵈는 저택에서 그녀가 나온다. 짧은 단발머리, 움켜쥐듯 껴안은 가방, 맹꽁이 운동화, 오래된 수동카메라, 내 눈에는 영락없는 ‘촌티할매’다. 그녀는 일행을 한 번 훑어보더니 선글라스를 낀다. 역시 선글라스는 패션의 완성이다.
모스크바에서 한 달을 머물다 파리에 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와 키르기스스탄에서 속옷까지 다림질해 주는 하녀들의 수발을 받았다며, ‘백작 부인’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샹젤리제 고급민박집도 혼자 쓴다고 한다. 그녀는 겁나는 게 없어 보인다. 첫인사가 “나는 가방끈이 짧다.” 간단하게 치고 들어오니, 그다음은 그녀를 인정하는 수밖에. 몇 천만 원 통장을 깨서 나오니, ABC 영어 한마디 몰라도 어디든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며 목에 힘주어 말한다. “돈이 양반이다!” 이 나라 저 나라, 민박집 사장이 연결해주는 대로 다닌다고 한다. 집을 떠나온 날은 있으나 돌아갈 날은 없다. 돈이 떨어지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돈이 송금되어오니 더 길어질 것이라며, 당신들 나한테 덤빌 테면 덤벼 봐! 배짱으로 당당하다.
그녀는 지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심사가 꼬여 내가 주는 과자 음료수 커피는 모두 거절할까. 예쁠 것도 없고 돈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남편 하나는 잘 만난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할 말이 많다. 매일 시각을 다투어 일하러 다니느라 점심을 놓치는 날도 많고, 기력이 없어 더러 길에서 쓰러진 날도 있다. 여행경비도 남편에게 미리 송금하고 온 사실을 그녀는 알 리 없으니, 그녀에게 내 모습은 남편의 등골이나 빼먹는 개념 없는 사모님으로 보였나보다.
옹 폴뢰르 노르망디는 파리시민들이 나이 들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한다. 로망의 고장답게 골목마다 조붓한 격이 있다. 떡갈나무 목조건물은 생활주택인데도 관광객을 위한 모형주택처럼 예쁘다. 예쁜데다 분홍빛 붉은빛 베고니아와 페튜니아로 색조까지 맞추니 들어내 놓고 예쁘지만 질리지 않는다. 가로 세로 골목마다 창문에 아이섀도처럼 흰색과 보랏빛 꽃 화분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바닷가로 나오니 빛의 도시답게 푸른 하늘과 해안가의 알록달록한 집, 요트가 즐비하다. 시시각각, 삽시간에 은빛 금빛으로 바뀐다. ‘극치’라는 단어의 물그림자가 온통 우리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곳에서 나의 남편은 현지인처럼, 내게 볼 키스 비쥬biʒu를 “쪽쪽” 흉내 내며 놀았다. 누군가 “놀고 있네.” 흉보면 어쩌냐며 내가 눈치를 살피면, 남편은 “우리 놀러 온 것 맞다.”며 맞장구쳤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도착한 여행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나처럼 “와우~!” 환호하며 ‘바다에 떠 있는 고립된 섬’ 고혹한 몽생미셸의 풍광에 탄성을 지르지 않는다. 1888년에 열었다는 특산물 오믈렛도 먹지 않는다. 그 먼 곳까지 와서 아예 몽생미셸 수도원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성채가 나오든 말든 동네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동상처럼 멈춰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치맛자락 붙잡듯 현지가이드 옆에서만 뱅뱅 돈다. “배탈이 날까 봐, ….”라며 헝겊 가방에서 살균된 우유와 미숫가루만 꺼내먹는다.
몽생미셸에서 돌아오는 길, 봉고차 안의 일행이 모두 곯아떨어져 자고 있다.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뒤에 앉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녀가 여행 떠나오기 전, 곗돈 내는 지인들과 충무에 놀러 갔었다고 한다. 늘 자랑거리만 한 보따리 싸오는 잘난 친구들이란다. 그녀들은 자식농사를 잘 지어 의사 변호사 ‘사’자들의 잘나가는 어미들이다. 좋은 옷 입고, 비싼 보석 끼고, 성형하고…, 아직 기분은 살아있어 고급 포도주 한 잔씩을 따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깊은 밤, 자랑밑천이 떨어지자 그때부터 여기 아파, 저기 아파, 관절 수술, 허리 수술. 명품으로 치렁치렁 치장이 무슨 소용인가. 술기운을 빌어 “내 인생 이게 뭐냐? 누가 보상해주느냐!”며 팔자타령을 하더라. 손자 보랴, 며느리 눈치 보랴, 즈이 식구만 아는 잘난 아들 쳐다보랴, 갈수록 태산인 영감님의 심술을 토로하며 서럽게, 서럽게 꺽꺽 소리 내어 울더란다. 자신이 나서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래 한 곡으로 눈물 마무리를 짓고, 그 길로 바로 몇 천만 원 꿰차고 집 나오니 이래 좋다. 다음 코스는 체코로 갈까? 밀라노로 갈까? 스위스가 그래 좋다던데…. 떠돌다 길거리에서 죽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여한이 없다고 한다.
촌놈과 결혼해 너무 가난하여 딸 하나밖에 낳지 못하고, 남의집살이부터 안 해본 일없이 몹시 힘들게 살았었다고 한다. 죽기 살기 일하여 먹고살만하니,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여편네가 못생겼다고, 무식하다고, 밥 먹다가 뒤엎고, 자다가 발길질하던 남편이 저질렀던 행패를 나에게 낱낱이 고발한다. 이야기 중간 중간 “돈이 양반이다.” 핵심은 절대 놓치지 않고 후렴구처럼 왼다. 그녀는 지금 다달이 건물 세를 받고 있으며, 딸이 마흔다섯 살인데도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남들처럼 손자 손녀 봐 주다 골병들 일도 없고, 감 놔라. 대추 놔라 잔소리할 좁쌀영감도 없으니, 내 팔자가 상팔자라고 팔자타령 사설이 판소리 한 마당이다.
그녀는 지금, 임자를 만난 것이다. 눈 꼬리 쳐진 만만한 여자한테 고단했던 삶을 퍼다 버리는 중이다. 천국의 계단이 따로 없다. 돈이 그녀에게 칸으로 오르는 붉은 카펫을 깔아줬다. 집 뛰쳐나온 로라, 나는 그녀의 과단성에 로얄석 관객이 되었다. 그녀는 드디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녀의 퍼포먼스에 나는 “아아~ 예에~ 에유~” 동조하고 탄식하고 “쯧쯧” 혀만 찼다.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자도, 바람의 딸도, 명품을 사러 온 쇼핑족도, 아비뇽의 여인을 그릴 것도, 이국의 정취를 글로 쓸 작가도 아니고, 아니고…, 아닌 그녀.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돈이 양반이다’로 득도한 순례자의 모습, 나는 그녀를 ‘마담, 모로쇠’로 추앙한다.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류창희 / 선우미디어
<<창작산맥>> 2015 겨울호
<<부산수필문예>> 2017 여름
류창희 수필집 :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