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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에세이, 빈빈

밥 먹는 것도 잊다

발분망식 (發憤忘食)


어찌 밥 먹는 것을 잊을 수 있을까. 수업시간에 “밥 먹는 것도 잊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모두 뜨악하게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서도 각자 자기 놀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밥 먹는 것은 대체로 즐거울 때 잊는 모양이다. 

 

 나는 주부이면서 종종 밥하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어두워진 것을 잊고 하는 짓들이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산책길에 토끼풀을 보면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곁에 어떤 사람이 오가는지, 땅거미가 내려와 내 정수리에 붙었는지도 모르고 들여다본다. 또 책을 읽을 때 주위가 온통 캄캄해도 눈의 동공만 환하게 불을 켠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에이! 재미없어, 또 잘난 척’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틈만 나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만약, 마음을 부리는 심술에 밝고 승부 욕을 즐겼다면 화투나 인터넷 게임으로 사람들과 둘러앉았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홍싸리와 흑싸리 초단과 홍단은 익히 알고 있으나 셈이 밝지 못하다. 이기는 것도 싫고 지는 것도 싫으니 생업이 되는 일은 같이해도 노는 일은 밤낮 혼자 잘 논다.

 

한때 나는 책 읽는 것보다 더 즐기는 것이 있었다. 바느질이나 뜨개질이다. 한창 퀼트에 빠졌을 적에는 잠깐 서는 버스정류장마다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궁둥이를 잠시 붙일 편편한 곳이면 무조건 자리 잡고 앉아 바느질하고 싶어 안달했다. 난 정말 정성껏 잘 차린 밥 따위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우리 입맛 좋은 식구들은 어찌할 것인가. 밥 시간 맞춰 집에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들도 귀찮게 여겼으니…, 바느질 도구들을 “확! 불살라 버린다.”라는 엄포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어찌, 하던 짓을 단박에 끊을 수가 있는가. 들락날락 눈치를 살피며 가족이 다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일어나 독수공방 바느질로 밤을 지새웠다. 바느질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도 아니면서 취미치고는 서로 고달팠다.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서 물었다.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 가라사대 “너는 어찌 그 사람됨은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하여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며, 늙음이 곧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아니했는가.

(葉公이 問孔子於子路어늘 子路 不對한대 子曰 女奚不 曰 其爲人也 發憤忘食하며 樂以忘憂하야 不知老之將至云爾오 - 논어 술이 18문장)

 


위 문장은 군자의 학문하는 자세다. 너무 즐거워 근심 걱정도 잊어버리고 늙음이 오는 것조차 몰랐다고 공자님은 말씀하신다. 어둠이 오는 것을 모르니 가는 세월인들 어찌 알겠는가.

 

요즘, 나는 바느질이 시들하다. 일부러 숙제처럼 마음먹지 않으면 그 짓도 이젠 힘들다. 바느질이야 어줍은 손으로나마 숙련된 땀 수 조절을 하면 될 것이다. 바늘귀도 신통한 기구가 나와 제 알아서 꿰겠지만, 그 외 준비해야 하는 도구들이 점점 많아진다. 돋보기, 확대경, 진한 커피, 물, 비타민, 푹신한 방석을 다 갖춰도 금방 눈앞에 ‘비문증’의 푸른 점박이 나비가 날아다니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허리가 뒤틀린다. 어디 갑갑증만 나는가, 조급증도 일어선다. 한 땀 한 땀, 한 코 한 코, 세월아 네월아 과정을 즐기던 일이 빨리 완성품만 보고 싶다. 달력을 보며 날짜에 빗금을 치지 않아도 마음이 바쁘게 먼저 나선다.

 

문화센터 강좌들이 왜 삼 개월 단위로 편성되는지 이제야 알겠다. 나 같은 사람 때문이다. 작심하여 등록하고 결석하지 않고 삼 개월을 넘기는 것, 그것 또한 지키기 어려운 내공이다. 삼 개월만 잘 견디어 내 몸과 마음에 붙일 수 있으면 ‘능구(能久)’ 즉 오래도록 할 수 있다. 지나간 세월이야 광안리 바다에 내려놓고, 앞으로 내게 삼 개월, 삼 년, 삼십 년을 한결같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즐길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은 고사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컴퓨터 앞에서의 집중도 산만하다. 나는 아직 글이 밥이 되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논어 에세이 빈빈》2014


월간 <<문학도시>> 2013년 10월




류창희 

http://rchess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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