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방 입춘방 입춘방, 누가 써야 할까? 내가 썼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니, 봄을 기다리는 의식이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를 정겨운 민체로 써서 사방의 지인들에게 보냈다. 감성이 가장 헤펐던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입춘방의 기본인 ’立春大吉 建陽多慶‘은 너무 뻔하다고 여겼다. 간결하게 ‘吉祥如意길상여의’ ‘吉祥雲集길상운집’ ‘樂락’ 등을 예서隸書로 썼다. 서당을 개원하던 해부터는 허세를 보탰다. 산과 들에 봄이 오면, 사람은 뜻을 세운다는 ‘天道立春’ ‘人道立志’를 즐겨 썼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50가구가 한 통로다. 매달 돌아가며 반상회를 하는데, 사생활 침해라고 거부하는 세대가 많아지자 벌금이 컸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중•고등학교 때, 미화부장의 솜씨를 발휘하여 에밀리 디킨슨의 을.. 더보기 운명은 동사다 운명, 운명을 거부한다. 아니 거부하고 싶다. 하나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속설이 겁났다. 어미는 밥 먹고 숭늉 마시듯, 습관적인 ‘박복’ 타령을 했다. “부모 복 없는 X은 서방 복도 없고…”, 그다음은 자식 복이 나올 차례다. 대물림을 피하느라 어미 앞에서 절절매며 어미의 엄마가 되었다.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자축 인묘 진사 오미 신유 술해. 사람은 천간天干 지지地支의 육십갑자 순환으로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정해진다. 제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해도 가난할 수가 있고, 어리석고 고질병을 지녔어도 부자일 수 있으니, 숙명처럼 운명도 받아들이라는 유교적 운명론이다. 아이들이 춥다고 하면 이불을 쌓아놓고 널뛰기를 시켰다. 나는 뜨거운 옥수수 차로 몸을 데웠다. 그 꼴을 보신 시어머니께서, 아끼고 아끼.. 더보기 그깟, 짐따위 그깟, 짐 따위 짐에 대한 변이다. 내 짝지의 배낭은 늘 2인분이다. 짐이 아무리 크고 무거워도 어깨 멜빵이 두 개뿐이니 함께 질 수가 없다. 지켜보는 마음만 불편하다. 나는 여권과 현금 소형카메라 핸드폰이 든 작은 어깨가방이 전부다. 어디를 가나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인도. 남편이 배낭을 지고 내리고 다시 짊어질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달려들어 거들어준다. 그러면서 ‘당신 힘이 대단하다’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남편이 비틀거리면서 겨우 일어서면, 언제 어디서나 그들은 나를 쏘아본다. 여자나 남자나 국적 불명하고 한결같다. ‘에유~, 못된 것. 짐꾼을 저리 모질게 부리다니’ 측은해하는 표정이다. 델리 공항에서 뉴델리역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중이었다. 간이 페스트푸드점에서 만난 한국 유.. 더보기 이전 1 2 3 4 ··· 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