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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련 瑚璉 <구름카페 문학상 수상>

옛날의 금잔디

옛날의 금잔디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산기슭, 나는 그곳 시집에서 생활했었다. 그곳은 새색시 활옷을 입고 폐백을 드렸던 집, 두 아이를 낳아 키운 집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새소리를 들었다. 사철 꽃피던 정원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몸무게가 가장 적게 나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인동초忍冬草 곱게 피어 향기로웠지만, 살던 당시는 하루하루를 긴장했던 곳이다.

 

  스스로 이겨내려고 꽃 한 송이 머리에 꽂은 얼빠진 모습으로 얼차려를 했던 곳,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 명치끝이 찌르르하다. 어쩜 수묵처럼 번지는 서글픈 기억은 며느리 노릇을 혹독하게 훈련받았던 게 허망해서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사무치도록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누가 가보자고 하지 않아도 혼자라도 몰래 숨어들고 싶던 차였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남편이 먼저 나섰다.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고 오르던 비탈길을 자동차 페달을 밟아 쌩하니 단숨에 올라간다. 세월이라는 것이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시 그곳을 찾기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지척에 두고도, 꼭 칠 년이 걸렸다.

 

  집터는 그대로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대문과 잔디밭, 커다란 벚나무 밑 꽃창포밭, 연못이 있던 자리와 돌계단은 흔적도 없다. ‘常樂精상락정이라는 노인요양병원 간판이 오히려 뜨악하게 우리 부부를 쳐다본다.

 

  옛 주인을 내친 빚쟁이가 집을 차지하고 앉아 당신들은 뉘슈?” 묻는 것 같다. 수국이 피던 울타리에 돌미나리 자라던 물길을 따라 뒤란으로 올랐다. 그곳은 내가 울적할 때, 푸성귀를 핑계 삼아 오르던 길이다. 노랑 미나리아재비 꽃이 피던 곳. 쑥과 냉이가 지천이던 곳. 매화꽃이 휘날리면 나만 아는 달래와 머위 싹이 나오던 곳. 치마폭에 가득 나물을 뜯던 곳에 개망초와 엉겅퀴가 비켜서면서 어디서 많이 보던 아줌마라고 수런거린다.

 

  ‘그래, 애들아. 나야. 너희가 없었다면 나는 어쩜 숨이 막혔을지도 몰라. 너희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줘서 나는 늘 위안이 되었고말고. 그럼, 그래 다 너희 덕분이야.’ 인사를 했다.

 

  어둠이 내려앉는다. 불빛 밝은 병원 창문 안에서 할머니 몇 분이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식당도 보이고 운동기구도 보인다. 노인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다. 어느 미술관 안에 전시된 그림처럼 한가롭다. 넓은 강당 안의 대형화면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의 정경은 마치 TV만 살아있는 것 같다.

 

  나를 아는 지인이 당신이 살던 집을 절이 인수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중생들이 정토의 땅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저며 놓은 가슴에 꽃소금 뿌리듯, 아리고 쓰리다.

 

  담장이 없는 병원 밖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혼자 웅얼거렸다. “제가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잠시 인사만 하고 나가려고요.”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풀숲을 걸었다. 추석 무렵, 차례상에 올릴 감을 몇 개 따려면 감나무 숲을 헤매도 몇 개 없던 나무에 제법 도토리만 한 땡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사나흘 전, 뒷밭에서 김장 배추 사백 포기를 캐서 고무 함지박에 이고 종일 오르내렸던 뒷마당 솔숲 길. 산후풍으로 고생하였건만, 그즈음 뿌려놓은 취나물 몇 줄기가 나 여기 있다는 듯 배추 잎만큼 탐스럽다.

 

  뒤꼍으로 나가던 철망 문을 붙잡고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문은 그대로네!” 아연을 씌운 문은 부식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내색은 안 했어도 남편도 그곳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동안 아무도 그 문으로 드나들지 않았는지 문은 그대로인데 잡목들이 우거져 무성하다. 풍란이 자생하던 곳을 헤치며 여보, 여기가 더덕밭이었는데 아직도 더덕 덩굴이 휘감고 올라가네!” 말하니 더덕 꽃이 당그랑, 당그랑옛 주인을 환영하는 듯 종을 친다.

 

  방망이를 탕탕 치며 빨래를 하고 잿물을 내고 푸새를 하던 수돗가, 몇 줄씩 빨래를 널던 뒷마당. 송홧가루 노랗게 내려앉아 나의 게으름을 타박하던 장독대가 있던 자리, 바람에 바지랑대가 흔들리면 개가 놀라 허공을 보고 컹컹짖어대던 곳을 가늠해보니, 금방이라도 진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올 것 같다.

 

  오골계를 키우던 닭장 뒤, 오죽나무는 어느덧 대숲이 되어 노제路祭를 지내듯 바람 앞에 상두꾼 소리를 낸다. 나는 곧잘 그곳에 숨어들어 불협화음의 산조 가락을 토해 내곤 했었다. 부추 꽃이 하얗게 피던 밭두둑에 애잔하게 봉숭아꽃 붉더니……. 그 흔적을 찾으려 더듬더듬 내려오는데, 훼방꾼 칡넝쿨이 시비다. ‘여기 지금, 너희 집 아니거든.’ 내 발을 걸었다.

 

  “꽈당!”

곤두박질쳐 엎어지고 말았다. 남편이 얼른 달려와 손을 내민다. 나는 말했다. “가만, 가만, 가만히 놔두세요. 잠시만 이대로 있고 싶어요.” 한참을 그렇게 엎드려있었다. 발끝부터 치밀어 오르는 한의 곡소리 삼키는데 어둠 속에 달빛이 밝아진다.

 

  남편의 부모님과 20여 년 동안 머물던 집, 깊은 연못가에 다다른 듯, 살얼음을 밟고 서 있는 듯, 그 어렵고 조심스러워 전전긍긍하던 시집의 울안이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 눈치도 안 받고 당당하게 남편의 등에 업혔다. 깨진 무릎에서 붉은 봉숭아꽃이 송이송이 피어난다.

 

  그 꽃향기, 박하 향처럼 코끝이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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