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달
- 사달辭達
책이 나왔다.
시중서점에 깔릴 예정이다. 어떤 모양으로 나올까. 포털 사이트 D사에 검색하니 아직 소식이 없다. 다시 N사로 검색하니 ‘어! 뭐지?’ 책 모양의 박스 안에 ‘성인인증필요’라는 문구만 있다. 그 밑에는 빨간 표시가 있다. 저자, 출판사, 가격코드까지 다 나오는데, 표지가 없다. 얼굴 없는 책이다.
이 무슨 변고일까.
어디에다 신고를 할까? 거대 포털 사이트 N사에 전화는커녕 접속하기도 쉽지 않다. 설레던 마음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소심한 나는 겁부터 난다. ‘아~ 까불다가……’ 표제작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내용 중에 걸리는 단어가 있기는 했다. 내비기계에게 아씨와 도령이라는 예우까지 해줬다. 그런데 어찌 귀신처럼 잡아냈을까? 단어를 검색해보니, 책제목이 아예 ‘연놈’인 것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남편이 대신 성인인증을 하고 들어가 N사에 사유서를 올렸다.
책표지 제목 목차 표사를 스캔하고, 먼저 나왔던 두 권의 책도 다 스캔하여 파일첨부를 했다. 첫 번째 책은 ‘현대수필문학상’ 수상집이며, 두 번째 책은 ‘2015 문체부 우수도서’로 선정이 되었다. 책의 작가는 ‘유학儒學을 강의하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무엇이 겁나는가.
나는 여태까지 살아온 사생활까지 뒤돌아본다. 책은 그 사람의 궤적이다. <매실의 초례청>에서 ‘대낮의 햇볕이 진공상태처럼 답답하다. 동네의 개 짖는 소리도 물 흐르는 소리도 고요하다. 방아깨비가 긴 다리를 어기적댄다. 알록달록 무당벌레가 업은 듯 포개어 지나가고, 물잠자리도 덩달아 서로 꼬리를 맞대고 주위를 맴돈다. 매듭 풀잎을 뜯어 손끝으로 잡아당기니, 오린 듯 ♀♂로 쪼개진다. 머지않아 댓돌 위에 아기 고무신이 놓이리라.’ ‘이 무슨 조화일까, 아직 비녀와 옷고름은 풀지도 못한 채 속곳부터 벗기려 했는가. 설탕이 몽당 기진맥진하여 항아리 밑바닥에 굳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밤마다 실랑이만 벌이다 날이 밝은 게 틀림없다.’는 문구로 매화화인이 찍히기는 했다. 에로수필이라기보다는 ‘낯설게 보기’의 대표작이라는 평자들의 칭찬도 많았었는데…,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여자 & 남자>일까. ‘한동안 진달래 시리즈 우스갯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진짜 달래면 주나?” 로 시작하여 ‘저도 어언간 붓을 들어 풍류를 논할만한 진달래꽃이 되었습니다. 진달래, 진짜 달라면 주느냐고요? 내 집 아궁이에 불 지피지 않는 ‘집 밥’만 아니라면 몽땅 드립니다. 이 가을의 낭만을!’ 이 글도 작가의 관음적觀淫的 시선이 좋다고 했다. 세상을 비판하면서 세속의 소문을 능청스럽게 풍자로 전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인데도 오히려 독자가 거부감 없이 동조하게 하는 경어체기법이라 했다. 그 무엇보다 나는 청소년 윤리교과서를 집필한 것이 아니다.
그럼 뭘까.
혹시 <2박3일, 달콤하고 떫은맛>? ‘남자들은 왜 자신이 집을 비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중세시대 『르네상스 풍속사』에서 그들은 긴 시간 집을 비울 때,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웠다. 여자들은 대문에 기대어 남편을 배웅한다. 야릇한 표정 뒤에 감춰진 손으로 뒷문을 열어 정인을 맞아들인다. 정인은 물론 복제된 정조대 열쇠쯤은 가지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정조대 따위는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2박3일, 2박3일은 내게 퐁퐁퐁 소리가 나는 와인 맛이다. 품질이 좋은 와인일수록 단맛보다 떫은맛이 강하다고 한다. 요즘 남편 앞에 나의 심기는 점점 떫어진다. 아무래도 나는 질(?)좋은 아내가 틀림없다.’ 나는 단지, 빈집에서 홀로 와인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한 편 한 편 곱씹어 보니, 아슬아슬한 단어와 문장이 서너 군데 숨어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여행수필 때문인가.
인디아 카주라호 락슈마나사원, 일명 ‘에로템플’의 에로틱한 조각품을 이틀 동안 보았다. 1천 가지가 넘는 체위를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려고 카메라렌즈를 줌으로 당겨서 찍었다. 그리고 다음날, 울타리 밖 눈높이의 철망 앞에서 한나절 더 봤다. 몇몇 동정녀를 닮은 여성군자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헛구역질하며 지나가는 표정을 훔쳐본 것이 말썽일까. 인문학은 상상력이 아니던가. 고문헌과 고건축을 차경借景하여, 주름잡던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는 아름다움을 보아야한다. 누에고치 시렁처럼 켜켜이 생각을 얹다보니 억울함이 크다. 그렇다고 책 보따리를 싸 들고 다니며 독자들에게 일일이 사족을 달까. 문文이란 글과 사상이 바탕을 이룬다지만, 어찌 문학에서 해학과 풍류를 빼 놓을 수 있을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은 통달일〔辭達〕 뿐이다”
子曰 辭ᄂᆞᆫ 達而已矣니라 - 衛靈公
논어 문장 중 가장 짧다.
“말은 뜻이 통하기만 할 뿐” 언어나 문장의 목적은 자기의 의사를 충분히 나타내면 그만이다. 미사여구로 풍부하고 화려함을 구하지 않는다. 군소리나 가식이 필요 없다. 말의 경제는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이 최고다. 어느 날 사직야구장에 갔더니, 상대편 선수가 우리 팀 선수 앞에서 알짱거린다. 얼마나 얄미운지 나라도 뛰어 내려가 한 대 치고 싶다. 그때 들려오는 “마!” “마!” 우레와 같은 함성, 간결하고도 명석한 외마디. 내 글에는 ‘마’가 부족하다.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참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자고 ‘19금’으로 분류 되었을까. 혼자 제목을 파자破字해 본다. 내 비밀 〔별당〕아씨의 프로방〔텐프로〕 스〔들〕. 아고~, 망측하다. 사흘 동안 탄원하여 성인인증에서 해금되었다. 남편은 아침마다 내게 문안인사를 한다. “프로아씨, 당신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남편과 각방을 쓰면서도 19금 수필까지 쓰시다니요.” 아~, 나도 이참에 “마!” 하고 싶다. ‘침묵은 말실수를 줄이는 지름길. 말은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대화라는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꼭 사달이 일어난다.’ 말의 품격을 배우는 중이다.
지레 겁먹고 하마터면 꿈속의 에로까지 'Me too' 할 뻔했다.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매실의 초례청.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미 빈빈.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고 동창회 (0) | 2019.12.27 |
---|---|
이력서 (0) | 2019.12.27 |
연예인 병 (0) | 2019.12.27 |
어찌 숨길 수가 있는가 (0) | 2019.12.27 |
꼰대 (0) | 201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