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
- 아언雅言
구경 중에 싸움구경과 불구경이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산 위에서 구경하다 내려와 보니, 내 집이 불타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겠는가. 아무 곳에나 마구 그어댄다. 붙으면 붙고, 아님 말고 식이다. 불꽃이 두 살배기 손자의 생일케이크 위의 촛불처럼 소망이라면 좋겠다.
국정농단의 주역들, 잘나가는 국사 강사들, 베를린에서 대종상을 받는 감독이거나 영화배우 그들을 그냥 가십거리로 보아 넘기지 못한다. 좁은 땅의 밀집된 인구, 빠른 인터넷 속도의 폐해다. 나보다 잘살면 나보다 잘나가면 두고 못 본다. 누가 결혼을 두 번했든 세 번했든, 그 일로 반성을 하건 상과 벌을 받건, 모두 개인적인 사생활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집단적인 관음증 증세를 보인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안에 기사나 사건과는 무관한 똑 같은 주장과 목소리로 이곳, 저곳 닥치는 대로 성냥을 그어댄다.
성냥〔石硫黃〕은 마찰에 의하여 불을 일으키는 도구다. 성냥불의 관건은 속도다. 확! 그어야 불꽃이 살아난다. 그것이 아르바이트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심각한 참여인지 모르겠다. 불꽃뿐인가. 불 꺼진 성냥 개피 그을음으로도 마구 긋는다. 전혀 거르지 않은 육두문자,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다.
그럼, 그렇게 바른 척 말하는 너는?
나, 나는 자시에 태어난 쥐띠도 아니면서 마우스를 손에 쥐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면을 다 보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더 궁금하여 혼자 숨죽이고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가. 댓글이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댓글은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아프고 따갑다가 거의 비슷한 내용을 계속 보면 내성이 생겨, 밋밋하면 오히려 가렵다. 일방적으로 ‘봐라!’하는 공중파 방송의 뉴스, ‘이래도 안 봐!’ 목소리 높여 왕왕거리는 선정적인 종합편성채널보다 나에게는 실시간 댓글이 더 리얼하다. 말은 점점 거칠고 억양과 속도까지 숨이 차다. 나도 생각이 있는데, 나도 소신이 있는데, 자신을 바로 잡으려 애쓰나 어느 사이 무젖는다.
근면, 성실, 하면 된다, 국민교육헌장, 새벽종이 울리는 새마을, 반공 방첩. 초등학교 때부터 획일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느 소설가는 여태까지 정치가 자유당시절과 공화당시절에서 공회전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가 다시 다른 잣대로 그 길을 또 가려고 한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후, 나는 수업하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공교육의 학교교실과 달리 나의 강의실은 20~80대가 다 계시다. 어느 쪽을 부각시킬 수도 폄할 수도 없다. 바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 신세대 구세대의 양단이 아니라, 각자 다른 세대 제자백가들의 목소리가 천층만층이다.
15분 단위로 폭소를 자아내게 하던 내 논어 수업에 예禮만 있고 악樂이 점점 줄어든다.
춘추전국시대의 스토리텔링도 조심스럽다. 바로 팩트인가, 허구인가 묻는다. 논어는 중국의 고전이다.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드배치이후, 중국이 심상찮다. 한국산 불매운동, 여행객 불허, K팝과 K드라마를 제재한다. 인문학 논어강의를 사대주의 유물을 일베*의 수준으로 추앙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느닷없이 공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묻는다. 중국에서 노신이 ‘한자가 멸하지 아니하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 〔漢子不滅 中國必亡〕’는 말을 했었다. 주체사상이 살아야 하니 유학사상儒學思想을 거부하여 공자를 ‘시인’이라고 표현했다. 사상과 철학보다 나에게 공자의 말씀은 문학이다.
세상에 가장 미련한 사람이 변호사 앞에서 변명하고, 판사하고 이판사판 죽자고 싸우는 사람이라 들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무슨 일로 일부러 시간 맞춰 변호사와 판검사를 만나겠는가. 그래서인가. 우리의 시민의식은 광장에서 바로 촛불을 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이글을 쓰는 동안, 인천 소래포구에 화재가 났다.
발 빠른 기자들보다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현장, 또는 이전에 현장에 갔던 사람들이 불꽃처럼 댓글을 달았다. 댓글이 살벌하다. 누구 하나 화형火刑으로 죽는 꼴을 보려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다. 누구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가 군중의 몰매를 맞아 억울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안의 누리 꾼〔Netizen〕들이 모두 전문가다. 여론이 곧 정의만은 아닐 것이다. 과도한 언어폭력이다. 한번 죽이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죽이는 그야말로 육시戮屍할이다.
공자께서 평소의 말씀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과 예禮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다 우아한 바른말〔雅言〕을 하셨다.
子所雅言ᄋᆞᆯ 詩書執禮 皆雅言也러시다 - 述而
공자께서는 우아한 바른 말만을 하시고 괴변 폭력 난동 귀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셨다.
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윤리도덕처럼 거창한 기준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왕이면 교양을 갖추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상냥하고 우아하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일상적인 말도 눈치를 본다. 누군가 느닷없이 나에게 성냥을 그어댈 것만 같다.
* 일베 : (일간 베스트 저장소, 약칭 일베) 대한민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주로 정치, 유머 등을 다루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단체로 대한민국 보수 성향의 유머 풍자사이트이다. - 위키백과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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