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논어란?
- 개강 날의 수업 안내
도
전주 길면 연주 안 듣는답니다.
스무 해 동안, 부산시립도서관 여러 곳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논어를 함께 읽습니다. 수강하시는 분들은 나이나 학력수준이 비슷한 또래 집단이 아닙니다. 20~90대, 고향도 성별도 목적도 주장도 다양한 제자백가들이십니다.
가장 많은 선생님들은 정년퇴직한 어르신들입니다.
이분들이 저에게 배우러 오겠습니까. 같이 소리 내어 읽고 풀이하며 동시대를 ‘공감’하고 싶으신 겁니다. 그 다음은 백화점 명품이나 성형의 유행보다 세상을 맑게 살고 싶어 하는 순수한 여성들입니다. 어느 분은 한문은커녕 한글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왜 오느냐구요. 출석을 부르니 개근을 하신답니다. 어떤 이 삼십 대는 일베같은 분들이 모여 무슨 모의를 하나 감시차원의 수강생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한두 주 개강 즈음에 와서 하늘의 달은 보지 않고 단어하나 농담하나로 딴죽 걸고, 녹음하고 동영상 찍어 즉시 손가락으로 국가신문고에 민원을 넣기도 하는 검지 족입니다.
자, 그러니 저는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할까요.
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까요. 명심보감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양고기 국이 비록 맛이 있지만, 여러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는 어렵다.” 논어의 본래 맛은 무맛입니다. 먹는 사람 마음입니다. 시장이 반찬입니다. 아무리 진수가 성찬이어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밥은 끼니로 먹기도 하지만, “밥 한 번 먹자”는 관계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논어는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 정을 붙이는 끈끈한 밥맛입니다.
지역마다 도서관마다 크고 작은 특징이 있습니다.
정서의 실마리가 다 다릅니다. 한 강의실에 어림잡아 30명씩만 오셔도 봄 학기 가을학기 300명쯤의 새 사람들이 들고 납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밥상을 차리는 공양주보살 같은 강사입니다. 주걱만 두드리겠습니까. 학문도 수다도 거문고도 비파도 학교종도 세숫대야도 꽹과리도 다 쳐야합니다. 그중 가장 신명나는 악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밥주발에 코를 흘리고 재를 뿌려도 “맞습니다, 맞고요” 맞장구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뿐이죠. 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도서관 강좌를 수강하시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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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연주를 시작할까요?
논어란? 공자와 공자 제자들, 즉 사제지간이 묻고 대답하는 이야기입니다. 본문내용은 짧고 경쾌합니다. 문서는 길어도 보관하지만, 주고받는 말은 길면 서로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잔소리가 되죠. 더구나 여러 명이 모여 토론하다보면 문답 사이를 불쑥 치고 들어가 잽싸게 빠져나와야하니 문장이 짧습니다.
논어는 사서四書 :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삼경三經 : 시경 서경 역경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유학사상입니다.
동양인문학의 대표주자죠. 고전古典이 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고전苦戰해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논어를 힘들게 전투하듯 말고,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 꼭꼭 씹어 본 재료의 맛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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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그는 누구인가?
공자의 성은 공孔 이름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입니다. 유가儒家의 시조로 춘추전국시대 노盧나라 중국 산동성 곡부출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년전 노나라 양공 22년 B.C551~479년 창평향 추읍에서 아버지 숙량흘 어머니 안씨에게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70세, 어머니는 16세였다고 합니다. 어라! 나이차가 엄청납니다. 호기심이 당기죠?
재미있는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인聖人도 비껴 갈수 없는 스토리텔링이죠. 공자의 위로는 누이가 아홉 명이 있었답니다. 많지요? 그 당시는 농경시대니 힘을 쓰는 일꾼 아들이 있어야겠지요. 어렵사리 아들 맹피孟皮를 두었는데 한 쪽 다리가 짧고 지능이 순수한 천사였답니다. 가문의 대를 잇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이미 아버지 나이는 연로하시니 어머니는 건강한 이팔청춘이어야겠죠.
그리하여 육례〔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를 거쳐 사모관대와 활옷을 갖추고 혼례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상황을 훗날, 입담 좋은 우리나라 학자가 ‘야합野合’이라 표현했다가 유림儒林들이 불경하다고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방영도중 강의가 폐강되었습니다. 야합이라는 단어가 이름 그대로 야외에서 합방하는 물레방앗간 혹은 보리밭고랑에서의 만남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은 본처가 있는데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단지, 예를 갖춰 친인척 지인들에게 청첩내고 피로연을 한 혼례가 아닌 조촐한 합방이었을 겁니다.
어린 산모가 아이를 낳느라 애를 먹습니다.
왜냐하면 사주 좋은 아들을 생산하는 부담이 컸겠죠. 어른들이 중문에서 지시하는 대로 합니다. 태중에 공자 아기씨께서 성질이 급하셨던지 머리를 비집고 나오려하니, 밖에서는 “산문, 닫아라!” 호통 치십니다. 시時가 맞지 않아서죠. 윗목에 있는 차가운 다듬잇돌로 산문을 닫고 기다리니 “산문, 열어라!”라는 명령에 쑥 나왔답니다. 나온 어린이는 다듬잇돌에 정수리가 눌려 짱구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혹은 어머니가 니구尼丘산에 기도하여 구丘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머리가 불룩합니다. 속설에 짱구가 머리가 좋다고 하죠. 저도 집의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짱구머리통이 되도록 엎어 재웠던 어미입니다.
바라고 바라던 총명한 아들이 태어났지만, 공자의 아버지는 3년 후 돌아가십니다.
홀어미가 혼자 키웁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리 예의 바른 청소년으로 자랐을까요. 어머니의 교육이 예를 올리고 철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 거란 추측을 해봅니다. 어머니마저 공자 나이 18세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을 아버님 곁에 모시려고 하는데, 아버지 묘지가 어딘지 몰랐다고 하니, 공자가 그동안 얼마나 핍박받는 생활이었을까 짐작이 됩니다.
중장년까지 행색이 초라한 상갓집 개〔喪家之狗〕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56세부터 제자들과 주유열국周遊列國 하다가 69세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과 아성亞聖이 태어난 곳을 ‘추로지향’이라고 합니다. 도덕과 문화가 이상적인 유토피아죠. 우리나라 경북 안동 군자리에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고장에 도산서원이 있습니다. 서원 입구에 공자의 후손 공덕성이 휘호한 ‘鄒魯之鄕추로지향’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추로는 성인의 고향입니다. 공맹에 버금가는 퇴계 선생을 기리는 선비문화 유학의 본고장이죠.
2019년 현재는 예수가 태어난 지 2019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가장 큰형은 석가모니고 예수는 막내입니다. 부처는 사후에 극락왕생과 지옥이 있고, 예수도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신神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사후死後가 없습니다. 제자인 자로가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아직까지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귀신 섬기는 것에 물으니 “아직까지 산 사람 섬기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귀신 섬기는 것을 알겠느냐?” ‘지금 여기’ ‘너와 나’가 있을 뿐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학문은 “있을 때 잘해!” 입니다. 부처의 자비나 예수의 사랑이나 공자의 인仁사상은 이름만 다를 뿐, 일이관지一以貫之 도道는 하나, 오직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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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솔직한 사람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되었다는 뜻이겠죠. 실제 공자는 잘난 척하지 않습니다. 때론 너무도 솔직하여 보통 사람처럼 어설프고 허술한 면이 논어 문장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공자님을 좋아합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가장 원숭이답죠. 동물이든 사람이든 떨어지고 넘어져야 격려의 박수를 받습니다.
외모요? 출중하죠.
봤느냐고요. 제 안목이니 타인의 취향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키가 9척6촌이었다는 데, 2미터 정도의 장신입니다. 키뿐만 아니라 귀도 유난히 컸다고 합니다. 제자들과 토론을 많이 하셨으니, 그만큼 제자들의 말을 경청했다는 의미겠죠. 공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르신이기보다는 오히려 ‘한주먹’하는 분, 즉 보스 또는 리더라 할까요. 문文보다 무武에 가까운 정치가였다죠. 그러나 무를 숭상하는〔尙武〕 계씨가 정치에 대해 물으면, “나는 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무력공격을 피합니다. 무력에 인문학의 기본이 없으면 살생을 하게 됩니다. 인정人情이 스며들어야 인정仁政과 덕치德治를 할 수 있습니다.
의식주는 어떠하셨을까?
“군자는 보라색과 붉은색으로 옷깃을 장식하지 않고, 다홍색과 자주색으로 속옷을 만들지 않는다. 평상시 입는 가죽옷을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는 짧게 하셨다.” 본심을 잃을까봐 중간색을 선호하지 않았다니, 마음가짐과 디자인 색이 토털패션인 베스트드레서 앙드레공孔이셨습니다. “정미한 쌀밥을 싫어하지 않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제 철이 아닌 것, 바르게 자르지 않은 것, 간이 맞지 않는 것, 시장에서 사온 술과 육포 등을 먹지 않으셨던” ‘포정庖丁’ 즉 요리사 공셰프이셨죠.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악기 연주가 없으면 차를 마시지 않으셨던 까칠한 도시의 남자. 마구 두들기는 타악기가 아닌 섬세한 손가락의 선율로 현악기를 타십니다. 마음 다스림으로 즉흥 연주를 하는 ‘재즈공자’의 모습이 논어에 자주 등장합니다. 예와 악의 조화를 실천하셨던 ‘종합예술인’이셨습니다. 물론 정부인과 백년해로할 취향은 아니죠. 실제로 조선왕조에도 유학하는 선비라고 하는 분들은 처첩에서 자유롭던 신분이었죠. 어디 조선시대뿐인가요? 내 아버지도 그렇게 살다 객지에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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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처럼 각자 목소리가 큽니다. 오죽하면 진시황제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고 천하통일을 감행했을까요. 세상에 곧은 소나무만 있으면 숲이 아름다울까요. 햇볕 따라 모양도 자연스럽습니다.
자~, 그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들어가 볼까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중 최고의 선생님은 당연히 공자孔子이십니다. 사람은 “인仁”해야 한다. 모든 핵심은 ‘인사상’이다. 맹자孟子가 답답하여 한 말씀 하십니다. 그렇게 포괄적으로 인하라고 하면 누가 알아듣습니까? 저처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 “성선설性善說”이라고 꼭 짚어 말씀하셔야죠. 그 본성만 잃지 않으면 저절로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이루어집니다. 듣고 있던 순자荀子께서 무슨 소리!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성악설性惡說”이기에 숟가락을 잡을 때부터 수저를 놓는 순간까지 밥상머리 교육을 합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검은머리 파뿌리가 된 배우자에게도 ‘배우자’를 설파합니다. 유학사상은 쇠해도 교육은 점점 성하니 논어를 배우는 까닭입니다.
노자老子는 어머니 뱃속에서 80년이나 있다가 나와서 노자라고 한다네요.
본래 성은 이李입니다. 존경하는 의미에서 노老라고 한다죠. “절학무우絶學無憂”를 말합니다. “응”하면 어떻고 “예”하면 어떤가. 대답만 하면 되지. 괜히 배워 머리가 아프다. “배움을 끊으면 근심걱정이 없다.” “냅둬라!” 가만 놔두면 사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죠. 노자의 제자 장자莊子가 선생님 그렇게 책임감 없게 말씀하시면 어찌합니까? 이왕 왔다 가는 인생,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소요유逍遙遊”를 누려야죠. 웰빙으로 살다가 아내가 죽더라도 고통을 안으로 삭히며 “고분지가鼓盆之歌” 노래하다가 웰다잉해야죠. 인생은 소풍처럼 왔다가 가는 “호접몽胡蝶夢” 한바탕 꿈인 것을. 내 남편도 내가 먼저 가더라도 장자처럼 꽃과 꽃 사이를 넘나드는 나비되어 춤추고 노래하다 제 곁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들은 신선노름을 하시는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없어서 못 먹지 유별스럽게 신토불이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가려서 먹습니까? “이것저것 다 묵자!”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는 묵자墨子는 아무래도 정 많은 경상도 사나이인 것 같습니다. 정말 내 아내만 내 남편만 멋진가. 맞아, 어찌 별 다방만 가냐. 천사다방도 가고, 톰 아저씨도 돌보고 백다방도 가야지. 이제 거리제한의 상도덕도 어깁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법대로” 하라고 한비자韓非子가 ‘법가사상法家思想’을 들고 나오네요. “하이고~, 법대로 해봐라” 잔챙이들만 다 걸리지 굵직한 사대부들은 진작 다 법망을 벗어났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가 뚜껑이 안 열리느냐”고. 열자列子가 열을 받으셨네요. 열 받아 ‘화르르’ 끓어 넘치니 냄비가 다 비워졌죠. ‘허심사상虛心思想’입니다. 마음을 비운 열자는 실제로 하늘로 올라가 신선神仙이 되어 보름씩 날아다녔답니다. 건더기는 어찌되었느냐고요. 부뚜막 밑으로 떨어져 찌꺼기들끼리 “얍, 얏” 기합을 넣어 싸운답니다. 저 밑에 손자孫子벌도 안 되는 놈들이 평화를 구실삼아 핵무기니 백색국가니 ‘손자병법孫子兵法’을 내세우며 무기武器를 팔아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제자백가諸子百家’ 또는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 서로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니 ‘제자쟁명諸子爭鳴’이라고도 합니다. 일단 ‘자’자가 들어가는 분들은 어떤 사상에 일가를 이룬 큰 스승을 말합니다. “자왈”은 모두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다른 스승들은 앞에 다 성을 붙입니다. 그럼 제자백가는 “어느 나라 사람들?” 예, 맞습니다. 맞고요. 중국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없느냐고요. 송시열선생을 송자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요. 그러나 확실한 한 분도 계셨습니다. 헌정사상 청와대 안에 기억하시죠? 이순‘자’여사님 영부인이셨습니다. 지금도 국회에서 삿대질하고 단상에 뛰어오르고 통과망치를 빼앗는 장면을 가끔 봅니다. 아직 국회의사당은 “춘추전국시대”라고 하잖아요. 춘추전국시대가 있어야 다름과 차이의 관용을 배웁니다. 국정을 돌보시는 분들 정말 수고가 많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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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언제 읽어야 하나?
정해진 때가 없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평생 …, 그래요.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 공자님은 70세가 되어서야 생각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不踰矩〕고 했습니다. 73세에 돌아가셨으니 평생과업이었죠. 춘추전국시대의 70이란 아마 지금의 120세 이상은 될 것입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병든 날, 슬픈 날, 외로운 날의 감흥이 다 다릅니다.
기쁜 날, 즐거운 날, 화창한 날은 왜 뺐느냐고요? 이런 날은 혼자 놀거나 차를 마십니다. 제가 논어를 자주 즐겨 읽는 것으로 보아 외롭고 우울한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40대에 전혀 짐작도 못했던 내용이 50에는 ‘이거였구나!’ 싶은데, 60에 보니 참뜻을 놓쳤습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라 생각주머니입니다. 노인 한 명이 돌아가시면 왜, 마을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렸다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입니다. 힘들 때마다 내가 이분이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생각해봅니다. 결론은 하나 ‘이 또 한 지 나 가 리 라’ 묵묵히 감내하고 머금어 삼켜야 합니다.
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더라도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군자역’이 종착지입니다. 이 군자라는 고귀한 이상향을 닮고 싶어 날마다 하는 일마다 신독愼獨을 합니다. 저는 언제 논어문구에서 자유로워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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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벗을 보면 그를 알 수 있다.”
공자와 같이 동행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당시 공자 문하에 열 명의 철학자와 72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함께 주유열국을 했던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문하의 열 명의 철학자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冉有 계로季路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있었지요. 효경으로 유명한 증자가 없네요. 당나라 현종 때 덕행 언어 정사 문학 사과四科로 나눈 인물들이니, 그때의 정치상황에서 세속의 물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분들이 정말, 정치 문학 언변에 달통했던 분들일까요.
공자는 어떤 사람?
문보다는 무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은 성질 급한 자로를 비롯하여 집도 절도 없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낮에는 글을 읽으며 토론하고 밤에는 공동묘지를 파내어 도굴하는 형편없는 생계형 제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도 공자와 함께 생활하면,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즉, 나라는 나라답게, 국민은 국민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부부는 부부답게 유학사상의 기본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차례와 질서를 지키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절이라 하기도 하고 도덕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군자라고도 하죠. 바로 ‘〜답다’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 반음 올리고
유학의 기본을 배우는 곳을 명륜당明倫堂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계신 곳을 대웅전이라 하듯, 공자님 위패를 모시는 곳은 대성전大成殿이라 합니다. 종묘에서 종묘제례宗廟祭禮를 지내듯, 문묘에서 해마다 공자의 문묘제례文廟祭禮와 제례악을 연주합니다. 서울 명륜동에 가면 명륜당이 있습니다. 대성전 앞에는 선비의 상징인 은행나무가 있고요. 심은 지 600년이 되었기에 성균관 대학의 강당 이름이 ‘600주년 기념관’입니다. 이곳은 나라를 짊어질 선비들을 가르쳤던 곳 태학입니다.
하나의 나라가 존속하려면 국민도 중요하지만 우선 땅이 있어야 합니다.
“독도는 우리 땅” 땅이 있어야 백성들이 먹고 살 곡식을 생산하죠. 그리하여 땅과 곡식을 의미하는 사직社稷이 있습니다. 사직단이죠. 우수개소리로 우리나라 사직단은 강남구라고 하더군요.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라나요. 알아듣기 쉬운 비유이기는 하지만, 땅값하고는 무관합니다. 윤리와 도덕입니다. 부산 대구 대전 전주 강릉에도 명륜당과 사직단이 있고, 곳곳마다 명륜동 사직동이 있습니다. 방방곡곡에 공자를 모신 사당이 있다는 뜻입니다. 명륜당은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곳입니다.
도, 𝄆 도돌이표
논어에서 말하는 인仁사상은 뭘까요?
인륜의 시작은 두 사람입니다. 부부로부터 시작하여 국민을 낳고 나라를 이룹니다. 이때 서恕가 중요한데 바로 ‘내 마음과 같은’ 배려입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습니다. 여러 곳에서 논어를 완독하고 난 다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꼽으라면 이문장이 으뜸입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 대통령이 숙제를 다른 친구에게 시켜서 쫓겨났대요.” 담임선생님께 일렀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높아도, 아무리 작고 어려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밥을 먹는 한 ‘밥값’은 하고 살아야 사람입니다.
그럼 양지양능良知良能하고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성인들은 정말 본래부터 능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분들일까요.
그분들은 옛것을 인정하고 부지런히 배우기를 좋아하는〔溫故而知新〕분들입니다. 정해진 스승이 따로 없어도 모르는 것을 묻고 대답하여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논어를 읽는 것은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호학好學’의 시작입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배우다 가기 때문에 ‘학생부군 신위’로 삶을 완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님은 2천5백 년 전의 고리타분한 영감님일까요?
살아가는 곳곳에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나의 친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어느 잡지에 ‘논어야 놀자’라는 코너를 맡아 연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원로 선생님께서 “류 선생, 공자님은 성인이셔. 류 선생이 함부로 놀 상대는 아니다”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한 동안, 의기소침하였습니다. 제 주제파악을 하려고 연재하던 코너를 내려놓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많이 소심합니다. 공자 왈 맹자왈 사서삼경 속에 넣어 박제된 박물관 고문헌 속에 있다면, 성현들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어떻게 알까요. “내 밭을 내가 갈아먹고, 내 우물을 내가 파서 먹는” 경전착정耕田鑿井의 시민들에게 가까이 할 기회가 있기나 할까요. 학문學問으로 접근하려면 대학 강단이나 더 높은 기관에서 전수받아야겠죠.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열심히만 하면 기회가 균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제도권 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논어 속의 공자님 말씀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나 특정 고위층의 전유물이 아닐 것입니다. 내 처지에 맞춰 내 언어로 이야기하는 ‘근사近思’ 곧 내 마음과 몸에 체화된 일상적인 이야기가 논어의 문구일 것입니다. 논어는 결코 일상생활을 뛰어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살아계시더라도 맞다고 제 편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인문학자만 공부해야 할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올곧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자체가 인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논어를 강독하는 분들은, 고매한 공자보다 따뜻하고 친근하고 만만한 성인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아~, 공자님도 사람이었네.” 혹은 논어가 어려운 것인 줄 알았는데 “재미있네.” “쉽네.” 제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칭찬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15분 단위로 시시각각 설사처럼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웃음은 결코 가볍고 보잘 것 없는 우스꽝이 아닙니다. 웃음 끝에 눈자위 붉어지는 우리네 삶입니다. 문헌 속에 공자님이 강의실 칠판에 떡하니 나타나셔서 함께 울고 웃고 하십니다. 저는 여러분께 이 문장이 여기 있다고 안내하는 교량이거나 견인차의 멍에 역할입니다.
논어란 온도입니다.
외우고 시험보고 평가하는 과목이 아니라 마음의 지혜라고 여깁니다. 따뜻한 밥처럼 한 말씀 한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맛있고 소박합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퍼주는 주걱수다, 하지만 마구 떠드는 수다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지지고 볶아 진수와 성찬을 차리는 미각적인 수다秀多이고 싶습니다. 아무리 크고 고귀한 말씀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어렵게 애써 읽은들 활자일 뿐이죠.
인자仁者의 눈에는 어진사람만 보이고, 지자知者의 눈에는 지혜만 보이고 투자하는 사람의 눈에는 돈만 보이고, 개 눈에는, 뭐라고요? 예, 맞습니다. 주인만 보인답니다. 제가 읽는 논어가 그렇습니다. 짱구공자, 키다리 공자, 재즈 공자, 종합예술인 공자 등등. 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는 늘 꽃밭이 펼쳐지겠죠. 저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나온, 견뎌온, 세월의 태가 훗날, 곱기를 희망합니다.
앙코르
어때요?
내용이 지극히 사적이라 이래도 되는가, 당황하셨죠?
논어에 대한 안내를 너무 격 없게 이야기해서요. 다른 논어 해설서를 보면 논어의 큰 이름답게 엄청 어렵잖아요. 읽을 때 정신 차리고 집중해도 읽다보면 ‘아~ 역시 논어는 어려워’ 이래서 내가 논어는 안 읽는다니까.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하죠.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렇죠. 철학이 어찌 숫자처럼 명쾌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오장육부 비위간장이 다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어렵게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논어를 읽는 분들은 논어를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왜냐? 공자님을 이웃집 아저씨나 할아버지처럼 여기니까요. 제게 공자님은 어릴 때부터 지켜본 하늘 산 들 시냇물 마을의 정자나무처럼 자연의 풍경이죠. 그게 바로 공자님이 바라는 배경이 아닐까요.
공자께서는 ‘흥어시 입어예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이라고 했습니다.
논어는 혼자서 도 닦는 성찰의 종교가 아닙니다. 홀로 아리랑은 자칫 독선이 되기 쉽죠. 함께 소리 내어 읽고 강독하고 토론하고 공감하는 ‘함께 아리랑’으로 완성하는 하모니, 즉 조화로움입니다. 그리하여 팔음계로 나눠봤습니다. 실제로 수업에서 모두다 악보나 가사 없이 부를 수 있는 즉흥곡도 한가락씩~♬ 뽑습니다. 논어본문은 예禮요, 노래는 악樂입니다. 예 & 악이 어우러지는 문화, 류창희의 ‘논어에세이’입니다.
왜 이렇게 실전 강의록을 글로 발표하느냐고요?
저에게는 아들 두 놈이 있습니다. 한문 같은 것은 딱 질색하죠. 어미가 논어강사라고, 일곱 여덟 군데를 요일마다 뛰는데 20년 동안 변함이 없으니 궁금하잖아요. 재테크 강사도 아닌데요.
어느 날, 엄마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무엇 때문에 그 골 아픈 공부를 해요?”
형벌을 받는 별종의 집단을 보는 듯 묻더군요. “재미있으니까” 당연히 믿지 않죠. 자기들은 논어는 한 줄도 읽기 싫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공자가 어떤 사람인가 ‘까도남’ ‘앙드레공’ ‘공셰프’ 말하자면 너희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합예술인” 뭐 이런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예를 들어 이야기했어요. “아 그 정도면 우리또래도 논어를 읽겠어요.” 그런데 왜 대학 강의실에서나 다른 책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느냐고요. 그래야 “폼 나니깐” 그 폼이라는 것이 특권층의 권위가 아니겠느냐고. 공자를 위대한 성인이라고 하면서, 범접할 수 없도록 공자를 박제화하고 틀에 가둡니다. 멀리서만 ‘바라 봐’ 질문도 하지 말라며, 유리관에 보존하려고 하죠. 차이 나는 클래스는 어려울수록 지식을 독점할 수 있잖아. 말하자면 “농단壟斷, 엘리트 카르텔이지” 너희도 고품격으로 “고급스러운 명품 좋아하잖아” 학위는 그렇게 따고, 엄마는 일상생활을 실천하는 일반시민들의 평생교육이잖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노닒은 자유롭고 즐겁게!”라고 ‘썰전’을 폈습니다. “엄마, 그럼 엄마도 논어를 그렇게 써요.” 우리 같은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아마, 그럼 바로 쫓겨날걸. 감히 공자님에 대하여 품위 없이 지껄인다고.
아들의 말에 힘입어 제 강의 버전으로 썼습니다.
고전은 오늘 함께 소통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녀 노유 직업 학벌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배운 것을 실천하여 몸에 배이게 합니다. 설령 그 앎이 지극히 높고 깊다 한들, 나와 무관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논어는 생활자체입니다. 일상을 뛰어넘는 철학은 학설일 뿐이죠.
오늘을 개강 날이니, 다음 주부터는 샅샅이 한 문장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여러분과 더듬어 탐구할 것입니다.
사족
‘숙제’가 있습니다. 다음 배울 문장을 한 칸에 한 글자씩 칸 지른 한문노트에 써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엇으로 쓰나요?” “연필” 맞습니다. 나의 잘못됨을 지울 수 있으니까요. 4B연필로 사각사각 무디게 살아온 세월을 깎습니다. 연필 깎는 자체가 수신입니다. 더러 확신이 뚜렷하여 자신의 사랑을 지우지 않는 분들이 있죠. 그동안 살면서 펜에 달개비꽃잎 빛깔의 푸른 잉크로 연애편지 정도는 수없이 쓰셨겠죠. 혹 어떤 분은 편리한 붓 펜도 마다하고, 먹을 갈아 세필하는 묵향 짙은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일부종사 일편단심 수절족입니다. 사별하여도 재혼 따위는 절대 안하겠죠. 선禪의 경지입니다. 이립이나 불혹의 세대들은 역시 신세대답게 알록달록 현광 펜이나 포스트잇이 선명한 헤르메스스카프 빛깔입니다. 좀 화사하죠? 문구용품은 취향 아닌가요. 누가 뭐라 해도 나답게 사는 ‘나나랜더’들의 반짝이는 개성입니다.
그래서 숙제 검사는 언제 하느냐고요?
개강 날 안내만 하고, 아직 한 번도 검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숙제를 하겠느냐고요? 저도 그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수업시간 전에 강의실에 와서 열심히 필기하는데, 혹시 “선생님이 때리느냐?”고 담당직원이 물었다는군요. 저는 20년 동안, 검사는커녕, 노트에 눈길 한번 준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 수업은 유년의 뜰, 그리운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고향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시절의 제가 그립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강의 노트도 꼭 그러했습니다.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메타> <내배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