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히리오
몽견주공(夢見周公)
꿈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자, 가라사대.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가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 술이편)
공자는 늘 주공(周公)을 그리워하며 섬긴다. 주공은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아우이다. 공자가 원하는 것은 나라나 명예가 아니었으니, 최고의 통치권자가 되는 흥망성쇠를 꿈꾸지 않는다. 성군을 도와 인정(仁政)과 도덕정치의 이상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당시 꿈의 정치를 원하는 공자를 사람들은 비웃었다. 공자는 힘든 생활에 지칠 때마다 주공과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꿈속에 시어머니가 자주 나타나셨다. 연탄불이 꺼져 번개탄을 찾아다니거나, 모시 두루마기의 풀을 너무 세게 먹여서 천이 꺾이거나 부서지는 꿈을 꿨다. 불 앞에 서지 아니하면 물 앞에 서서 절절매면 반드시 근엄한 표정의 어머님이 서 계셨다.
요즘의 나는 통이 커졌다. 꿈속에 오바마를 만나거나 현직 대통령을 만나 1대1 면담을 한다. 평화나 국정을 논했는지, 자질구레한 일상을 말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없다. 확실한 건 요즘은 꿈속에서 안절부절 진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늘 당당하게 악수를 하거나 대등하게 마주 앉아 있다.
어려서는 도깨비가 쫓아오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공중에 매달리는 꿈을 꿨다. 키가 자라는 성장의 꿈이다. 새댁 때는 생산적인 태몽을 두 번이나 꿨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돼지꿈도 용꿈도 좋아했다. 조석으로 어른들 진짓상을 수발하던 시절에는 마음이 불안하고 피곤하여 가위눌리는 악몽에 시달려 수면제로 꿈을 막기도 했다.
나는 간혹 머리맡에 수첩을 놓고 잔다. 꿈을 받아 적기 위해서다.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더듬거리며 연필로 뭐라고 적기는 적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불개미떼가 지나갔는지 희미하게 줄만 몇 개 그어져 있다. 어느 때는 단어 하나도 옮겨적지 못해 안타까워하다 깨면 메모지에 적던 일조차 꿈속의 행위였다. 일상에서 건져 올리지 못하는 건조한 감성을 오매불망 달콤한 꿈에 매달리고 있다.
삶에 풀기가 빠졌다. 자신을 곧추세우는 마음가짐이 중심을 잃었다. 꿈속에서 나를 혹독하게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을 한 분쯤 모셔야 한다. 잿물 내고, 푸새하고, 널고, 펴고, 잡아당기며 다듬잇돌에 방망이질할 일 없이 건성으로 사니, 드럼세탁기 속 건조의 기능과 같이 온기만 피우다 쭈글쭈글해지는 인스턴트 생활이다.
<논어, 에세이> 반에 은하 엄마라는 여인이 있다. 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산다. 평상시 짧은 파마머리는 새 둥지처럼 부스스하고 보푸라기가 맺힌 스웨터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온다. 도대체 생활이 ‘무성의’ 족이다. 그러나 방학을 하면 미장원에서 금세 나온 듯 물찬 제비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하고 똑똑 구두 소리를 내며 강의실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대학 다니는 딸이 집에 왔기 때문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은하 엄마의 이야기다. 시골에서 자란 은하 엄마의 어머니는 늘 밭에서 일했다. ‘몸뻬’라는 일복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쓰고 호미 든 어머니 모습만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가끔 꿈속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저승에서도 밭을 매는지 헐렁한 바지에 머릿수건을 쓰고 호미를 든 모습으로 나타나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살아생전 못 입고 못 먹고 고생했으면 저승에서는 비단옷 입고 양산 쓰고 꽃밭에서 노닐 일이지….” 꿈에서 어머니를 뵈면 몇 날 며칠을 마음이 아파 혼자 운다고 했다. 그래서 딸 은하에게 꿈속의 ‘엄마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 또 멋 내고 어디 놀러 가시네!” 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딸 아이 앞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차리고 나온다는 말이다.
꿈속의 캐릭터, 나는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훗날 가족이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트레이닝 복장으로 앞치마 입은 모습일까. 어두운 밤, 뒷베란다에 기대서서 서운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일까. 어쩌면 식탁에 앉아 끊임없이 잔소리나 하는 아내나 어미일 수도 있다. 창가의 제라늄 꽃을 바라보며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을 읽고 쓰는 작가의 이미지라면 좋겠다.
정신과에서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가장 편안한 몸의 상태라고 한다. 어찌 공자처럼 꿈속에서 주공을 기다릴까. 하지만 삶에 대한 열정이 쇠하여 아예 꿈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사람은 되기 싫다.
나에게 주공은 누굴까.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지 않던가. 오늘도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메모지와 연필을 머리맡에 두고 나만의 ‘주공’을 기다린다.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 <<논어 에세이 빈빈>> 2015
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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