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에세이, 빈빈

아~, 아름다운 세상

류창희 2017. 2. 20. 12:17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나는 비상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우 ‘빙호’가 자신에게 비문증이 있다고 했다. 비문증(飛蚊症), '비문증'이 뭐냐고 물으니 눈앞에 나비가 날아다닌다고 했다. 순간, 나는 노랑 배추꽃 연보랏빛 무꽃을 떠올렸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문증 정도의 근사한 병명 하나 지녀도 괜찮을성싶었다. 은근히 병명에 매료되어 비문증을 동경까지 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스무 살 무렵, 눈을 지그시 감고 이 노래를 부르면 어른들이 나무라곤 했었다. 그때는 서른 살이 되는 것도 아주 멀리 있는 줄 알았다. 

 


공자, 가라사대. 시냇가에 계실 때,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 자한편)

 


 

세월이 간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도 흐르던 물이 지난해에도 흐르고 올해도 흐른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른다. 물은 그 물인데 물가에 앉은 사람만 바뀔 뿐, 변함없는 것은 온 것은 반드시 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자님은 물을 바라보며 자기 성찰을 하는 데에 제자들에게 털끝만치도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이다. 어쩌면 주유열국의 길 위에서 갈 길은 멀고 마음이 조급한 자신의 신세 한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른의 깊은 품을 내 어찌 들여다볼까.

 

처음에는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한두 마리가 더 어울려 다닌다. 파리인가. 모기인가. 보지 않으려고 반나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보인다. 마치 떠나간 '첫사랑'처럼 눈을 마주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가혹한 만남이다. 내 의지대로는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이 인연은 대체 무엇인가. 친해지려고 다가가면 소리 없이 내뺐다가 다시 성가시게 아른거린다.

 

‘비문’ 이놈은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날마다 내 눈앞에서 나폴거리며 날아다닌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오늘은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날아온 날이 있으니, 분명히 날아갈 날도 있을 것이다. 플래시 불빛처럼 번쩍이는 섬광증 보다는 속도감이 견딜만하다. 이왕 내 눈앞에 등극하였으니 ‘비문 마마님’ 이란 귀한 첩지 하나 내려준다. 윗방에 모시고 수렴청정하며 살겠노라고 아양을 부린다.

 

마마님을 모시고 안과의사 현석씨에게 가니, 병명 처방을 ‘매화 꽃잎‘이라고 한다. 이른 봄,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이란다. 그 이름 또한 근사하지 않은가. 내 눈 안에서 금세 '설중매' 꽃잎이 화르르화르르 피어나고 있다. 나는 드디어 비상을 꿈꾸게 된 것이다.

 

아~ 아름다운 세상, 세월의 강에 꽃잎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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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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