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에세이, 빈빈

으악새 슬피운다

류창희 2017. 2. 20. 12:17

조지장사(鳥之將死)



“새가 죽으려 하면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으려 하면 그 말이 착해지느니라.”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 태백편)

 


시냇가에서 우는 물수리 새여! 예나 지금이나 짝짓기소리는 애절하다.

 

옛날 윗마을에 배고픈 며느리가 있었다. 먹을 것이 오죽이나 귀했으면 나무 이름에 이팝나무 조팝나무가 있을까. 진달래꽃으로 시름을 달래고 아카시아 꽃을 훑어 꽃밥을 해먹던 시절이다. 궁색한 눌은밥도 숭늉도 아까워 솥까지 빼앗긴 며느리는 굶어 죽었다. 며느리는 죽어서도 배곯은 설움을 토해낸다. 밤마다 마을 어귀에 나타나 부엌 쪽을 바라보며 “솥줘, 솥줘”울었다. 그 후, 사람들은 새 이름을 ‘소쩍새’로 불렀다. 소쩍새가 울 때마다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피어난다 하여 일명 ‘두견새’라고도 한다.

 

아랫마을 초가 단칸방에 아들 내외와 홀시어머니가 살았다. 새댁이 서방님을 기다리며 점심을 준비한다. 새벽부터 나무하러 간 낭군님은 낫을 잊고 나간 척, 낫을 찾으러 들어오고, 그 틈새를 놓칠세라 밭에 나간 시어머니는 부지런히 호미를 찾으러 뒤따라 들어온다. 새신랑은 바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한 마음에 늘 새댁의 옷고름은 풀지도 못한 채 속곳부터 벗기려 했다. 바쁜 마음에 덩달아 숨을 참아 들이마시다가 함께 내 품지 못해 새댁이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은 새댁은 대낮이면 시어머니가 일하는 밭두둑에 찾아와 “벗고, 벗고” 옷을 벗고 나누지 못한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설움을 토해내어 ‘뻐꾹 뻐꾹’ 뻐꾸기가 되었다. 뻐꾸기가 울고 간 자리에는 한 맺힌 핏빛 엉겅퀴꽃이 피었다. 엉겅퀴꽃 이름을 ‘뻐꾹채’라고 부른다. 

 

논두렁 밭두렁에 피어나는 꽃과 꽃 사이에서 우는 새는 사연도 많다. 새의 애절한 울음소리는 평생 참고 살았던 한(恨)풀이 가락일 것이다.

어찌 사람을 새에 견줄까마는,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생 이루지 못한 염원을 말한다. 욕심을 내려놓는다. 무조건 이겨라. 살아생전 돈을 갈퀴로 끌어모아 큰 부자 되라고 유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화투 점에서 ‘이월매조’가 떨어지는 저녁에는 언제나 비들기가 울었다. 엄마는 조강지처라는 이름으로 임 그리는 여린 여인이었다. “구구 구 구~♪” 새가 울면, “기집 죽구~ 자식 죽구~ 헌누데기 이만 꿰구~” 곡을 한다며 새가 가엾다고 했다. 아마도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가정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새의 울음소리는 다 자기 처지에 견주어 들리는 것 같다. 여북하면 가을바람 앞에 흔들리는 억새 풀도 ‘으악새’ 슬피 운다고 했을까.

 

나는 새소리를 들으면, 참새방앗간도 지나가고 싶고, 까치가 전해주는 기쁜 소식도 듣고 싶고, 종달새처럼 아침 노래도 부르고 싶다.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나풀거리는 시폰 원피스도 입고 싶고, 물찬 제비 같은 자동차도 한 대 뽑고 싶다.

 

나는 아직,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죽을 때가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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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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