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인부지불온(人不知不慍)
사하도서관 논어 강독
2004년 3월 시작,
2008년 12월 5일 금요일 완독 일기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에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2천5백 년 전의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논어》를 한 글자 한 문장도 안 빠뜨리고 샅샅이 이 잡듯 다 파헤쳐 강독하고 완독을 한다는 것. 물론, 다른 기관에서 몇 번 완독을 한 경험이 있지만, 매번, 매번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하고 터질 것 같이 벅찬 일이랍니다. 강의하는 나는 진도를 나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계속한 일이지만 지속해서 함께 논어를 읽으신 학우님들, 전 그분들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집에서 한 시간 넘어 도서관으로 가는 길, 하늘은 온통 회색빛으로 무거웠죠. 여우가 시집을 가고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지…, 노란 은행잎이 휘날리는 모습, 더구나 하얀 눈꽃 송이가 분분하더라고요. 일찍이 설중매만 보았지, 대티 터널 안까지 재빠르게 따라 들어오는 황금빛 나비행렬이 클림트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누구에게인가 은행잎 닮은 문자를 휙휙 날리고 싶더라고요.
강의실에 들어가 마음을 추스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창밖을 힐끔거리며 수업을 하는데요. 만 4년 걸려 논어의 마지막 구절 ‘堯曰’ 문장을 함께 읊는 순간,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감흥이 있더라고요. 그동안 수업을 같이하셨던 임들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깊은, 속 깊은 숨 고름을 하였지요. ‘쳐다보기도 아까운 사람들’ 혹, 이런 제 마음을 짐작하실는지요. 수업이 끝나고 한 분 한 분 나가고 나서, 나는 혼자 빈 교실에서 책상 하나하나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더듬어 보았습니다. 강의실 창가로 겨울 햇살조각이 따뜻했습니다. 임들의 온기를 느끼며 벅차오르는 감성으로 홀. 로. 눈. 물. 지. 웠. 더. 이. 다.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일기 <사하도서관>
그러고 보니 13일에 금요일이었네요. 탁자 위에 빨간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스승의 날 행사를 미리 당겨 한다고 강의실 안이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그 어디에 스승이 있습니까?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꽃바구니 받은 것 자랑하느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좋았느냐고요? 좋았지요. 괜찮으냐고요? 당연히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날, 다정(多情)님의 부군께서 오셨어요. 다정님은 몇 년간 도서관강의실에서 논어를 함께 읽었던 분입니다. 몇 년 전에는 <논어반> 대표를 맡아 공부하는 학우들을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한자 사범 1급 자격을 따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시기도 했습니다. 투병 중에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오셨습니다. 지난 가을학기 종강 날은 봄학기에도 또다시 밥을 사고 싶다고 하며 밥도 샀습니다.
어느 오십 대의 남자분이 바리바리 짐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하십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다정님의 부군이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스승의 날 인사를 하러 오셨지요. 생전에 손수 써서 만들어 놓은 한자 급수교재 두 권과 저에게 전해주라는 가방과 한지 부채에 고운 궁체로 ‘손톱달’이라는 시를 붓 글로 적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전산책반> 모든 분에게 떡과 음료수까지 준비하셨습니다. 봄학기에 밥을 낼 거라 하시더니, 밥 대신 부음의 향촉(香燭) 내음 배인 떡입니다.
사실 제 강의는 그 순간, 종강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더 어떤 구절 어떤 문구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무엇을 더 명심하고 살라고 명심보감 강의를 할까요. 더 무슨 처세를 익힐 거라고 논어를 읽을까요? 그 자리에서 그 시간을 함께 했던 고전산책반의 풍속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의 부군께서 제게 유품이 든 가방을 건네실 때, 혹시 제 눈빛을 보셨는지요. 그분이 먼저 눈물을 비추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죠. 저는 망연히 건조하게 바라봤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제가 울었다면 우리 반 분위기도 저도 순간, 무너졌을 것입니다. 가고 없는 저 세상 사람도 넋이라도 찾아오는 <고전산책>반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헤어짐이 있죠. 천분질서(天分秩序)는 하늘이 나눠준 질서입니다. 부부의 연(緣)도 부모·자식 간의 연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처럼 배우는 것이 좋아 모인, 한 학기 삼 개월짜리 학연이 무슨 심지가 있겠습니까. 부평초처럼 강사 따라 책 싸들고 쫓아다니는 보따리 인연입니다.
《명심보감》 2번, 《소학》 2권, 《논어》 20권을 완독하고 다시 《명심보감》을 읽고 있습니다. 벌써 사하도서관 15년 차 연식입니다. 사실 자동차로 치더라도 폐차시킬 때도 되기는 했죠. 어디 저뿐인가요. 역대 대표를 맡으셨던 도영씨도 은수씨도 여송선생님도 현재 대표를 맡은 상연씨도 다 막강하시죠. 만약에 오늘 같은 수업장면을 방송관계자가 보았다면 아마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 3일> 정도는 찍자고 했을 거예요.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하신 임들, 말 그대로 고전이 좋아 고전을 산책하는 풍류객들이십니다.
논어 20권을 마친 가을, 제가 사는 이기대 바닷가를 산책한 후, 우리 집에 와서 과일과 와인으로 건배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국화차로 마무리했죠. 을숙도문화회관에 가서 우리 반 학우들이 낸 한문노트를 감상하던 시간, 순두부 백반을 먹으며 2부 수업으로 교과서 밖의 풍류를 논하며 마셨던 조 껍데기 막걸리 맛. 시 낭송에 참여하여 읊던 한시 <애련설> <어부사> <추성부> <귀거래사>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논어》 한 권이 끝날 때마다 책거리 떡을 해 먹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사하도서관에서 한문 강의가 없어지는 것은 저에게 또 다른 일을 시작하라는 예시일 겁니다. 항상 삶이 그렇더라고요. 하나가 지나가면, 또 새로운 하나가 주어지고 그렇게 세월을 더하며 점점 성숙하는가 봅니다. 논어강의 첫날, 학이편 첫 문장이 생각납니다. 사실 첫 문장에는 항상 끝이 들어있습니다.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해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학이편)
저는 도서관에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나고 좋은 고전의 말씀 많이 전하고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주어진 시간마다 온 힘을 다했습니다. 논어를 전달하며 박수와 반응에 내심 기뻤고, 몇 년이 지나도 환한 웃음으로 다시 찾아오시는 분들과 즐거웠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시절, 불혹의 나이와 지명의 화양연화를 사하도서관에서 누렸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헤어짐이더라도 서운한 마음을 접겠습니다. 군자(君子)가 되도록 수양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이 계셨던 덕분입니다. 계절이 제 나이와 딱 알맞은 오월이라 더 아름다운 헤어짐을 갖습니다. 제 특기가 예쁜 척, 폼 잡는 여자인 것 아시죠. 떠나는 뒷모습도 아름다워지고 싶습니다. 놓아주실 거죠?
* 봄학기 종강 날, 도서관 사정으로 가을학기 강좌가 폐강된다는 통보를 받고 썼던 글입니다. 그러나 사하도서관의 고전산책반 학우님들께서 도서관 사이트에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다시 ‘부활’하여 2014년 가을 현재 《논어》 향당편을 읽고 있습니다. 그날 마지막 수업, 13일의 금요일 날에 전하지 못한 글입니다.
<<논어 에세이, 빈빈>>
류창희
http://rchess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