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창희 2017. 2. 20. 12:11

이단 야이 (異端 也已)



친구들이 있다. 처음 직장 초년생들 시절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 모임이다. 돈은 쌓여가고, 각자의 사정을 고려하다 보니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여행도 날짜 맞추기가 힘들다. 그동안 목돈을 두 번 나눠 가졌다. 돈을 모으려고 계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목적은 여행이다. 

 

아버님은 내가 시집왔을 때, 해마다 서너 번씩 여행을 다니셨다. 아들 친구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여행은 그렇게 돈 모아서 가는 것이 아니다. 대출받아 다녀와서 갚는 거다.” 조언을 해주셨다.

 

왕년에 아버님은 로터리클럽, 서로 산악회, 대동계, 참전용사회 등등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임이 있었다. 모임회원이 몇십 명씩이고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셨다. 세계 곳곳 먼나라 이웃나라 가벼운 발걸음, 자동차, 비행기, 종횡무진으로 활동하셨다. 때론 2세 모임, 3세 모임이라 하여 아들 손자며느리까지 따라가는 모임도 있었다. 

 

올해 아버님의 연세는 구순이시다. 여행이 어렵다. 그 많던 친구분들이 얼추 거의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어머님도 먼저 가셨다. 매주 월요일은 아버님과 식사하는 날이다. 낮에 고기 종류를 드셨으면 저녁은 가벼운 것으로 하고, 가벼운 걸 드셨으면 저녁에 조금 낫게 대접한다. 오늘 낮에는 곗날이라 장어구이를 드셨다고 한다. 달포 전쯤에도 계를 하셨는데 오늘 또 하셨느냐고 여쭤봤다.

 

낮에 모였던 모임의 회장은 아버님이고 친구분은 총무이시다. 몇십 명씩 되던 회원 중에 단 두 분이 달마다 정기적으로 만나신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만나기로 하셨다며, “그래도 이제 몇 번 안 남은 기라.” 정해진 날짜에 나가봐서 “안 나오면 그뿐이라.”고 하신다.

아버님 말씀처럼 어느 자식이 살뜰하게 아버님 친구분에게 부고(訃告)를 내겠는가. 아니, 부음을 알릴 친구라도 그때까지 생존해 계시면 그것도 복이다. 더구나 본래 친구의 부고는 내지 않고 친구의 문상도 하지 않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아버님의 모임장소는 장어구이 집이다. 전에는 아버님 친구분이 하시던 장어집을 며느리가 전수받아 하신단다. 아버님이 왕성하던 시절에는 고정적으로 다달이 모였으나 그분들이 한분 두분 돌아가셨으니 손님이 없다고 하셨다. 당연히 식당도 문을 닫아야 하지만, 두 어른이 곗날이라고 꼭꼭 찾으시니 어쩌랴. 예약하는 손님이 있을 때만 연다고 한다. 지금 그 며느님도 내놓으라 하는 자산가다. 두 분이 가셔서 장어구이를 잡숫고 나서 부산의 새로운 명소를 방문하신다. 새로 건설한 남항대교도 다녀오시고, 장소를 옮겨 새로 지은 해운대역을 다녀오신다. 우리 대소가 가족 중에 새로운 곳을 아버님이 가장 먼저 지신밟기를 하신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다. 색연필 한 다스처럼 저마다 빛깔이 달라 더 알록달록하다. 부부동반이기에 다 모이면 24명이다. 분기별로 만나 여행도 하고 경조사도 들여다본다. 그전의 아버님처럼 가장 활발한 시기다. 자녀들 혼사가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다. 친구들의 구성원이 비교적 참하다. 이순(耳順)이 코앞이지만, 아직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갈라선 부부도, 너 없이는 못 살겠다고 재혼한 부부도 없다. 외기러기 없이 성격이 둥글둥글 모두 원만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누군가 탈퇴의사를 밝히면서 냉큼 회비를 정산했다. 그러니 또 한 친구가 나도 나가겠다고 나선다. 문제는 대내외적으로 그들이 가장 번듯한 분들이다. 틈은 틈인데, 무슨 틈인지 금세 숭숭 바람이 든다. 몇몇이 그럼, 이참에 나도…, 흔들리고 있다. 준회원격인 내가 봐도 안타깝다. 남자들은 예로부터 지켜온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것이 있다. 삼십 년 지기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우정을 어디다 내려놓았을까.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자는 친구다. 앞으로 삼십 년 후에는 친구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

 

나의 남편은 동기회 초대회장이다. 동기들이 어느 그룹 총수처럼 ‘왕회장’이라고 불러준다. 그날도 주말마다 등산하고 월말마다 식사하는 친구가 폭탄 발언을 했다며 언짢아했다. “여보, 한 명, 두 명, 다 나가도 당신은 자리를 지키세요.” 왕회장은 살아 있는 한 친구들을 싸안고 가야 한다며, 맨 나중에 아무도 없으면 내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지키지도 못할 맹세서약을 했다. 이제 어디 가서 고교동창처럼 편안한 친구를 다시 얻을 수가 있을까. 이 허물 저 허물, 정학, 퇴학의 추억도 자산이다. 우리 아버님처럼 어머님이 먼저 가셔도 결국 친구 둘이 남아 계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다.

 

나는 남편 친구들 ‘밴드 모임’에 들어가 글을 남겼다. 아버님 이야기를 짧게 한 후에 ‘30년 후, 다음 달 나오지 않으면 병들지 않았으면 죽은 거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같이 잘 놀아야 할 이유이다.’라고. “내가 만약 먼저 가고 없더라도 우리 신랑 잘 챙겨주세요.”라는 호소문을 올렸다. 그때, 다른 어느 부인도 내 말에 댓글을 달았다. “우리 남편도 챙겨주세요.” “나도 잘 부탁합니다.” 장난처럼 줄지어 도원결의하였다.

 


공자, 가라사대. “이단을 전공하면 해로울 뿐이니라.”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 위정편) 

 


이단(異端), 이단이라. 생각이 달라 모임에서 나간다고 이단으로까지 분류하는 야박함은 그만큼 서운하다는 말이다. 친구 사이에 더하기 빼기가 왜 필요한가. 영화 《친구》에서 말하듯, “우리는 친구아이가!” 바로 의리다. 서로 다른 마음을 아우르고 함께 할 때 먼 길을 동행할 수 있다. 그렇게 함께 걸어도, 날마다 세월 앞에 인생을 감가상각 당한다. 그러나 그마저 가버리면 또 그뿐이라.


 


 

<<논어에세이, 빈빈>>


류창희 

http:rchess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