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과 고집센놈
광자 견자(狂者 狷者)
아이들은 돌상 앞에서 밥숟가락을 거꾸로 들고 설쳤다. 눈앞에 있는 밥도 제대로 퍼먹지 못할 판이다.
어미의 마음은 누구보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다. 요즘은 아내의 자격도 자식을 잘 키우는 데에서 얻어진다. 어디 여자들뿐인가. 세상에는 ‘갑’과 ‘을’만 존재할 뿐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식은 갑이어야 한다고 남자들도 덩달아 나서는 교육열이다.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약삭빠르지 못하다. 더하기나 빼기가 잘되지 않는다. 셈을 하면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비는 돈을 손에 쥐지 않고 쌀값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선비라서가 아니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돈이 없어도 엿을 바꿔먹을 수 있었다. 떨어진 고무신이나 구멍 난 세숫대야를 갖다 주면 엿장수는 엿을 줬다. 얼마를 내고 얼마를 거슬러 받아야 하는지 계산을 못 해도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서울에서 성장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정서는 여전히 촌스럽다. 말이 후덕하여 ‘순박한 아이’이지, 사실은 네 것, 내 것에 그다지 밝지 못하고 이기고 지는 것의 경쟁을 무서워하는 겁쟁이다.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신이 나게 뛰어노는 개구쟁이 동무들을 바라보다가 한 대 얻어터지면 찔찔 짜는 울보였다.
큰아이가 다섯 살 때 사과 그림을 보고 “애플”하는 순간,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도 받아쓰기를 못 하는 것을 보며 바보인 줄 알았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날마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존경하기 시작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는 산수를 못했다.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것까지가 나의 한계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곱하기, 나누기, 분수까지 풀 줄 알았다.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으니 본의 아니게 가르치는 역할에서 뒤로 물러섰다. 옷 바라지에 밥 바라지밖에 할 수 없는 어미 덕분에 각자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며 제멋대로 자랐다.
공자, 가라사대. “중행의 선비를 얻어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미친 사람이나 고집 센 사람과 더불어 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 進取 狷者 有所不爲也 - 자로편)
미친 사람은(狂者) 지나치게 뜻이 높고 진취적이다. 이들 집단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 고집이 센 사람(狷者)은 단순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억만금을 줘도 하지 않는다. 고집이 세기에 작은 궁리로 나쁜 일을 할 염려는 없다.
우리 집의 큰아이는 미친 듯이 살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니나와 하루 두 끼만 먹어도 오늘의 해가 떠서 마냥 행복해한다. 마늘밭에 비닐하우스도 비무장지대의 원두막도 감당할 위인이다. 요즘 말하는 청년실업 88만 원 세대다. 그래도 당당하게 ‘실패자’라는 타이틀로 테드(TEDx)강의도 한다. ‘괜찮아, 괜찮아’ 미친 듯 질주하는 그놈의 ‘끼’를 나는 대책 없이 믿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재수 좋은 놈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재수 좋은 놈을 이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친놈’이다 자기 일에 미친 사람은 그 누구도 당해낼 수가 없다.
작은 아이는 고집쟁이다. 지금까지도 받아쓰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해볼까 말아볼까 갈등이 없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아이다. 결혼도 단박에 예쁜 영근이와 그렇게 했다. 내가 무언가 궁리가 있어, 엄마는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다고 엄살을 부리면 “하고 싶으세요?” 묻는다 “글쎄,…” 여운을 남기면 바로 “하세요.” 판정을 내린다. “하기 싫으세요?” “글쎄,…” 그럼 “하지 마세요.” 참으로 명쾌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바닷바람을 부리고 순응할 줄 아는 요트선수다. 순간의 감각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믿는 일을 파고든다. 그럼, 그 아이들이 하는 것이 다 맞느냐고? 지천명을 넘은 나도, 아직 내 적성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제 겨우 나이 서른 즈음에 인생의 정답을 어찌 알겠는가.
말은 너그러운 척 이렇게 해도, 내 자식들이 ‘남의 눈의 꽃’이었음 좋겠다. 중행군자(中行君子)라. 어찌 자로 잰 듯 저울로 단 듯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람이 있을까. 평범한 향원(鄕原)은 이도 저도 못한다. 미친 듯이 하는 놈과 똥고집으로 하는 놈은 끝내 무엇인가를 이뤄낼 것이다. 그것이 꼭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나 명성이 아닐지라도.
열정의 깃발을 휘날리며, 서슬 푸른 파도를 가르는 아이들을 부추긴다. 그 아이들의 어미, 오늘도 ‘또라이’ 기질을 가진 놈들을 보면 또 가슴부터 벌름거린다.
2013년 << 에세이 문학 >> 가을호
2013년 << 에세이 문학 >> 10선 선정
2015년 <<논어 에세이 빈빈>>
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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