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거친 밥을 먹더라도
반소사 곡굉이침지(飯疏食 曲肱而枕之)
먹어도 먹어도 나는 살이 안 찐다.
한동안, 나의 별명은 ‘피죽 한 그릇’이었다. 피죽 한 그릇이라는 가난한 별명에 억울해할 것도 없다. 지금이야 제법 살이 붙었지만, 그 당시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걸어 다녔다. 오죽하면 새댁시절 시어머니께서 대문이 부끄럽다고 말씀을 하셨을까.
그렇다면, 정말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못 얻어먹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먹는 일에는 치열하다. 점심때 혹시 약속하지 않은 누구를 만나게 되면 끼니를 놓치게 될까 봐 혼자 시간 맞춰 먹고 다닌다. 한 끼만 걸러도 허리가 접히며 손발이 떨리고 어지럼증마저 일어난다. 이렇듯 잘 챙겨 먹는 것에 비해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경제적인 체질은 아니다.
나의 위(胃)는 정확하다. 용량초과를 견디지 못한다. 양으로만 용량을 재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질도 측정한다. 조개 칼국수나 쌈밥 정도의 소박한 밥상이라면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기름진 고기를 곁들인 돌솥밥 정도로 밥값이 일단 만 원 이상이 넘으면 그예 또 반응한다. ‘비상’ 신호에 걸린다.
설사한다. 어떤 사람들은 설사를 잘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어찌하면 설사를 할 수 있느냐며 그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나에게는 찬 우유나 팥빙수와 같이 얼음도 효과적이지만 아구찜이나 낙지 볶음 등의 매운 음식도 직방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내 수업에 들어오는 수강생 중 어느 여성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외모가 세련된 그녀의 스마트한 차를 타고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식당에 갔다.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제라늄, 튤립, 페튜니아꽃이 화사하고 실내에는 말린 꽃들의 허브향이 그윽했다. 나는 그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이윽고 잘 구운 스테이크가 나오고 펭귄 차림의 종업원이 음악의 선율에 맞춰 붉은 와인을 따라주고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 밥값도 비쌀 것이라 생각하니 아랫배가 사르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늘, 술값은 제가 낼게요.”라고 얼른 말했다. 그녀는 나와 종업원의 눈길을 피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괜찮아요.” 한다. 나는 당당해지고 싶었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래요. 술값은 내가 낼게요.” 그날 집에 오자마자 나는 물총 설사를 했다. 와인은 식사를 하면 요리에 덤으로 따라 나오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신세를 지면 자유를 잃는다고 했던가. 나는 누가 사주는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각자 오륙천 원씩 내고 화기애애 밥을 먹으면 좀 좋은가. 누군가 “오늘 밥값은 내가 쏜다.”고 선언을 하는 순간부터 밥값을 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그때부터 소심한 나는 이 마음 저 마음 다 헤아려 ‘오늘 밥값은 해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쓴맛 단맛 간장(肝臟)의 비위를 다 맞춘다.
공자, 가라사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아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다. 의롭지 않은 부와 또 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 술이편)
분수에 맞지 않는 밥과 자리는 나에게 설사와 같다. 뜬구름이다. 나는 요즘 그냥 편안하게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앉을 자리, 설 자리 톡톡 털어 가리면 ‘저러니 살이 안 찌지.’ 얄미운 여자로 보일 것 같아 어색한 자리에 곧잘 따라간다. 끼어 앉은 방석에서 얻은 후식은 그놈의 정(情)이다. ‘한솥밥이 주는 정’이라는 인정에 이끌리게 된다. 그런데 먹고 나면 손가락에 밥풀만 끈적일 때가 더 많다. 말랑말랑할 때 빨리 되갚아야겠다는 조급한 ‘청렴’이 오지랖을 펴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당당하게 밥을 먹고 싶어 지갑부터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갑을 여니 카드만 몇 장 있고 천 원짜리 뿐이다. 지난번에도 그랬었는데 또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 “선생님, 선생님이 무슨 연예인이십니까?” 현금은 안 들고 다니고 얼굴만 들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다. 집에 와 그 말이 재미있어 “연예인인 줄 아세요?” 마치 내가 연기자라도 된 듯 신이 나서 흉내를 내는데, 남편과 아들의 표정은 얼음도 깰듯한 눈초리다.
아들이 지갑을 사주고 남편은 “신사임당 여사는 부적으로 쓰고, 세종대왕으로는 동작 빠르게 밥값을 내라”며 지갑 안에 현금을 넣어주었다.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런 내 모습이 상습범으로 비췄을 것이라며 식구들이 몹시 서글퍼했다.
여럿이 함께 먹은 밥값을 내가 혼자 다 내는 것도, 슬그머니 뒤로 나 앉는 것도, 깔끔하게 내 밥값만 내기도 어렵다. 어디 꼭 음식뿐이겠는가. 차돌박이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이성(理性)도, 문진 같은 묵직한 지성(知性)도, 무조건 밥주걱 들고 퍼주는 감성(感性)도 마다하고 싶다.
눈칫밥으로 설사하여 얻는 S자 몸매가 아니라도 괜찮다. H라인이나 D라인이 될지언정,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밥을 핑계 삼아 소통을 하고 싶다.
내 밥값은 내가 내고, 마음을 살찌우는 푸근한 밥을 먹고 싶다.
<좋은수필> 2010년 겨울호
2015 <<논어 에세이, 빈빈>>
<<조신일보>> 2015 한줄 평
류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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