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형벌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사랑방에서 공자 왈 맹자 왈 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밤이면 숙영낭자전이나 춘향전을 언문으로 구성지게 읽어주시던 기억도 납니다. 교과서도 물려 쓰던 때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지요. 먹을 것도 귀했었지만, 읽을거리도 참으로 귀했던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자란 길음동 육교 밑에 작은 책방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요즘 아이들이 맥도날드나 커피 향이 나는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처럼 책 향기에 매료되곤 했습니다. 그때 막연히 꿈을 꾸었죠. 책만 실컷 읽을 수 있다면 책방에 갇히는 형벌이라도 달게 받고 싶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도시이든 시골이든 전쟁 중에도 학교가 가장 먼저 세워집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면 학교보다 더 나아가 생각과 꿈을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은 바로 미래가 있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의 역할은 문화의 창출입니다. 좀 더 나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곳입니다.
저는 20대에 사서교육을 받으면서 검은테 안경을 낀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처럼 지적(知的)인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시집을 왔습니다. 제가 살면서 아마 가장 잘한 것은 부산으로 시집을 온 것일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삶이 쌈지도서관의 가족이 되기 위한 준비이지 않았나!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은보다, 금보다, 황금보다 귀한 것이 ‘지금’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 작은 쌈지도서관, 여기가 바로 제가 꿈꾸던 정점인 것 같습니다.
무급의 자원봉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돈을 내는 일이라면 선뜻 지갑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봉사’라는 것을 경제적 가치로 따진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쓰고 남는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것을 내줘야 하는 일입니다.
자칫 의욕이 앞서 “에헴~” 하며 으스댈 수도 있습니다. 또 지쳤을 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수도 있습니다. 매주 해당 요일마다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자 여러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대궐 같은 도서관 시설을 준다 해도 절대로 운영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쌈지도서관의 꽃은, 바로 여러분 ‘자원봉사자’ 님들이십니다.
우리 도서관 운영위원님들과 초대관장님 전관장님의 인품과 덕목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처신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원봉사자님들의 후원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우리 메트로 시티의 가장 큰 자랑은 도서관이 있는 것입니다. 입주자 모든 이들에게 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나 청소년, 또는 지역주민이, 가장 행복한 곳으로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거듭, 봉사자님들과 전임관장님들 입주자 대표님들, 그리고 지역을 위해 애쓰시는 관계자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임기기간 동안 ‘지성과 감성’으로 문화를 꽃피우는 도서관이 되도록, 잘 운영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4일
쌈지도서관 관장 류창희드림
<<메트로 소식지>> 2010, 겨울호
류창희
http://rchess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