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득의 경지를 꿈꾸며
현대 수필문학상 시상식
류창희 수상소감입니다.
자득(自得)의 경지를 꿈꾸며
“류창희의 불우가 부럽다”
어느 선생님께서 제 책을 읽고 해주신 말씀입니다. 그 아름다운 찬사에 유년의 뜰이 봄 햇살처럼 따뜻해졌습니다.
불평즉명(不平則鳴), 편안하지 않으면 울게 되어있다는 한유의 문학이론입니다.
‘만물은 평형을 얻지 못하면 소리가 나게 되는데, 초목은 본래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그것을 흔들어 소리가 나고, 물은 본래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그것을 움직여 소리가 난다’ 저의 어린 시절은 결코 배고프거나 춥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바람이 그러했을 뿐입니다.
어디에 일러바치듯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비바람 태풍이 다 지나간 듯 홀가분해졌습니다. 씻김굿과도 같았습니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살 것 같이 명랑모드가 되어 한동안 한들한들 낭창낭창 흔들며 놀았습니다.
축전 한통을 받았습니다. 다른 짓하다 딱 걸린 학생처럼 마구 떨렸습니다. 속도가 두려워 울렁거리며 멀미가 났습니다. 몇 시간동안 감히 열어보지를 못하고 쳐다만 봤습니다. 그리고 시집오던 그날처럼 덜컥 겁이 났습니다.
초례청에 들어서던 날, 어머님은 새 며느리에게 큰상을 내려주셨습니다. 오방색으로 격식이 잘 차려진 상을 보는 순간,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평생에 딱 한번 받는 ‘일부종사’하라는 큰상이었지요.
족두리를 쓰고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삼자락 안에서 겨우 손을 내어 먹은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밥 몇 술과 국 국물이 전부였습니다.
내 몫으로 주는 상이라지만, 초례청의 큰상은 먹으라고 차려주는 상이 아님을, 집안의 가풍과 법도를 보고 배우라는 상이라는 것을 훗날, 아주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게 있어 《현대수필문학상》은 그 엄한 초례청의 본보기 상일는지도 모릅니다.
수상소식을 받은 지 달포가 지나도록 기쁨으로 두 걸음 다가서다가 누가 볼세라 얼른 뒤로 한발 물러서며 조심조심 내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듯 조심스럽게 상 앞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삶 쓰기였습니다. 또 그렇게 한편의 수필처럼 살아가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양연화의 꽃다운 시절을 대붕처럼 날아 절대자유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가혹한 행복의 덫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결코 수필이라는 장르 앞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글 속에서 저만의 색과 향으로 맛을 낼 수 있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여태까지의 제 삶이 유가적으로 묶여있었다면, 올해 기축년부터는 ‘포정’이 되어 소 잡는 법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뼈와 살 사이에 있는 틈을 젖히는 칼 다루는 법을 익히고 연마하여, 글이 굉장하기는 하지만 부드러워서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복잡하기는 하지만 재미있어 읽어볼 만한 장자(莊子)의 포정해우(庖丁解牛)같은 글을 써야할 것입니다. 쓰다간 만 붓이 산을 이루고 쓰다가 만 먹물이 못을 이룬다는 ‘자득(自得)’의 경지로 저를 끌어올리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것입니다.
큰상 내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김우종 임헌영 염정임 선생님), 수필을 사랑하는 모든 선생님들, 또 어디선가 제 삶의 연주를 지켜보는 백아절현의 벗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에세이문학>>2009 봄호 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