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구절초 끽다(喫茶)
가끔 산에 오른다. 배낭을 짊어지고 작정하고 나선 등산이 아니라서 비교적 완만하고 산책코스를 택한다.
맑은 가을날 금정산에 다다랐다. 챙겨주는 이 없으면 일행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나 일행들은 골짜기를 누비며 길가 풀 섶에 눈길 주는 나를 그다지 구박하지 않는다.
목을 길게 뻗어 새초롬하게 피어있는 애기똥풀의 꽃대를 자르면, 방울지는 샛노란 수액이 영락없는 애기 똥이다. 옹이풀을 뜯어 손등을 두들겨 대며 주문을 외우고 있으면 오이향이 번졌는지 저만큼 앞서가는 일행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다 발견한 꽃. 인적 드문 바위 뒤편 흰색과 연분홍을 섞은 듯한 꽃잎 숱은 적지만 제멋대로 벌어지지 않은 귀태 발하는 산구절초가 있다. 나에게 산삼이 따로 있을까. “심봤다!” 외치는 심마니 마냥 가슴 한구석이 콩콩거린다. 조심스럽게 맑은 공기와 함께 살포시 비닐봉지에 담아온다. 자그마한 찜솥에 흰 소창 수건을 깔고 드문드문 올려놓고 증기 한 소큼 올리면 이내 숨이 잦아든다. 통풍 잘 되는 그늘에 말리면 콩벌레 마냥 잔뜩 움츠린 모양이 앙증맞다.
오늘처럼 사그락 사그락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몇몇 벗들과 마주 앉는다. 찻잔에 산구절초 몇 송이 넣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노랑도 연두도 아닌 찻물이 우러나며 기지개 펴듯 송이송이 피어나는 산구절초. 그윽한 향기와 자태는 운치를 더해준다. 때로 불러주는 이가 있을 때 무명실로 꿰맨 한지주머니에 한 움큼 챙겨가서 나눠 마신다.
아끼는 이들과 차 한 잔 즐길 여유마저 잃고 지냈었다. 다시 둥그렇게 둘러앉을 벗들을 떠올리며 구절초 꽃을 우린다.
류창희
http://rchess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