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창희 2020. 11. 4. 16:27

호련瑚璉

- 명품의 탄생

 

  누가 구령을 넣는 것도 아닌데, 서로 재빨리 명함을 주고받는다. 어느 청사 두 번째 줄의 풍경이다. ‘~! 나도 명함이 있었지.’ 그때야 에코백 안을 뒤적이는데, 어디로 숨었을까.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상대방은 명함을 건네고 벌써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다. 마치 명함을 주고받는 타이밍이 앞날의 성공을 예견하는 것 같다.

 

  어느 작은 곳 기관장을 맡았다고 하니, 집의 큰놈이 명함을 선물해줬다. 연한 회색의 7pt 작은 글씨다. 여태까지 보던 명함과는 사뭇 다르다. 빛나는 금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소박하다. 이럴 거뭐 하러 명함을 만드나? 명함을 디자인한 아들에게 은근히 서운하다. 그런데 인쇄된 내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슬그머니 움트는 것이 있다.

 

  이참에 명함집도 근사하고 싶다. 뭉텅이로 여러 장을 넣으면 촌스럽고, 5장 정 내 손아귀에 딱 맞는 몽블랑 브랜드 정도를 가지고 싶다. 그럼 명함집은 어디서 꺼낼까. 당연히 뤼비통 가방쯤은 돼야, 가방이 명품이면 프라다 구두를 신고 버버리 정도는 입어줘야, 어느새 욕망의 전차를 타고 있다.

 

  “엄마! 명함집이 명품이면 엄마 이름이 죽어요.”라며 펄쩍 뛴다. 패션쇼장처럼 사람은 안 보이고 옷만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에 거리를 지나가는데, ‘뭐지! 이 느낌?’ 뒤돌아보고 싶은 향기가 엄마였으면 좋겠단다. 그렇지! 일할 때, 얼굴과 성별 그리고 목소리가 무슨 소용인가. 아이 말처럼 명함에 보일 듯 말듯 이름과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된다. 전화번호도 지나친 친절일지 모른다. 나도 자료든 사람이든 내게 꼭 필요하면 돋보기에 확대경까지 동원해서 다 살펴본다.

 

 

  자공이 공자에게 저는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다시 어떤 그릇입니까?” 하고 묻자, “너는 호련이라고 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늘 눈높이 교육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이 있다. 이 문장 앞에 공자는 공야장과 남용과 자천의 장점을 하나하나 들어 칭찬했다. 칭찬을 기다리다가 조급증이 난 자공이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묻는 중이다.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 너는 그릇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하고 무슨 그릇입니까?” 그때 만약에 솔직한 감정대로 너는 작은 간장 종지다. 혹은 개밥그릇, 아니면 스케일 크게 커다란 고무 함지박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이재에 밝고 말주변이 빼어난 자공에자네는 호련이라는 말로 호기를 정지시킨다. 바로, 춘추전국시대 명품의 탄생이다. 호련瑚璉*은 하나라와 은나라의 종묘 제사에나 쓰는 최고의 옥제기그릇이다.

 

  그렇다면, ‘호련은 칭찬인가. 언뜻 들으면 장차 높은 벼슬에 올라 귀하게 쓰일 것이라는 격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할까. 공자는 이미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했었다. 제자들이 그릇의 기능처럼 능력을 한정 짓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활달하게 부리는 군자君子가 되기를 바란다.

 

  그 당시 자공은 투자의 달인이다. 제자 중에 가장 부자였다. 주유열국의 힘든 행보 중에 그나마 공자가 의관을 갖추고 마차를 탈 수 있었던 것도 자공 덕분이다. 난세에서도 슬기롭게 돈벌이를 잘하는 자공이 저는 어떻습니까?” 묻는 것은 어쩌면 노블레스 자격이었을지 모른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도덕적 의무의 오블리주를 일깨워주는 말일 수도 있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과연 명함을 새길만 한 그릇이 되는가. 터무니없다. 나에게 명함은 개똥과 같다.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어느 분은 명함 좀 주세요.”며 버티고 서 있다. 나는 어정쩡한 미소로 저는, 얼굴이 예뻐서……이 무슨 무례인가. 그런데 정말 내가 예쁘기는 한 모양이. 망발하는 앞에서 모두 환하게 웃는다.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은 그 정도 너그러움은 이미 지닌 것 같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고현정이나 김태희가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은 연예가 중계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고귀하신 분들의 명함에는 이름보다 사진이 더 크다. 그것도 모자라 뒤편에는 그동안의 공적과 직책이 좌청룡 우백호로 호위한다. ‘시류야是柳也’, 나는 나다. 단지 명함을 건네는 순발력을 놓쳤을 뿐.’이라고 위안 삼아보지만, 일부러 챙겨서 나간 날은 차마 멋쩍어 손이 오므려진다. 집에 와서 혼자 되뇐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아직 쓸 만한 사람이다. 나는 군자의 성정을 지니고 싶다. 나는 꼿꼿하다. , 꽃 할 것이다. 날마다 화하하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연임의 임기까지 끝났다. 그런데 아직도 명함 한 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명품은 아무나 되나" 자공은 역시 훌륭하다.

 

 

 

 

* 호련 :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나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자가 자공의 사람됨을 평하여 호련이라고 한데에서 유래되었다.

(子貢問曰賜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 公冶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