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말하다
손을 말하다
나는 얼굴보다 손이 예쁘다. 예쁘기만 한가. 감촉도 좋다. 손마디의 뼈가 부드러워 사춘기 시절, 내 손을 만져보려고 친구들이 앞뒤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으로 채송화 꽃잎처럼 얇은 천을 잘 마름하고, 구정 뜨개질, 십자수, 퀼트 그리고 편지지에 색종이로 꽃을 오려 붙이는 손놀림이 섬세하다.
어느 날, 칠판에 글씨를 쓰는 내 손을 바라보던 어느 분이 “밥은 할 줄 아세요?”라고 물었다.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는 듯, 고운 손이 한심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어머님이 계실 때만 해도 늘 손이 바빴다. 밥이나 청소는 물론 사시사철 이불 홑청 빨래를 풀 먹여, 젖은 방망이 마른 방망이질을 하며 무명제복에 모시 두루마기까지 거뜬히 손질해내던 손이다.
일을 많이 한 손이라고 대우하고 살지는 않았다. 비누 냄새 말고는 향기도 없다. 손등이 터지면 더러 글리세린을 바른 후, 마른 장갑을 끼고 잔적은 있지만, 예쁜 빛깔의 네일아트의 꾸밈은 한 적이 없다. 결혼반지조차도 잘 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은 꼭 들인다. “봉숭아꽃을 보고, 꽃물을 들이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친정엄마의 지론이다. 엄마의 딸,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여자의 특권은 누리고 싶다.
꽃물로 멋을 낸 손톱관리는 부지런하다. 나는 손톱을 자주 깎는다. 특히 긴장되는 일이 있거나, 혹 어디로 길을 떠날 때는 어제 깎고도 오늘 또 깎는다. 그렇게 바짝 깎으면 손톱 밑이 아프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고3인 여름방학,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저격을 당한 바로 그해다. 걸스카우트 단원이었던 나는 비상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다.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가는 운구 행렬의 안내역할을 맡게 되었다. “넌, 손이 참 얌전하구나!” 그날 담임선생님은 의전용 흰 장갑을 나눠주시며 말씀하셨다.
개학하자마자, 나는 9월 1일 자로 취업을 나갔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먼저 나갔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던 나, 누가 말이나 걸어줘야 신이 나서 조잘대던 수줍은 여학생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모범생이거나 배경이 좋거나, 예쁘지도 않았다. 오로지 손이 얌전하게 보인 덕분이었다. 면접을 보는 분들도 자필 이력서와 얼굴, 그리고 손을 커다란 확대경으로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 후로 나는 뭔가를 시작할 때면 손부터 신경을 쓴다. 사람을 만났을 때도 얼굴과 옷매무새와 더불어 얼른 그 사람의 손을 본다. ‘저 사람은 저 손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았을까?’ 가늠해 본다. 덥석 잡고 싶은 손도 있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고 싶은 손도 있고, 선뜻 다가가지는 못해도 부러워 자꾸 훔쳐보는 손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먹지를 네 장씩 끼워 법조문이 빼곡하게 적힌 서류를 꾹꾹 눌러썼었는지, 주판알을 튕기며 날마다 장부를 작성했었는지, 글씨를 너무 많이 써서 가운뎃손가락에 펜 혹이 생겼었는지, 친구들이 대학입시 예비고사를 치르는 시간에도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그날 퇴근하고 종로2가 양지다방에 갔었는지…. 혹시, 그 구석 자리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소리죽여 우는 여학생을 보았었는지, 다 궁금하다.
자태가 고우셨던 시어머님은 반지보다 브로치를 즐기셨다. 고생했던 억센 손마디를 남 앞에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나는 요즘 어머님이 아끼던 참깨 반지를 가끔 낀다. 반짝이는 빛에도 아랑곳없이 손끝이 말라 거슬리기도 하고 손등에 저승꽃도 엷게 피어난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무리 아닌척해도 내가 살아왔던 세월이 고스란히 보인다.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손짓하는 도도한 손도, 지문이 다 닿도록 생선 대가리를 내리치고 비늘을 긁어내며 생활의 파고를 넘나들던 손도, 창신동 골목의 큰 누이들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손도, 배꽃 환하던 과수원에서 사다리에 올라가 풋배에 봉지를 씌우던 손도, 손은 다 아름답다. 내 손도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손이 차다. 여름에도 손이 시리다. 느닷없이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이 내 손을 잡다 말고 움찔 놀란다. 그 순간이 민망하여 “마음은 따뜻해요.” 곧잘 너스레를 놓는다. 서푼짜리 자존심을 지키려고 꼭 해야 할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손사래를 너무 많이 치고 살아서인가, 손이 냉혈이다.
누가 공자에게 어찌 그리 다재다능하신가 묻는다. “나는 소싯적에 미천했던 까닭으로 손재주가 많다.”고 대답한다. 나는 꽃다운 시절, 생계를 위해, 한 손에 일을, 또 한 손에 책을 들고 주경야독했다. 그 기특한 손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누가 무시할까 봐 일부러 손톱 밑이 아리도록 바싹 깎으며 혹사시켰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나의 궤적을 일일이 모두 기억하는 손. 이제 당당하게 나의 손을 예우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