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
요령
- 불분불비 不憤不悱
네 잎은 돌연변이다. 나폴레옹이 전쟁 중에 네잎클로버를 보았다. 신기하여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총알이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그 후 네 잎은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행운을 바라는가. 어느 분은 평생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애석해한다. 나는 매순간이 행운인지 네 잎을 잘 찾는다. 멈춰 서서 누구와 잠시 이야기를 하면서도 떨어뜨린 콩 줍듯 연달아 찾는다.
풀도 DNA가 있다. 처음 하나의 줄기만 찾으면, 연달아 나타난다. 풀숲을 들치고 조급증을 내면 이내 숨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 여기 있는데…’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어찌 모르는 척 할까. 나도 ‘너를 기다렸다’고 속삭인다. 지난해 만났던 비밀장소다. 밀회장면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특히 돋보기 도움을 받지 않고 책의 목차를 볼 수 있는 청춘들, 그들은 요령을 몰랐으면 좋겠다.
공자가라사대, 알려고 발분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표현하지 못해 애태우지 아니하면 말해주지 않고, 한 모퉁이를 들어주었을 때, 세 모퉁이가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일러주지 아니한다. - 술이편
子曰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호되 擧一隅에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也니라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 배가 고파야 한다. 끊임없이 보채야 한다. 누구에게? 자신에게다. 아기가 처음 엄마를 부르려면, 3천 번을 애타게 “엄마!” 되뇐다고 들었다.
가령, 네모난 보자기의 한쪽을 들어 올려주면, 세 군데의 자락이 흔들린다. 한복치마가 뭔지 모르는 동물에게 “이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알지 못한다. “옷이다, 입어라” 윗옷인지 아래옷인지 어떻게 입는지 모른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어깨끈의 목, ‘령領’을 찾는다. 바로, 요령要領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애써 알려준들, 쇠귀에 경 읽기.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척하면 삼천리, 쿵하면 짝하는 경지로 애태우며 알아내야 한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 들었다. 내가 앉은자리가 행복의 신전일줄 모르고, 소녀시절부터 해마다 오뉴월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네 잎을 찾아 헤맸다. 소소한 행복을 소홀히 한 벌로 토끼 풀꽃이 갈색으로 변했다. 흰머리 소녀의 얼굴에 저승꽃이 만발했다고 누구를 탓할까. 애꿎은 세월만 덤터기다.
나는 한글전용세대다. 초등학교 4학년 딱 한해, 국어교과서에 한자漢字가 나왔다. 한문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 여고 때 담임선생님은 방학숙제로 신문 ‘논설란’의 한자를 적어오라고 했다. 당시 신문도 특권층이 구독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온다. 사랑방에서 “자~왈” 글을 읽던 할아버지 덕분인지, 죽봉竹峰선생님께 난정서蘭亭序와 성교서聖敎序를 사사받았다. 혼수용품으로 8폭짜리 반야심경 병풍을 왕희지王羲之체로 써왔다. 붓글을 쓰면서 해서 행서 초서의 서체도 예뻤지만, 나는 뜻을 품은 한자의 운치에 매료되었다.
뒤늦게 서당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을 강독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두꺼운 목판본으로 공부하는데, 원문 장구 잔주를 다 읽으려면 하루에 한 문장도 어렵다. 그런데 서당훈장님은 한글을 모르셨다. 경상도 발음으로 “몸땡이체體. 아래께향向” 구술로 하셨는데, 도대체 아래께가 뭘까? 도리깨로 콩 터는 것은 봤어도 당최 모르겠다. 질문을 하면 벼락같이 역정부터 내신다. 몇몇 선배들이 “니는 모르면, 쪼오옴~ 가만있어라” 눈치가 있어야 절집 공양 간에서 새우젓을 얻어먹는다. 선과 악 군자와 소인을 가늠하는 대구법對句法이다. 그러나 제자의 말대꾸는 절대 금지사다. 감히 스승님께 질문이라니. 내가 앉은 책상과 의자가 지게 작대기만한 몽둥이로 부서질 판이다. 모르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무조건 읽고 외워서 문리가 틔어야 한다는데, 도대체 ‘문리’란 무엇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내게는 요령부득이다.
당시, 논어문구를 한 문장씩 쪼개 숙제를 내 주셨다. 본문은 물론 비지까지 현토懸吐띠는 훈련이다. 나의 오지랖은 남의 숙제까지 도맡았다. 우선, 빗금을 긋는다. 빗금은 나의 전문이다. 내 수학시험지처럼 붉은 연필로 죽죽 긋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문장의 길이가 무려 팔만 대장정大長程이라도 어조사 뒤는 무조건 긋는다. “~는 ~하고 ~하며 ~하여 ~하되 ~하니 ~하니라” 현토 사이사이 간이역이 띄어 읽기다.
목적지 실사實辭역에 가려면 숨〔,〕도 고르고, 묻기〔?〕도 하고 감탄〔!〕도 해야 마침내, 마침표〔.〕에 도착한다. 부호는 이정표다. 차창 밖의 정경은 내게 다 허사虛辭다. 허사는 정서의 실마리다.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 어기사, 9품사다. 말이 쉽지, 예나 지금이나 구품벼슬〔공무원 시험〕이 어렵다. 과연, 내 눈에 품사들이 다 보였을까. 오죽하면 나는 논어 책을 무쇠가마솥에 푸~욱, 고아 총명탕처럼 마시고 싶었을까.
문리文理, 문리가 무엇일까. 문장에도 고랑과 이랑이 있다. 논밭 사이에 문채를 이루려면, 연장이 필요하다. 곡괭이 삽 쟁기 가래 써레 쇠스랑 호미 등등. 나는 연장다루는 요령을 모르니, 늘 손톱 밑이 아리다. 예전에 내가 스승님께 하던 질문들이 생각난다. 씨 뿌리고 김매는 노고 없이 누룽지 달라던 막무가내. 철자綴字법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어찌하면 한문을 석 달 만에 완성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속성요령을 묻는다. 성미가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는 위인이라도 왕도가 없다. 애달고 애태우고 약발 받아야 한다. “너는, 그 세월 죽이는 짓을?” 세 모서리 자존심을 건드리면 줏대가 발끈 서야 한다.
죽으려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행운의 아이콘인 나폴레옹이라도 결국 영면에 든다. 어찌 생과 사를 ‘A는 B다’라고만 판단할까. 하루하루, 한 걸음 걸음 다가가는 여정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찾고, 꽂고, 책갈피에 잠재워 내마음을 보낸다. 네잎클로버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대들이 바로 나의 행운이시다.
류창희 <<호련>> 메타논어《타타타 메타》 논어에세이《빈빈》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매실의 초례청》
그린에세이 '공자가라사대' 연재 2020 -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