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벼슬
나이가 벼슬
- 향당막여치鄕黨 莫如齒
싸움에 불리하면 나이가 벼슬이다. “야, 너 몇 살이야?” 삿대질하는 순간, 게임 끝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나오면 내가 졌다는 인정이다. 남의 시선에 비춰 보이는 신체나이와 ‘냅네’ 하는 허세의 나이다. 애초에 왜 싸우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무시당하는 것은 싫고, 대접은 받고 싶다.
산골 출신인 나는 얼굴에 유난히 골짜기가 깊다. 바보처럼 잘 웃는 성격 때문이다. 가끔, “56세죠?” 묻는 이들이 있다. 아마 내 메일주소 'rch5606'으로 추측한 것 같다. 몹시 억울했다. 오뉴월 하루 볕이 어딘데, 세 살이나 더 갖다 붙이냐며 발끈하던 당시 내 나이는 53세였다. 그 시절이 그리워지게 될줄 그때는 몰랐었다.
부산 퇴계학연구원 회원들의 평균연령은 70세다. 유학강연회 행사 때마다 의관을 갖춘 남자어르신들이 가득하다. 여성회원은 한두 명, 그곳에서 나는 고명딸 같은 숙녀라고 생각했다. 20여 년 전, 편집위원들과 둘러앉아 회의를 하는데, 나보고 무슨 띠냐고 묻는다. 잔나비 띠라고 하니, “갑장이구먼.” 반가움에 내손을 덥석 잡으신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별꼴’을 일러바쳤다. 착한 남자들은 절대 여자 나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며, 외간여성은 다 자기아내 연배인 줄 안다며 ‘순수한 어르신’이라며 편을 든다. 그분과 나는 24년 차이, 띠 동갑이었다. 올해도 구순의 건재한 그분을 뵈었다.
예기禮記에서 나라에는 태학太學이 있고, 주州에는 서序가 당黨에는 상庠, 가문에는 숙塾이 있었다. 우리의 시 도 군 면 리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서원, 서당, 글방과 같다. 25가 정도의 마을 입구 느티나무 그늘 아래는 삼달존三達尊을 갖춘 세 노인〔三老〕이 장기를 둔다. 두 분은 장군 멍군의 상대요, 한분은 들고나는 이들의 품행을 살펴 ‘떡잎’을 가늠하는 훈수다. 마침, 시커멓고 커다란 승용차가 지나간다. “무슨 소린고?” “높은 사람인뎁쇼” 나라님인 것 같습니다. 나라님은 개뿔, 시정잡배겠지. 그리하여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멀찌감치 마차에서 내려 문안을 여쭸다. 봉황의 넥타이와 무궁화 금베지의 고관대작이라도 “저는 노, ㅇ자ㅇ자의 셋째 자식입니다.” 부모님 존함을 드날리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예절이다.
증자가 말하기를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다스리기에는 덕만 한 것이 없느니라.
曾子曰 朝廷 莫如爵 鄕黨 莫如齒 輔世長民 莫如德 - 明心寶鑑 遵禮篇
궐이라는 향당의 궐당동자闕黨童子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저 아이는 장차 공부하고 정진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께서 “나는 저 아이가 어른 자리에 무엄하게 앉아〔其居於位也〕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 어른과 나란히 걸어가는 것〔見其與先生並行也〕을 보았습니다. 저 아이는 빨리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아이입니다.”
공자 가라사대 “집안의 예절은 어른과 아이의 분별이 있고, 규문의 예절은 삼족이 화목하고, 조정의 예절은 관작의 차례가 있고〔朝廷有禮 故官爵序〕, 사냥하는 예절은 직급의 일이 익혀지고, 군대의 예절은 무공이 이루어지느니라.” 어디 가나 냉수 한 그릇이라도 장유, 진퇴, 읍양의 예절이 다 있다. 질서다.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부모처럼 모시고, 십년이 많으면 형처럼 공경하고,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물러설 것이니라.(年長以倍 則父事之 十年以長 則兄事之 五年以長 則肩隨之 - 禮記 曲禮)
인생은 십년으로써 한 마디를 삼는다〔人生 十年 爲一節〕고 했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십년을 위아래로 사귀며 교류한다. ‘붕朋’은꼬치(불알)친구다. 하늘의 달은 초승에서 그믐까지 점점 커졌다 작아졌다 변하니, 옛사람들이 볼 때, 달은 분명 살아있는 물건이다. 그 거시기가 아니고서야 어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겠는가. 달月 변이 아니고 고기肉, 육달월변이다. 개울에서 벌거벗고 물장구치는 또래집단이다. ‘우友’는 뜻을 함께하는 벗이다. 노스님이 산사를 찾은 청년에게 번뇌는 내려놓고 “벗이여, 차나 한 잔 드시게” 여유를 권한다. 벗과 벗의 관계는 ‘펑요우〔朋友〕’ 친구다.
부모의 나이는 뒤따라 다니고, 형의 나이는 나란히 가되 기러기처럼 조금 뒤에 다니고, 친구사이에는 서로 비슷하되 가지런히 할 것이니라. (父之齒 隨行 兄之齒 雁行 朋友 不相踰) 아무리 허물없는 죽마고우라도 관계를 마구 넘나들지 않아야 오래간다.
어느 날 나는 성직자를 모시고 어느 행사장에 갔다. 평소의 친근한 마음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모양이다. 그분이 귀엣말로 “몇 걸음 뒤떨어지라”고 한다. 죽비가 따로 없다. 너무 놀랐다. 그동안 안행雁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카메라의 조명만 바라봤던 것 같다. 공자께서는 주유열국周遊列國하는 동안, 결코 군주를 꿈꾸지 않으셨다. 군주를 도와 성군이 되도록 돕는 참다운 참모, 군자君子가 되기를 원하셨다.
나 같이 경거망동한 어느 영부인이 남편의 대통령 취임식 날 당의를 입고 나란히 입장하여 구설에 오르내렸다. 또 다른 영부인은 외국 순방길에 아예 남편보다 앞서 걸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오히려 대통령이 영부인을 수행하는 꼴이 되어 “대한민국에는 의전도 없냐〔朝廷 莫如爵〕?”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 나이가 벼슬인 향당鄕黨들의 잔치는 이제 끝났다. 정치인은 국가를 운영한다. 취임초기 사인방 ‘F4’ 참모들이 노타이 차림으로 커피 한잔씩을 들고 어깨를 나란히 걸었다. 그 모습이 매우 낯설었지만, 신선한 기운도 있었다. 드디어 2020년 21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상황에서 나랏일을 맡은 분들이니,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 세상을 돕고 다스리기에는 덕德만한 것이 없다는 덕치德治를 기대해 본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세대가 다른 아들 손자, 며느리의 기량을 믿고, 검은머리 파뿌리 정책으로 남편에게 포퓰리즘 복지나 베풀자. “여보~옹(翁), 우린 병신丙申년에 태어난 진짜 ‘갑장’이잖우, 날마다 사뿐사뿐 가는 날까지 잘 걸어봅시다.”
《그린에세이》 2020 - 5•6 <공자 가라사대> 연재. 퇴계학 부산연구원 유학수필(11회) 연재 (11) .
* 류창희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빈빈》 《매실의 초례청》.